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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재의 ‘향상일로’] 진정한 ‘배려配慮’
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우리 모두 21세기 무한경쟁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점점 경쟁이 과열되어 가면서 인간성의 중요한 덕목의 하나인 ‘배려심’도 이에 비례해 급격히 줄어들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독서의 계절인 가을답게 그동안 독서를 통해 저의 가슴을 먹먹하게 할 정도로 진한 감동을 주었던 몇몇 일화들을 중심으로 진정한 ‘배려’의 참뜻과 그 실천 방안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 ‘배려(配慮)’의 참뜻
사전적인 의미는 ‘도와주려고 이리저리 마음을 씀’이나, 한자를 해체해 그 참뜻을 세밀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글자인 나눌 ‘배(配)’는 (술)단지를 뜻하는 ‘유(酉)’와 사람 자신을 뜻하는 ‘기(己)’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사람이 자기가 담근 것을 여러 단지로 나누어 늘어놓은 형상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한편 두 번째 글자인 생각할 ‘려(慮)’는 마음을 뜻하는 ‘심(心)’이나 또는 생각을 뜻하는 ‘사(思)’와 빙빙 돈다는 뜻을 가진 ‘로(盧)’의 부분을 생략하며 결합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배려’의 참뜻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쪼개어 이웃과 서로 나누기 위해 두루 마음을 쓴다는 것’으로 새기면 좋겠지요.

◇ 이덕무의 덕치(德治)
이는 <책만 보는 바보>에 들어 있는 일화입니다. 실학자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당대 최고의 독서가로 명성을 떨치다가 그 능력을 인정받고 서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38세에 규장각 검서관이 됐고, 후에 적성(지금의 파주) 현감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때 관아의 창고 곡식을 훔친 도둑이 잡혔는데 훔치지 않았다는 거짓말만 되풀이 하자, 그대로 두면 고문을 받다 죽을 것을 알고 측은지심에 단 둘이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눴습니다. “굶주려 있는 사람은 바르게 사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네 본심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자 도둑도 눈물을 흘리며 죄를 뉘우쳤습니다.
참고로 이덕무는 ‘책만 읽는 바보’라는 뜻의 ‘간서치(看書痴)’란 별칭이 있는데 깊이 되새겨 보면, 바른 독서는 실천으로 이어지며 국법이 아니라 어려운 처지의 고을 백성들을 덕으로 다스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판단됩니다.

◇ 랍비의 짧은 말 한마디
이는 19세기 세속주의 여파로 공동체라고는 단지 수도원장과 네 명의 수사로 이루어진, 날로 쇠락해가며 장차 문을 닫게 될 한 수도원에 관한,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에 들어있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이들 모두 일흔이 넘은 옹고집 늙은이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도원장이 문득 근처 숲속 오두막에 은거하고 있던, 랍비가 떠올랐습니다. 곧 그를 찾아가 수도원을 살리기 위한 조언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랍비가 “사정은 딱하지만 조언해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수도원에 계신 여러분 중에 성인(聖人)이 한 분 계시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는 작별 후 수도원으로 돌아온 원장은 궁금해 하는 동료 옹고집 수사들에게 “내가 막 떠나려고 할 때 그가 딱 한마디 하였는데, 좀 괴이한 소리였습니다. 우리 중에 성인이 있다는 겁니다. 그가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방문 결과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부터 수사들은 랍비가 한 말을 생각하며 “나는 분명히 아닌데 그렇다면 누가 성인이란 말인가?”하며 숙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랍비가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다는 생각에 다른 4명 가운데 분명히 한 분이 성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각별히 공경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얼마 후 모두가 성인의 삶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런 감동적인 모습을 접한 방문객들 가운데 수도회에 입회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몇 년 지나지 않아 이 수도원은 다시 전처럼 매우 활기찬 수도회가 되었다는 일화입니다.
참고로 유대교의 영적 스승인 랍비는 선종의 선사들과 그 깊이가 같아서 장황한 설명 없이 지혜롭게, ‘당신들 가운데 성인이 한 분 계시네요.’라는 선사들의 전매특허인 ‘짧은 말 한마디’[一轉語]를 통해 옹고집 늙은 수사들을 모두 성인으로 탈바꿈시켰던 것입니다.

