20일 열린 기재위 국감은 조세제도에 대한 여야의 공방전 성격을 가졌다. 사진은 회의 중 물을 마시는 김동연 부총리. <뉴시스>

[시사위크|여의도 국회=현우진 기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20일 개최한 기획재정부의 조세부문 국정감사 현장은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산업‧금융계 출신 증인들이 전무하다시피 해 시선을 집중시킬 ‘포인트’가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인세‧소득세 인상 문제 등 여야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안건들이 다뤄지면서 회의의 무게감은 국회 어느 곳보다 높았다.

회의는 시작부터 삐걱댔다.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일곱 명은 모두 노트북 덮개에 ‘문재인 정부 무능심판’ 구호가 적힌 피켓을 붙이며 무언시위에 나섰다. 여당은 의사진행에 방해되는 물품을 반입할 수 없다는 국회법 조항을 거론하며 피켓 제거를 요구했고, 송영길 의원은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헌정농단 사태에 정치적 책임이 있다. 그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살피는 국감에서 이러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개회 후에도 여야 의원들은 김동연 부총리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이어갔다. 야당 의원들이 김동연 부총리를 공박하며 입장표명을 요구한 반면 더불어민주당 측에선 부총리를 보호하는 모습이 몇 차례 연출됐다.

◇ “경제 어렵죠?” 추경호 의원의 ‘답정너’

의원들의 의견은 현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부터 엇갈렸다. 더불어민주당 김정우 의원은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3%로 상향조정한 사실을 언급하며 추경의 효과가 3·4분기에 가시화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김동연 부총리 또한 타 질의 때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동의의 뜻을 밝혔다.

반면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는 “기업과 가계는 가난해지고 있는데 국가만 성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늘어난 조세수입을 ‘마른걸레 쥐어짜기’에 빗대며 부당조세행위의 근절을 요구했다. 자유한국당 김광림 의원은 ‘흉작이 들면 조세를 감면하는 것이 도리다’는 다산 정약용의 말을 인용해 경기상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두 의원이 비유법을 사용한 반면 직구를 택한 의원도 있었다. 김동연 부총리에게 “지금 경제가 어렵죠?”라고 질문한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 이야기다. 부총리가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고 답하자 추경호 의원은 같은 질문을 세 차례나 반복했다.

동일한 질문이 계속되자 김동연 부총리도 마음이 상한 듯했다. 추경호 의원이 외팔이 경제학자를 찾던 트루먼 대통령의 고사를 들며 명확한 답변을 요구하자 “저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경제 관료다”고 즉각 반박했다. 기재부가 세수증가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 답변기회를 요청했다가 거부당하자 다소 화난 표정을 짓기도 했다.

◇ 법인세 둘러싼 4당 4색

예상됐던 것처럼 이날의 핵심안건은 법인세 인상 문제였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8월 ‘2017 세법개정안’을 통해 법인세 과표 2,000억원 초과구간에 대한 세율을 현행 22%에서 25%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해당 방안에 따르면 현재 3단계 누진구조를 택하고 있는 한국의 법인세 구조는 4단계로 세분화되며, 최고‧최저법인세율 간 차이도 12%p에서 15%p로 늘어난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함께 질타의 대상이 됐다. 법인세 인상을 “한국 경제에 구멍을 내는 일”이라고 규정한 김광림 의원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법인세율이 주요국과 비교해 높은 편이라는 자료와 “대통령이 시장 친화적이지 않은 듯하다”고 보도한 외신기사가 근거로 제시됐다. 또한 김광림 의원은 “OECD에서 법인세 4단계 구조를 채택한 나라는 포르투갈뿐이다”며 전 소득범위에서 단일 법인세율을 적용할 것을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가만있지 않았다. 박광온 의원은 한국의 GDP 대비 법인세 비율이 OECD 평균보다 높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법인세는 국민소득이 아니라 법인이익에 대한 세금이다. 한국의 기업소득대비 법인세 비중은 OECD보다 낮다”고 반박했다. 김정우 의원은 “한국은 고용주의 법인세와 사회보장기금 부담률이 낮은 편이다. 지난 8년간 가계소득‧민간소비‧법인투자가 모두 감소하는 동안 기업소득만 늘어났다”며 박광온 의원을 지원 사격했다. 법인세율 인상이 조세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에 대해선 “법인세율이 세계 최고인 미국에 대한 해외투자가 가장 많다”며 조세부담과 투자의 상관관계는 약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은 절충안을 제시하는 태도를 취했다. 김성식 의원이 과표 200억원 초과구간에 법인세율 24%를 적용하는 방안을, 박주현 의원은 최고세율을 25%로 높이되 3단계 누진구조는 유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바른정당은 법인세 인상과 관련해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만 유승민 의원은 “(법인세 인상은)이제 정치 이슈가 됐기 때문에 부총리 혼자 해결 못한다”는 단평을 내놓았다. 앞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기획재정부가 정권의 정책기조에 따라 입장을 바꾸고 있다”며 김동연 부총리와 최영록 세제실장을 공박했던 것을 고려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 ‘태도불량’ 낙인찍힌 아이코스

한편 전자담배 ‘아이코스’에 대한 과세 문제로 출석을 요구받은 정일우 한국필립모리스 대표이사의 모습은 회의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12일 해외출장을 이유로 돌연 출국했기 때문이다. 바른정당 이종구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완전히 기획재정위원회와 의원들을 모독하고 있다. 지난번에는 허위자료를 배부했다. 청문회를 열든지 감사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며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정일우 대표를 대신해 참석한 필립모리스의 모 부장은 개회를 기다리는 동안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으며, 이종구 의원의 의사진행발언을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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