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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 ‘에세이’] H에게- 즐거움 주는 취미 찾으면 노년도 즐겁다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우리가 이렇게 이 순간 아직 살아서 오고가고, 맞이하고 맞이되고, 갈망하고 갈망되고, 주변의 모든 것을 느끼고 음미하고 관조하는 것을 보는 건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프랑스의 심리치료사인 마리 드 엔젤이 쓴 《살맛나는 나이》에 나오는 구절일세. 하루하루 만사에 감사하며 감탄하면서 사는 것.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있지. 아마 그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살아서 일거야. 일종의 소외 현상이지. 주위를 둘러보면, 노년이 되어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꿈으로만 간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더군.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젊은이들 못지않게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노년을 즐길 수 있을 텐데… 박경리 선생도 <꿈>이라는 시에서 “글을 쓸 때는 살아 있다/ 바느질할 때 살아 있다/ 풀을 뽑고 씨앗을 뿌릴 때/ 살아 있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살아 있음을, 삶의 충만감을 만끽할 수 있다는 거지.

내가 사진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벌써 3년 6개월이 지났네. 이순의 나이에 어렵게 내린 결단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내 생에서 몇 안 되는 훌륭한 결정이었던 것 같네. 카메라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매우 행복했거든. 다시 태어난다면 좀 더 일찍 사진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혼자 다짐할 정도로 나에게는 매력적인 놀이(play)야. 그래서 앞으로 두 번에 걸쳐 사진 찍는 행위가 왜 그렇게 좋은지 자네에게 들려주려고 하네. 내가 노년에 사진에 푹 빠져 지내는 이유라고나 할까.

먼저, 예전에도 한 번 인용한 것 같네만, 《논어》<옹야편> 18장에 나오는 구절인 “知之者不如好之者(지지자불호여지자) 好之者不如樂之者(호지자불호여지자)”가 무슨 뜻인지는 알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며,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야. 내가 사진 공부에 푹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사진 찍는 게 마냥 즐겁기 때문일세. 난 무슨 일이든 즐겁지 않으면 하지 않네. 학창 시절에 공부도 그랬어.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억지로 강요하면 더 어깃장을 놓았네. 사진도 마찬가지야. 지난 3년 여 동안 사진 공부가 놀이처럼 즐거웠기 때문에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했지. 하지만 이렇게 즐거운 사진 찍는 행위도 내가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생기면 카메라 내던져버리고 다른 놀이를 찾을 것이네. 무슨 일이든 내 자신의 즐거움이 아닌 다른 이유 때문에 억지로 붙잡고 있질 못하는 성미야. 그게 내가 조오현 스님의 시 <적멸을 위하여>에 나오는 “삶의 즐거움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는 구절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나중에 당당하고 즐겁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남은 시간 열심히 사진 찍으면서 살고 싶네.

사진이 좋은 두 번째 이유는 외롭지 않기 위해서야. 나도 이제 늙는다는 게 씁쓸하고 쓸쓸한 일임을 아는 나이가 되었네. 김사이 시인의 <보고 싶구나>에 나오는 구절처럼, “너무 외로워서 119에 수백 번 허위신고 했다던/ 칠순 노인의 뉴스가 스쳐가며/ 나도 벽을 빽빽한 책들을 어루만지거나 마른 장미꽃에게/ 술 한 잔 건네며 중얼거리는 날”이 많아질 수도 있는 나이야. 하지만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사진공부를 하다보면 과거의 ‘추억’을, ‘왕년의 젊음’을 독주처럼 마시면서 쓸쓸해하거나 가는 세월을 원망할 필요가 없어지네. “사지육신 멀쩡해도 더는 아무도 존중”하지 않고, “밥만 축내는 잉여인간으로 냉대”한다고 불평하고, “도대체 예의가 없다”고 세상 탓해봤자 내 자신만 더 추해진다는 걸 알지. 그래서 요즘은 카메라가 제일 친한 친구야. 그 친구랑 밖에 나가면 세상 만물 모두가 내 친구가 되어주지. 예전보다 친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어. 사람이든, 꽃이든, 자연풍경이든, 건축물이든, 내가 좋아하는 피사체들과 놀다 보면 하루가 번쩍 가네. 이러니 어디 외로움이 파고 들 틈이 있겠는가?

사진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초보자들에게 흔히 하는 가르침들 중에 ‘발로 뛰어라’는 말이 있네. 열심히 움직여야 자기가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가 있다는 뜻이야. 그래서 사진가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풍경이나 대상을 담기 위해 많은 발품을 팔아야 하네. 그러니 자연스럽게 많은 운동을 할 수밖에 없지. 내가 사진을 찍는 세 번째 이유는 심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야. 많이 걸으니 비만이나 고혈압 같은 성인병 예방이나 치료에도 좋아. 게다가 사진 찍는 취미는 다른 운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돈도 많이 들지 않네. 요즘 디지털 카메라들은 예전처럼 비싼 필름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진 공부에 들어가는 비용도 크게 줄어들었어. 암튼 사진은 나이에 상관없이 카메라를 들 힘만 있으면 계속 할 수 있는 취미야. 그래서 난 셔터를 누를 힘이 있을 때까지 사진을 찍으면서 건강하게 늙고 싶네.

오늘은 구상 시인의 <노경> 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이만 마치고 싶네. 다음 편지에서도 내가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를 계속 들려주겠네. 기대하시게나.

이제 초목(草木)의 잎새나 꽃처럼/ 계절마다 피고 스러지던/ 무상(無常)한 꿈에서 깨어나//죽음을 넘어 피안(彼岸)에다 피울/ 찬란하고도 불멸(不滅)하는 꿈을 껴안고/ 백금(白金)같이 빛나는 노년(老年)을 살자.

시사위크  sisaweek@sisa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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