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1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 심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특수활동비 상납) 요구를 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달라졌다. 검찰 조사에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그가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을 지시한 사람을 지목했다.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1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 심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요구를 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사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상납 지시자로 언급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은 상납 지시자에 대해 구체적인 진술을 하지 않았다. 이날 두 사람의 영장 심사도 진행됐으나 ‘기억나지 않는다’, ‘잘 몰랐다’는 취지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특히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 중에 누군가가 청와대에 돈을 줘야 한다고 했지만 누가 말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청와대에서 우연히 만난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이 돈을 달라고 한 것 같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세 사람은 자신들이 받고 있는 뇌물공여, 국고손실 혐의에 대해 부인해왔다. “청와대의 요구로 돈을 줬을 뿐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특활비를 전달한 뒤 이득을 취한 게 없다는 점에서 범죄라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의 생각은 달랐다. 국가 예산을 용도에 맞지 않게 전용한 것 또한 중범죄로 봤다.

결국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은 17일 새벽 구속됐다. 영장 심사를 진행한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행을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고, 중요 부분에 관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병호 전 국정원장의 영장은 기각됐다. “주거와 가족, 수사 진척 정도 및 증거 관계 등을 종합하면 도망과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권순호 부장판사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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