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 우원조 
▲17대 국회의원 비서관 ▲18대, 19대, 20대 국회의원 보좌관 ▲부산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하는 길은 포개져 있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을 묵직한 시선으로 그려낸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한 구절이다.

1636년(인조 14) 그해 겨울, 얼어붙고 고립된 <남한산성>에는 시대의 명운을 가르는 두 사람이 있었다. 예조판서 김상헌과 이조판서 최명길. 그들 사이에는 끝없는 의견 충돌과 대립이 함께 존재했다. 청에 맞서 싸우자는 의견과 굴욕적인 항복을 하자는 의견 대립이 계속 이어졌다. 김상헌은 끝없이 말했다. ‘갈 수 없는 길은 가지 말자. 죽더라도 역사에 살아남는 길을 가자’고.

2017년 겨울. 대한민국 보수의 명운을 놓고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의 한판 승부가 시작됐다.

형세만 본다면, 이 싸움의 승패는 이미 정해진 듯하다. 지난 1월, 33명의 국회의원들이 지도에도 없는 개혁보수의 길을 가겠다고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불과 열 달도 안 돼, 22명이 1~2차에 걸쳐 자유한국당으로 되돌아갔다. 탈당파들은 자유한국당만이 살길이라고 말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살아서 죽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지금, 바른정당에는 11명이 남았다. 원내교섭단체마저 무너졌다. 당의 살림살이는 더 쪼그라들었다. 모양만 보면 영락없는 <남한산성> 신세다.

13일 당대표로 선출된 유승민 대표는 12월 중순까지 중도ㆍ보수통합 논의의 성과를 내겠다고 했지만, 각 정당별ㆍ계파별로 중도ㆍ보수통합에 대한 온도 차가 크다.

통합의 한축을 이루는 국민의당은 당의 노선을 둘러싸고 계파별 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에 중도ㆍ보수통합 논의가 한 달 안에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원내 제1당’ 재탈환을 노리는 자유한국당은 바른정당 의원들의 추가 탈당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바른정당의 독자생존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제, 바른정당에 남은 11명은 결정해야 한다.

굴욕과 치욕을 누르고 자유한국당으로 갈 것인지, 11명이 일심(一心)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썩은 보수에 맞서 싸워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보수로 기록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국민들은 묻고 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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