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들어 상승세를 이어가던 금값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픽사베이>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금시장이 다시 가라앉았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가 제시하는 온스당 금 시세는 16일 현재 1,276달러40센트로 지난 삼 주 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1,151달러로 새해를 시작해 아홉 달 만에 200달러를 끌어올렸던 기세는 찾아볼 수 없다.

◇ 역전된 금과 달러의 위상

달러는 금값과 가장 상관관계가 높다고 알려진 재화다. 경제전문지 블룸버그가 6개 주요국 통화를 기준으로 산정한 달러가치인 ‘블룸버그 달러 인덱스’는 작년 말 정점을 찍은 후 올해 9월까지 하락일로를 걸었다. 이 기간 동안 달러가치가 그렸던 궤적은 금 시세 그래프를 위아래로 뒤집어놓은 모습과 거의 흡사하다.

최근 하락한 금값은 다시 고개를 든 ‘강한 달러’와 궤를 같이한다. 9월 초 2년8개월여 만의 최저점(91.352)을 기록했던 달러 인덱스는 이후 3p 가량 높아졌다. 고용·생산·소비 등의 지표에서 모두 안정적인 회복세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경제가 원인이다. 감세를 통한 경제 활성화가 핵심인 트럼프 행정부의 세제개혁안이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달러의 미래가치전망을 높였다. 비록 11월 초 발표된 경제지표들이 기대에 다소 못 미치긴 했지만, 전반적인 경제회복세를 해칠 정도는 아니었다.

안전자산의 대명사인 금은 시장에 불확실성이 늘어날수록 몸값이 높아지는 특징이 있다. 금 시세는 올해 여름 북한이 핵·미사일 위협수위를 높일 때마다 산발적으로 상승했으며,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기로 결정했던 2016년 6월에는 5주간 11%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가변동성지수(VIX)와 CNN의 ‘공포와 탐욕지수’가 주식시장의 불확실성이 늘어났다고 입을 모으는 지금 금값의 변동성은 최근 7년여 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경제성장에 대한 시장의 믿음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 통화긴축정책 앞에서 작아지는 금… 안전자산수요는 변수

금은 다시 달콤했던 한여름 밤의 꿈을 만끽할 수 있을까. 다수의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고 있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의 끝을 선언하며 긴축계획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을 제외한 주요국들은 대부분 금리인상에 긍정적인 태도다. 영국은행은 지난 2일(현지시각) 10년5개월 동안 유지했던 0.25%의 기준금리를 0.5%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2015년 말부터 총 네 차례 금리인상을 단행했으며, 올해 12월 중 한 번 더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유동성의 시대’라는 이름하에 활짝 열렸던 중앙은행들의 지갑도 다시 닫힐 태세다. 미국 연준은 국채매입·자산재투자를 통해 4조5,000억달러까지 늘렸던 보유자산을 달마다 100억달러씩 줄여나갈 계획이다. 유럽중앙은행(ECB)도 내년부터 월평균 채권매입량을 현재의 절반 수준인 300억유로로 낮추겠다고 지난 10월 발표했다.

금리의 상승은 곧 돈값의 상승을 뜻하며, 이 경우 금리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실물자산들은 상대적으로 투자가치가 떨어진다. 금도 예외는 아니다. 스카이브릿지 캐피탈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트로이 가이스키는 블룸버그를 통해 “연방준비은행과 유럽중앙은행의 행보를 볼 때 금시장이 다시 활성화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고 밝혔다. 고금리와 긴축적 통화정책은 금시장에 호의적이지 않으며, 미국경제가 다시 불경기를 맞지 않는 이상 금값은 하방 또는 수평으로만 움직일 것이라는 뜻이다.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대립은 다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를 높일 수 있다. 양측 모두 쉽사리 재단할 수 없는 성향인 만큼 예측도 쉽지 않다. 왕자들 간의 숙청을 통해 정치구도를 재편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가부도위기에 처한 베네수엘라도 자산시장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으로 뽑힌다.

금시장의 큰 손인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위안화를 기축통화에 편입시키려 시도하는 중국과 불안정한 루블화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는 러시아는 금을 확보해 자국통화의 가치를 높이려 나서고 있다. 세계금협회(WGC)의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 중앙은행은 올해 3분기 63톤의 금을 매입하면서 전 세계 중앙은행 금 구매량의 57%를 담당했다. 동기간 중국의 골드바·골드코인 구매는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했다. 국제 금 수요가 2009년 3분기 이래 최저치를 기록한 와중에 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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