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주지사로 당선된 랄프 노덤(민주당)이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지난 7일(현지시각) 열린 뉴욕·뉴저지·버지니아 주지사 선거는 민주당이 압승으로 끝났다. 3개 주 모두 민주당 후보가 큰 차이로 당선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1주년을 씁쓸한 기분으로 보내게 됐다. 공화당은 내년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 공화당의 기대 뿌리친 버지니아

뉴욕과 뉴저지는 원래부터 민주당의 색채가 진한 땅이다. 두 주는 지난 2016년 대선에서 모두 힐러리 클린턴에게 표를 던졌으며, 힐러리 본인이 뉴욕 주 상원의원 출신이기도 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뉴저지의 필 머피 민주당 후보와 뉴욕의 빌 드 더블라지오 현 시장은 각각 55.5%와 66.4%의 지지를 얻으며 선거지도를 파란색으로 물들였다.

버지니아는 조금 다르다. 비록 최근 세 번의 대선에선 오바마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에게 표를 보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1968년부터 2004년까지 모두 공화당 후보가 승리를 거뒀던 지역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지난 대선에서 5.32%p 차이로 힐러리에게 선거인단을 내줬던 기억을 설욕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CNN은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는 민주당이 대선 패배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 거쳐야 할 첫 시험이다”고 평가하며 ‘경합주’로서의 의의를 높게 평가했다.

버지니아 주지사로 출마한 에드워드 길레스피는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을 지냈던 인물이며, 조지 부시 전 대통령(‘아들 부시’)의 참모를 맡았던 경력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으로 바쁜 와중에도 트위터를 통해 “길레스피는 버지니아의 높은 범죄율과 낮은 경제수준을 완전히 뒤바꿔놓을 인물이다”며 투표를 독려했다. 백악관과 공화당 모두 버지니아에 공을 들인 셈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랠프 노섬 민주당 후보는 53.89%의 득표율로 44.99%에 그친 길레스피를 따돌렸다. 두 후보의 득표율 차인 8.9%p는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는 1985년 이후 가장 큰 마진 기록이다.

◇ ‘트럼프 리더십’ 한계 봉착했나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결과가 확정된 후 다시 트위터를 켰다. 이번에는 “에드 길레스피는 나와 내가 대변하는 가치들을 포용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전가하기 위함이었다. 주지사 선거의 패배가 트럼프와 공화당의 패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있었던 하원선거 결과(공화당이 4곳 모두 승리)를 언급하며 자신과 당이 건재하다고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거 패배의 여파가 백악관과 의회를 덮치지 못하도록 사전 차단하려던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외신들은 에드워드 길레스피 후보의 선거 전략이 트럼프 대통령의 그것과 거의 똑같았음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길레스피 후보는 선거광고를 통해 버지니아의 불안한 치안을 문제 삼으며 민주당의 이민자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지난 3일(현지시각)에는 NFL 선수들이 인종차별에 항의하기 위해 국가 연주 중 무릎을 꿇었던 것을 비난하기도 했다.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일 년 반 동안 보였던 언행들과 일치한다.

CNN은 이를 두고 “‘트럼피즘’은 트럼프에게만 통한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공화당이 2016년 대선과 같은 ‘반전’을 다시 기대하기 어려우며, 어설프게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전략을 따라하려는 시도는 공화당을 패배로 이끌 수 있다는 뜻이다. 보수 성향의 잡지 ‘내셔널 리뷰’가 선거 전 버지니아를 가리켜 “트럼프의 시대에서 공화당 주류파가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지 보여줄 사례”라고 평가한 것도 이번 지방선거가 가지는 의미를 잘 드러낸다.

충격적인 패배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관계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의회전문지 더 힐은 8일(현지시각) 지방선거 결과를 보도하며 “공화당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낮은 지지도가 2018년 중간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불안을 곱씹게 됐다. 백악관은 제어기능에 타격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TV에 출연해 “우리는 이미 트럼프와 함께하기로 선택했다. 공화당원들은 좋든 싫든 그와 더 협력해야 한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36~37%를 맴돌고 있는 대통령 지지율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공화당 내부의 불만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2016년 대선과 하원의원 선거에서 패배하며 백악관과 의회를 모두 공화당에 내줬던 민주당은 오래간만에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민주당 하원 선거위원회의 일원이었던 제시 퍼거슨은 CNN을 통해 “이번 지방선거는 ‘반 트럼프’를 외치는 시민들을 결집시킬 계기가 될 것이다”며 내년 중간선거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민주당은 공화당이 차지한 240석 중 24석을 뒤집으면 하원의 제1당으로 올라설 수 있으며, 더 힐은 이 시나리오가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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