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니스트

모으는 게 취미인 사람들이 있다. 영어로 컬렉터라는 이름을 가진 수집가들이 그들이고 나이기도 하고 너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이기도 하다. 모두들 적어도 한두 개는 같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 한개면 되는데 굳이 필요도 없다. 그런데 여분으로 아니면 예비로 하나를 더 가지고 있다. 예전 것과 새것을 함께 가지고 있기도 하고, 좀 다른 디자인의 것도 있다. 받은 것도 있고 하나 더 산 것도 있고. 그렇게 몇 개를 넘고 수십 개, 수백 개를 넘는 경우가 있다. 아무튼 수집을 하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아니 생동감 있는 ‘탐험’이다. 하지만 정작 수백을 넘게 되면 가족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폐”가 되기도 한다. 이사를 갈 경우 속된말로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한다는 것이 뭔지 굳이 말할 것도 없지만, 책을 읽은 것을 넘어 사서 모으는 것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대학 시절부터 사 모은 책이 수천 권. 그 가운데 몇 권이나 제대로 봤을까? 아득한 기억 속에서 읽은 책을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자동계산이 가능한 화살을 쏴보지만 제목까지 기억나는 것은 백여 권도 안되는듯해서 씁쓸한 따름이다. 연구자나 학자가 아닌 책을 모으는 수집가의 삶을 수십 년 살다보니, 자신만을 위한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런 공간이 바로 서재가 아닐까? 그래서 이젠 우리는 책장을 비롯하여, 책상, 의자, 책이 갖춰진 서재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다. 음악이 흐르고 미술이 걸려 있고 문화와 예술이 함께 하는 정적이면서도 활동이 용이한 공간의 구성은 어려울까? 집이 가족이라면 서재는 자신이기도 할 것이다. 나만의 공간은 내가 만든 공간이면서도 어쩌면 나를 만들어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맑고 밝게 성장을 해가는 공간을 또 만들고 공간은 나를 그렇게 만들어 간다.

김윤관의 ‘아무튼, 서재’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라는 아무튼 시리즈의 두 번째 책으로 ‘아무튼, 서재’가 출간되었다. 연장 대신 글을 쓴 저자 김윤관의 직업은 목수다. 주로 서재 가구를 만드는 그는 2014년에 ‘조선 클래식 part 01-남자의 서재’라는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구한말과 일제를 넘나들며 우리 고가구의 모든 것을 ‘해체’를 통해서 오늘의 가구를 재구성하려는 그의 모습은 분명 아름답다. ‘서재’에 있어서만큼은 나름의 소신과 철학이 분명한 그가 묵직하지만 소박하고, 유려하면서도 직관적이며 어떤 군더더기도 없이 쓴 아홉 편의 에세이는 독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가끔 사진작품 가운데 등장하는 햇빛이 잘 비치는 창 아래 놓여 있는 자기만의 정갈한 책상 하나와 어우러져 손색이 없는 서재와 만나게 될 것이다. 낙원동에 있는 3,000원짜리 이발소를 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산 책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하다. 그동안 구박당했던 귀중한 책에게 이제 ‘서재’라는 이름의 새집을 지어주고 싶은 이라면 꼭 봐야 할 것이다.

저자가 그저 작은 소용이 닿는 가구를 만드는 목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마음에 든다. 작가나 예술가가 아닌 그냥 목수 아저씨로 거창하게 소명 등을 떠들지 않는 그래서 소소한 나무의 삶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낮에는 ‘김윤관 목가구 공방&아카데미’에서 가구 만들기와 예비 목수 양성에 힘쓰고, 저녁에는 서재에서 텔레비전을 껴안고 사는 그의 책을 도서출판 제철소 김태형 대표가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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