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만큼 갚아야 한다. 성장을 위해 지출을 늘렸던 국가들이 그 반대급부를 지불할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픽사베이>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행복한 가정은 대체로 비슷한 모양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그 이유가 다르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이후 다양한 사회·문화·경제현상을 분석하는데 회자되면서 ‘안나 카레니나 법칙’으로 자리 잡았다.

금융위기로 침체된 경기를 다시 부양하려는 노력 속에서 늘어난 세계 각국의 부채 문제도 이와 유사하다. 한국·중국·일본은 모두 자국 경제의 불안요인으로 높은 부채수준을 뽑고 있지만, 그 배경은 서로 다르다.

◇ 동북아시아 3국의 ‘부채 삼국지’

미국을 비롯한 다수의 선진국들은 저성장 탈출을 위해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폈으며, 이 과정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정부부채를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 것은 단연 일본이다. 경제데이터사이트 ‘트레이딩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2016년 일본의 정부부채는 GDP의 250%를 넘어섰으며, 보다 보수적인 통계기관도 최소 221%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제시한 정부부채 임계치인 90%선은 물론 국가부도 위기에 처했던 그리스(181.6%, 2015년 기준)보다도 높은 수치다.

재정지출이 늘어난 반면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세수 증가 속도는 더뎠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일본의 고령화 속도는 더 많은 사회복지지출을 강요했다. OECD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사회복지지출은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연평균 GDP의 6% 이상씩 늘어나왔다. 연금소득 대체비율이 일본의 두 배가 넘는 포르투갈·이탈리아 등과 엇비슷한 지출수준이다.

중국은 경제주체 전범위에서 부채수준이 증가했지만,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기업부채다. 지난 2007년 GDP의 97.8% 규모였던 중국의 기업부채 비율은 2016년에는 166.3%로 높아졌다. 동기간 한국이 11.8%p, 유로지역이 8.1%p 상승한 것에 비하면 상당히 가파른 상승폭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8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이 기업의 고정투자에 의존해 고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업부채가 크게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국유기업이 투자를 계속할 수 있도록 보증을 서 주는 지방정부도 문제점으로 뽑혔다.

한편 한국은 주요국 중에선 드물게 견고한 공공재정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2016년 정부부채는 GDP의 38.3%에 그쳤으며,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해당 수치가 2020년까지 40%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반면 1,388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한국경제의 제1위험요인이다.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가계부채는 최근 2년간 연평균 129조원 증가해 가처분소득의 179%까지 높아졌다(자금순환 기준, 2016년). 저금리 기조 속에서 확대된 주택 매입수요와 ‘적극차입계층’으로 분류되는 35~59세 인구의 증가가 부동산 투자를 급증시켰다. 기획재정부는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기업의 신용부담이 증가하자 금융기관이 대신 가계대출을 늘렸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 “부채 잡아라” 한목소리 내는 3국 정상

대선 과정에서부터 가계부채의 가파른 증가세를 안정시키겠다는 정책목표를 밝혀온 문재인 정부는 주택투기수요를 집중공략하고 나섰다. 정부 관계부처는 8.2부동산대책을 통해 투기 목적의 주택담보대출을 규제했으며, 기획재정부가 24일 발표한 ‘가계부채 종합대책’ 또한 총부채상환비율(DTI) 기준을 새로 설정하는 등 기존의 정책방향을 견지했다.

투자를 바탕으로 한 고도성장에서 내수 중심의 중도성장 전략으로 선회한 중국은 구조조정과 디레버리징을 통해 기업건전성을 제고하려 시도하고 있다. 기업의 부실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고 차입을 축소하는 전략이 운영 중이다. 다수의 외신은 전당대회를 통해 정치적 기반을 다신 시진핑 국가주석이 구조개혁을 지속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중국의 막대한 기업부채에 대한 우려를 안고 있는 국제금융시장도 조심스런 태도로 이를 지켜보는 중이다.

한편 아베 정권은 재정적자의 주범인 사회복지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세금인상계획을 추진 중이다. CNN은 20일(현지시각) “아베 총리는 현행 8%인 소득세를 10%로 높여 아동복지·교육·고령인구의 사회보장비용에 사용할 계획이다”며 “일본의 저소득층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2014년 당시 5%였던 소득세율을 8%로 올렸으며, 이를 다시 10%로 인상하려 했지만 야당의 반대에 부딪쳐 두 차례 연기를 결정했다.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연립내각이 압승하면서 3차 시도에서는 이전까지와 다른 양상이 나타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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