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담배와 술&#8231;사행산업 등에 높은 세금을 붙여왔다. <픽사베이>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골초로 유명했던 중국의 전 국가주석 덩샤오핑은 흡연의 장점 중 하나로 수익금을 통해 국가발전에 공헌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중국뿐 아니라 세계 대다수 국가들은 술·담배·도박 등 국민건강과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여겨지는 품목에 다량의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 세금들은 유해한 상품의 소비를 억제한다는 뜻에서 죄악세·악행세 등으로 불리는 한편, 실수요자 다수가 저소득층이기 때문에 ‘서민과세’라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다.

◇ 포기하기 어려운 조세수입의 유혹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실이 2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정부가 ‘죄악세’를 통해 거둬들인 세금수입은 18조5,803억원에 달했다. 2012년 세수(11조2,805억원)에 비해 60.7% 높아진 수치다.

가장 기여도가 높은 품목은 단연 담배다. 작년 한 해 담뱃세 수입은 12조3,604억원이었다. 5조원 후반에서 6조원 사이를 유지하던 담뱃세 수입은 지난 2015년 개별소득세와 부가가치세가 신설되면서 단숨에 4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가계가 지출한 담배구매비용은 2015년에 26.4%, 16년에 다시 7.6% 증가했으며 이에 따라 세수도 확대됐다.

카지노·경마장·경륜장 등 사행산업의 세수도 2014년을 기점으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5,000원이었던 카지노 입장세가 14년 7,500원, 15년 9,000원으로 인상됐으며, 매출액과 시장규모도 꾸준히 늘어났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활황을 맞는다는 사행산업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로또·연금복권 등 복권사업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료를 발간한 심재철 의원은 “죄악세가 소득 여부와 관계없이 일괄적으로 부과되는 간접세다보니 서민들에게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세율체계를 정비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 19대 대선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선후보와 홍준표 대선후보 등이 같은 이유를 들며 담뱃세 인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당시 대선후보)은 담뱃세 인하·유지와 관련해 특별한 정책방향을 내놓지 않았으며, 집권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도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한번 늘리면 되돌릴 수 없다’는 복지정책의 비가역성은 그 재원을 마련하는 조세정책에도 고스란히 적용되기 때문이다. 향후 5년간 수십조원의 세수를 보장하는 담뱃세를 포기할 경우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복지 및 일자리 창출 정책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 가격 올려 흡연율 잡는 나라들… 한국은 ‘애매’

조세수입과 건강·공공보건 문제가 함께 걸려있는 담배 과세 이슈는 한국만의 고민거리가 아니다. 가중되는 지출규모에 부담감을 느껴온 주요국들은 이미 담뱃세를 효율적인 재정확보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09년 아동건강보험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하며 한 갑당 39센트였던 담배 연방세율을 1달러1센트로 인상시켰다. 400만명의 어린이와 임산부가 새로 복지혜택을 받게 되면서 급증한 재정수요를 충당하기 위함이었다.

법인세율을 인하해 시장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도 담배에게만은 냉혹했다. ‘인디펜던트’지는 지난 7월 프랑스가 현재 7유로(약 9,280원)인 담배 한 갑의 가격을 연 1유로씩 10유로까지 올리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아그네스 부진 보건장관은 “영국은 담뱃값 상승을 통해 흡연율을 30%에서 20%로 낮추는데 성공했다”며 “프랑스의 공공보건을 위해 담배가격을 대폭 상승시킬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건강을 강조한 프랑스 보건장관의 발언에서 드러나듯, 가격 인상이 흡연율을 낮추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은 조세정책 담당자들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제공한다. 온라인 담배판매사이트 ‘cigs4us' 가 제공하는 1인당 흡연량 순위에서 세계 75위를 기록한 영국의 담배가격은 8.1유로, 91위인 노르웨이는 11.2유로다. 2.2유로인 한국은 13위에 올라있으며 흡연량 세계 1위인 세르비아의 담뱃값은 1갑당 1.5유로로 한화 2,000원에 불과하다.

담뱃세 250% 인상이라는 강수를 던진 미국도 실효를 거뒀다. 블룸버그는 지난 4일(현지시각) 1997년에 24%를 넘었던 미국의 흡연율이 2015년에는 15%까지 떨어졌으며, 특히 담뱃값이 대폭 인상됐던 2009년 이후 감소율이 크게 올랐다고 보도했다. 담뱃값이 10% 오를 때마다 청소년 흡연율이 7% 떨어진다는 미국 폐 협회의 연구결과는 가격에 민감한 청소년·저소득층의 흡연율을 잡을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동 사례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한 차례 인상을 겪은 후에도 한국의 담배가격은 세계 주요국과 비교하면 높지 않은 수준이며, 흡연율 역시 여전히 세계 상위권이다. 한국의 담배조세정책이 서민부담을 덜어주지도, 국민건강을 제고하지도 못한 채 세수입만 늘렸다고 지적받는 이유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