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정상회담에 참석해 연설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 주석은 미국 없는 경제협력체인 RCEP를 주장해왔다. <뉴시스/신화>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35억명의 인구와 전 세계 경제력의 3분의 1을 대표하는 16인이 한 자리에 모였다. 유럽연합(EU)을 넘어서는 거대 자유무역체제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14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RCEP 정상회의에서 16개 참가국은 ‘상호 경제통합을 심화할 필요성을 공유하며, 2018년 중 협상을 타결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한국도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하며 적극 동참할 의사가 있음을 드러냈다.

◇ 미국 빠진 사이 손 뻗는 중국

RCEP 협상은 지난 2013년부터 시작됐지만, 올해 들어 그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논의를 주도해온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TPP 협상을 뒤엎었던 지난 1월부터 RCEP 협상에 박차를 가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교역전략은 다자간무역협정이 아닌 양자협상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10일 열린 APEC 정상회담 개회식은 미국과 중국이 어떤 시선에서 국제무역정세를 바라보고 있는지 고스란히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차례로 단상에 올라 서로 정반대되는 비전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동아시아 수출업계에 대한 선전포고와 다름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무역상대국들이 앞으로 우리와 같은 규칙들을 따를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말로 엄포를 놓았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대통령답게 “미국은 너무 오랫동안, 적절하지 않은 조건 하에서 외국 상품을 수입해왔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들은 우리만큼 시장을 열지 않았다”며 참석자들을 직설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불평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한국·중국·일본은 물론 베트남·타이 등 APEC 정상회담에 모인 대다수의 국가들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상당한 이득을 보고 있다. 연설 도중 모 참석자가 웃음을 터트리자 “아마도 저분은 무역흑자국에서 오셨을 것이다”고 꼬집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농담은 사실일 확률이 상당히 높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다자간무역협상을 통한 아시아의 번영을 설파한 시진핑 주석의 연설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소지만 제공한다.

싱가포르 투자자문회사의 데이비드 스킬링 이사는 블룸버그를 통해 “‘미국 우선주의’적 접근법은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정무역을 ‘적자 없는 거래’로 정의하고 있는 이상, 그와 양자협정을 맺으려는 나라가 얼마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설명이다.

◇ 아직은 합의 필요한 RCEP

RCEP 협상이 순풍에 돛 단 듯 마냥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당초 연내 협상완료를 목표로 삼았지만, 몇몇 민감한 이슈들에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며 타결계획을 내년으로 미뤄야 했다. 대다수의 참가국들은 RCEP 타결을 위해 무리하게 속도를 낼 필요가 없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핵심 쟁점은 어느 정도까지 시장을 개방할지다.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은 막상 자국시장을 개방하는 데는 주저하고 있다. 중국은 OECD의 해외직접투자에 대한 개방성 평가에서 62개국 중 59위에 머물러있으며, 경제구조를 내수 중심으로 재구축하려 시도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일본·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선진국과 라오스(GDP 113위, IMF)·브루나이(128위) 등 약소국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다.

역내 자유무역체제의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부활 조짐은 중국의 RCEP 계획표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 미국을 제외한 11개 TPP 회원국은 자체 경제동반자협정(TPP11)을 타결할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일본·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7개국은 RCEP와 TPP에 모두 참여하는 중이기도 하다.

한국은 아직까지 TPP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참여 가능성은 열어둔 채 진행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상태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심기를 자극할 가능성을 피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반면 RCEP 논의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중이다. 경제성장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만큼 역내 자유무역협상에서 소외되는 것은 피해야 할 상황이다. 산업계가 2012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한·중·일 3국간의 FTA 협상에 속도를 내야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중·일FTA 협상 결과를 RCEP 협상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역내 경제통합에서 한국의 입장을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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