◇ 만암 선사의 자비
이는 <마지막 입는 옷에는 주머니가 없네>라는 구도(求道)소설 속에 들어있는 만암(曼庵, 1876-1957) 선사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일화입니다.
“만암 선사는 온 나라가 흉년이 들자 백양사의 시급한 현안 문제인 중창불사도 멈추시고 백성들의 배고픈 실상을 측은히 여겨 사찰의 양식을 털어 나누어 주셨고, 백양사 대중들로 하여금 겉보리를 맷돌에 갈아 죽을 쑤어 먹게 하고 스님께서도 대중과 함께 똑같은 음식을 드셨다. 그리고는 대중 스님들의 불만을 인식하시고 하루는 대중들을 불러 모으시고 ‘중생들이 굶주리면 수행자들도 굶주려야 하는 게야. 그런 각오가 돼 있지 않으면 참다운 수행자라 할 수 없는 법. 배고픈 것도 수행으로 알고 참고 견뎌야 할 것이니 내 말 다 들 알아들으셨는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다른 관련 자료를 보면 선사께서 마을 사람들의 자존심을 깊이 배려해 그냥 나누어 주신 것이 아니라 경관이 뛰어나 손볼 곳 없는 근처 쌍계루 앞에 일부러 보를 막는 일을 시키고 그 품삯으로 곡식을 주었다고 합니다. 한편 마을 사람들도 이에 호응해 풍년이 든 해에는 어김없이 백양사에 시주를 많이 해 반드시 그 은혜에 보답했다고 합니다.

◇ 지맹선의 달인
이는 필자가 지난 9월 학기 중이라 바쁜 가운데에도 짬을 내어 읽었던, 지혜로운 맹인(盲人)인 김치헌(70세) 선생님께서 쓰신 책, <좀더 시간이 걸릴 뿐이야>에 관한 일화입니다. 사실 이 책은 4살 때 천연두에 걸려 실명했으나 시각視覺 장애障碍를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삼아 올곧은 삶을 살아온 분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감동적인 대목을 접하며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하면서 읽어내려 갔는데, 그 이유는 제가 몸담고 있는 간화선 수행의 세계에서 적지 않은 분들이 ‘나는 최상승의 선 수행을 하고 있다!’며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데 이 분은 묵묵히 앞이 보이지 않는 역경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 동시에 또한 주위 이웃 분들의 고마움을 온몸에 새기며,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통해 아프리카 맹인들을 위해 헌신해 오는 등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향상일로向上一路’의 길을 치열하게 이어오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본문의 한 대목을 발췌해 책 표지에 드러낸 다음 대목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 ‘고맙다’는 말만 해야 했던 그가 어느 날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이미 그의 꿈은 이뤄져 있었다. ”
그리고 완독을 마치고 나니 이 분은 비록 따로 선 수행을 하지는 않으셨으나 가히 ‘지맹선智盲禪의 달인達人’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제 때 서로 돕기
사실 제가 앞에서 언급한 일화들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는 바로 우리 모두 너와 내가 둘이 아닌 ‘자타불이(自他不二)’를 온몸으로 체득했다면, 누가 누구를 돕는 것이 아니라 ‘응기상자(應期相資)’, 즉 제 때 배려심을 발동해 서로 돕는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적폐청산(積弊淸算)’이라는 구호 아래 우리 사회가 매우 어수선한 것 같습니다. 물론 이번 기회에 잘못을 가려내며 참회와 처벌을 통해 우리 사회를 보다 투명하게 해야겠지만, 고통 받는 백성들을 자기 몸처럼 아끼며 일생토록 헌신했던 재가선사(在家禪師) 소동파가 22세 때 성시(省試)에 응시해 진사에 급제했을 때 제출했던 답안지 가운데, 다음의 핵심 내용을 가슴 깊이 새기며 현재 힘 있는 자리에 있는 분들 모두 현재보다 조금 더 정상을 참작하는 배려심을 발휘하시기를 간절히 염원해 봅니다.
‘인자함은 지나쳐도 군자로서 문제가 없지만, 정의로움이 지나치면 그것이 발전하여 잔인한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인자함은 지나쳐도 되지만 정의로움이 지나쳐서는 안된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전공분야: 입자이론물리학)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한편 1975년 10월 임제종 양기파의 법맥을 이은 선도회 초대 지도법사이셨던 종달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스승이 제시한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이후 지금까지 선도회(2009년 사단법인 선도성찰나눔실천회로 새롭게 발족)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한편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께 두 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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