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베트남 다낭에 10일 도착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대체로 후보시절 공약에 담았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다소 모호했던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입장도 정리했다. 이는 취임 이후 꾸준히 수행했던 각국과의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가능했다.

◇ 북핵문제 ‘선 핵동결, 후 인센티브 논의’

가장 관심사인 북핵 문제에 관해서는 ‘선 핵동결’을 분명히 했다. 북한이 먼저 완전하게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핵을 동결하고 미사일 개발을 중단을 한 이후에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북한의 핵 동결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같은 선상에 놓고 협상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는 단호했다. 대화테이블이 열리고 북한이 1차 핵동결을 선언하면 그 다음 수순으로 논의해볼 수 있다는 것이지 선 핵동결의 대가로 제시할 사안은 아니라는 얘기다.

동남아 순방에 앞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먼저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온다면 그때는 우선 1단계로 핵 동결을 위해서, 그 다음 단계로는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를 위해서 우리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어떤 상응한 조치를 취해 줄 수 있을 것인지, 그 대화 과정에서 협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북한을 대화테이블까지 이끌어내는 방법론으로는 ‘외교적 해결’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서는 유엔과 중국, 러시아 등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을 국빈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더욱 힘을 얻게 됐다.

◇ ‘전술핵 배치·한미일 군사동맹·사드 추가배치·MD체제 편입’ NO

문재인 정부 주요 외교정책

북한 핵 대응책으로 제시됐던 몇몇 사안에 대해서는 반대를 천명했다. 한국당 등 보수진영에서 요구한 한반도 전술핵 배치는 하지 않겠다는 뜻이 분명하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대의에 어긋난다는 점에서다. 또한 한미일 군사동맹과 미국의 MD체제에 편입하지 않겠다는 점도 밝혔다.

북한의 위협에 맞서 한미 방위력 증강이 필요하고, 일본과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한미일 군사동맹’까지 나아가진 않겠다는 의미다. 국정감사에 나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공개발언으로 이 같은 점을 확인한 바 있다. 다만 사드 추가배치에 관해서는 “추가배치 계획이 없다”며 일부 여지를 남겨뒀다.

◇ 대중관계 ‘구동존이’

중국과는 관계 정상화 및 ‘경제협력’을 추구한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북핵, 사드 등 안보현안은 일단 덮고 간다는 기조다. 이는 ‘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중국의 외교정책인 구동존이와 일치하는 측면이 있다. 이에 따라 11일 예정된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도 경제협력 및 관계정상화에 초점이 맞춰질 예정이다.

다만 외교가에서는 아쉽다는 평가도 있다.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한미일 군사동맹, 사드 추가배치 등인데, ‘관계정상화’를 위해 우리가 가진 유리한 패를 너무 쉽게 넘겨줬다는 이유에서다. 사드문제 역시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어서 다시 논란이 될 소지가 남았다. 물론 대중관계 경색의 원인이 박근혜 정부에 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라고 보긴 힘들다.

◇ ‘아세안=신남방, 러시아=신북방’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외교전략은 ‘균형외교’다. 미중일러 등 한반도 주변 4강 중심으로 이뤄졌던 한국 외교의 지평을 ASEN, EU, 러시아로 넓히자는 얘기다. 다른 대미·대중 외교전략이 이전 정부들과 대동소이 했다면, 균형외교론은 문재인 정부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균형외교’에 대한 오해도 있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등거리 외교’가 아니냐는 의심에서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한미 공동기자회견에서 “균형외교는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번영을 위해서 우리 한국외교의 지평을 더 넓히겠다는 것”이라며 “중국도 포함되고 아세안, 러시아, EU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다변화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함께 있던 공식석상에서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오해는 불식됐다.

구체적인 움직임도 있다.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했던 문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9개 분야를 제시, 적극적인 경제협력을 약속했다. 과거 한러관계가 남북관계의 종속적인 측면이 있다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북한을 상수로 놓지 않고, 현 단계에서 할 수 있는 한러협력을 먼저 모색하겠다는 게 가장 큰 차이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의 협력에도 적극적이다. 아세안은 더이상 ‘생산기지’이 아닌 ‘소비시장’으로 성장했다는 판단이 기초가 됐다. 중국과 미국에 주로 한정돼 있는 교역대상을 넓히는 한편, 국내기업들의 활로를 열어주기 위한 ‘경제적’ 목적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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