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삼성물산 합병은 정당한 목적이 있고 승계의 필요성도 전제하고 있어
이재용 뇌물죄 사건 등 관련재판 내용 외면, 기존 판례와 배치되는 판단도 발견

경제개혁연대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은 적법하다는 법원의 판단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고 비판했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삼성물산 합병이 무효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재판부가 제시한 논리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우찬 고려대 교수)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무효 소송’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논리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19일 일성신약 등 원고들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제기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무효의 건에 대해 원고 패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적법하다는 것이 핵심으로, 1심 재판부는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경제개혁연대는 23일 ‘삼성물산 합병무효소송 1심판결 논리의 문제점’ 제하 논평을 통해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재판부가 제시한 논리에 상당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우선 재판부가 합병목적이 부당하지 않다고 전제한 점을 지적했다. 논평은 “쟁의 행위 등과 마찬가지로 회사법에서도 목적의 부당성은 주된 목적이론을 따르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라며 “이번 삼성물산 합병의 주된 목적이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라는 것은 여러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마땅히 합병목적의 부당성을 인정해야하는데 단지 경영상의 합목적성이 부수적으로 일부 있다는 이유로 이를 부인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나아가 재판부는 그룹의 승계 및 경영권 안정이 삼성그룹 및 각 계열사의 이익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근거도 없을 뿐더러 이재용 또는 지배주주일가와 삼성그룹의 이해관계를 충실하게 대변하여 재판부가 삼성물산 합병무효소송의 논점을 일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합병비율의 불공정성 여부’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도 문제삼았다.

앞서 재판부는 삼성물산 합병에서 가장 큰 논란거리였던 합병비율의 불공정성에 대해 “이 사건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령에 기하여 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합병비율이 구 삼성물산 및 그 주주들에게 불리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고, 또 합병비율이 일부 구 삼성물산 및 그 주주들에게 불리하였더라도 이를 ‘현저히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고도 했다. 경제개혁연대는 그러나 재판부가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논평은 “서울고등법원이 일성신약 및 소액주주들이 청구한 주식매수청구 가격 결정에 대한 판례에서 합병비율이 부당하다고 이미 확인한 바 있다”며 “따라서 재판부는 합병비율 결정의 근거, 주주에게 미치는 영향, 산정시기 및 당시 시장상황 등을 면밀히 파악하여 그 적정성 여부를 판단했어야 하나, 단지 자본시장법령을 준수했다는 이유만으로 합병비율이 부당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가 상급법원의 판단이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이를 간과하고 법령 뒤에 숨은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합병 무효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한 부분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대표권의 범위 내의 행위이더라도 그 행위가 제3자의 이익을 위한 권한 남용행위라면, 그 상대방이 이를 알았을 경우 행위의 효과를 부인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즉, 국민연금 대표자인 이사장이 제3자인 이재용의 이익을 위해 의결권행사에 대한 대표권을 남용한 경우, 상대방인 삼성물산이 이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 의결권행사를 무효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논평은 “이 부분에 대해 재판부가 의사표시의 하자 문제가 아닌 대표권 남용행위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보다 타당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물산 합병 건은 형사처벌을 받을 정도로 엄중한 사안이었으며, 그 내용에 있어서도 합병비율의 공정성에 대한 조작 등 중대한 범죄행위가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이사들의 배임적 요소를 부정한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된 형사사건에서 피고인들에 대해 모두 유죄가 선고되었고, 특히 삼성 뇌물죄 사건에서 형사법원은 삼성물산 합병 등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 미래전략실 주도로 정치권에 청탁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그러나 오히려 재판부는 합병 자체의 필요성을 전제로 예정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형사판결과 상충되는 부분에 대해 해명하듯 논리를 편 것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본 사건의 결론인 삼성물산 합병의 무효 여부를 떠나 재판부 인식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준, 매우 실망스러운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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