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두 리더의 만남은 웃음과 악수 속에 마무리됐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려 자금성을 모두 비우는 파격을 선보였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 배경화면을 시진핑 주석 부부와 찍은 사진으로 바꿈으로서 환대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번 정상회담의 백미는 중국이 제시한 2,500억달러짜리 구매‧투자협약이었다. 지난해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낸 3,470억달러의 흑자를 두고 수차례 날을 세웠던 트럼프 대통령도 이번만은 흡족해했다.

◇ 협약내역에서 드러난 중국의 산업굴기

중국‧미국 기업들이 9일 공개한 경제협력 합의목록은 중국이 어느 산업을 차세대주자로 낙점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가장 거래규모가 컸던 것은 에너지산업이었다. 국영기업인 중국에너지투자공사가 웨스트버지니아의 셰일가스와 화학제품에 향후 20년간 840억달러를, 중국 최대의 석유회사 시노펙은 알래스카의 에너지개발과 천연가스 정제산업에 43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알래스카 주정부는 이번 협약으로 1만2,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밝혔으며, 블룸버그는 허리케인 피해를 입었던 텍사스 지역도 비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상 최대의 오염물질 배출국으로 알려진 중국은 동시에 가장 적극적으로 친환경에너지산업을 육성하고 있는 나라기도 하다. 중국 정부는 2030년까지 전체 에너지소모량 중 20% 이상을 친환경에너지로 충당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국제재생에너지기구가 밝힌 중국의 태양광 산업 종사자는 250만명(미국 26만명)에 달한다. 중국으로서는 미국이 끈질기게 지적해온 에너지 분야의 무역불균형 문제에서 체면을 차림과 동시에 차세대 주력산업의 사업영역도 확장한 셈이다.

‘항공굴기’라는 별칭까지 붙은 항공기산업도 빠지지 않았다. 보잉사는 370억달러 규모의 항공기 300대를 중국국제항공‧중국남방항공 등에 판매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2015년 워싱턴의 보잉사 공장을 방문하며 380억달러어치 계약을 체결한 바 있으며, 독일을 찾았던 지난 7월에는 220억달러를 들여 에어버스 항공기 140대를 구매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당초 2024년경에 중국의 항공시장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지난 10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이를 2022년으로 앞당겼다.

세계 3위의 반도체업체 퀄컴은 샤오미‧오포 등과 120억달러의 비구속적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중국 규제당국은 지난 2015년 반독점법 위반과 과다한 특허사용료를 이유로 퀄컴에 9억7,5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한 경력이 있지만, CNN은 “중국은 반도체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이번 계약을 보호할 것이다”는 전문가 의견을 전했다. 퀄컴은 이미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중국에서 거둬들이고 있다.

◇ 외신의 점수표는 ‘트럼프: 0, 시진핑: 1’

사상 최대 규모의 구매‧투자 약속을 얻어낸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등 민감한 이슈를 회피한 시진핑 주석은 각자 자신의 몫을 챙기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 언론들은 ‘누가 더 많은 것을 얻어갔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시진핑 주석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시진핑 주석이 배석했던 연설자리에서 무역불균형의 책임을 중국이 아닌 자신의 전임자들에게 돌렸다. 뿐만 아니라 “자국민의 이익을 위했을 뿐인 중국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는 말로 중국을 비호하기도 했다. 중국산 강철과 알루미늄 등에 관세를 부과하며 무역긴장을 고조시켰던 과거는 잠시 묻어뒀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삼으로서 중국의 위상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시진핑 주석은 주석 자리에 오르기 전부터 중국과 미국이 동등한 위치에서 세계리더의 자리를 공유해 ‘투키디데스의 함정(기성강국과 신흥강국의 대결)’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를 아시아 패권다툼에서 미국을 밀어내려는 시도로 받아들이고 거부해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방중기간동안 보여준 태도는 훨씬 호의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얻어낸 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협력약속도 점수 차를 뒤집기에는 다소 부족한듯하다. 무역장벽 해소를 위한 구조적 개선책 없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국제경제 분석기관 EIU(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 소속의 중국전문가 닉 마로는 CNN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얻어낸 어떤 것들도 양국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대통령의 방문은 대외정책의 새 장을 열어왔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방중은 ‘기회를 놓쳤다’는 평가를 들을만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타오 시에 베이징외국어대학 교수도 “두 정상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친밀한 분위기를 연출하겠지만, 그것이 양국관계를 뒤틀어온 구조적 요인들을 바로잡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의견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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