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주요 기업들의 재단 운영 실태를 살펴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우선,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재단의 운영 실태를 전수조사할 계획을 갖고 있다.”

지난 2일, 5대그룹 간담회 자리에서 나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발언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공정위에 신설된 기업집단국의 향후 역할 및 계획을 설명하며 이처럼 구체적인 사안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것을 미리 말씀드리는 것은 기업 측에서도 미리 점검해보고, 선제적으로 위험요소들을 관리할 것을 당부 드리기 위해서다”라고 덧붙였다. 친절한 안내인 동시에 일종의 경고였고, 5대그룹을 비롯한 주요 기업들은 새로운 숙제를 받아들게 됐다.

김상조 위원장이 재단을 들여다보겠다고 밝힌 이유는 만연하고 있는 꼼수를 막기 위해서다. 재단을 본래 목적이 아닌, 오너일가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곳이 적지 않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각종 지원사업엔 소극적이면서, 계열사 지분 확보 등을 통해 절세 효과를 안겨주고 있는 재단들이 긴장하게 됐다.

◇ 11년간 기부한 주식… 가치는 ‘250억’ 하락

이런 상황에서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입장은 다시 한 번 난처해지게 됐다. 선친의 아호를 따 설립한 남촌재단 때문이다.

남촌재단은 2006년 설립됐으며, ‘소외계층 자립기반 조성지원’을 목적으로 의료, 교육·장학, 문화·복지, 학술·연구 등의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문제는 총 수입 중 ‘목적사업비’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이란 오명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7월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남촌재단은 30대 그룹의 46개 재단 중 총 수익 대비 목적사업비 비율이 가장 낮았다. 총 수입이 81억2,800만원이었는데, 목적사업비는 10억5,500만원으로 13%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이 같은 내용은 다수의 언론매체가 보도했고, 남촌재단은 목적사용비 꼴찌 재단으로 낙인찍혔다. 이에 대해 남촌재단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남촌재단 관계자는 “당시 알려진 숫자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정해진 규정에 따라 홈페이지에 매년 세입 및 세출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약 50억원의 기부금 등을 받아, 이 중 40억원 가량을 규정에 입각해 기본재산으로 보관했다. 그리고 남은 10억원 중 7억원 정도를 기부활동에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남촌재단은 지난해 총 수익 중 목적사업비 비중이 가장 적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남촌재단은 여전히 미심쩍은 구석이 존재한다. 허창수 회장은 지난 10월, 남촌재단에 51억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한 바 있다. 지난해에도 29억원의 사재를 출연하는 등 11년 동안 꾸준히 남촌재단에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허창수 회장의 사재 출연은 대부분 주식 기부로 이뤄졌다. 올해 출연한 51억원도 GS건설 주식 19만4,000주다. 현재까지 허창수 회장이 남촌재단에 건넨 GS건설 주식은 75만6,160주에 달한다. 기부 시점의 가치를 합산하면 443억원이나 된다.

재단 입장에서 기부 받은 주식을 공익사업에 활용하는 가장 간단하고 안정적인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주식을 적절한 시점에 매각해 기금을 마련하는 것과 배당금을 받아 사업을 운용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남촌재단은 11년 동안 허창수 회장에게 기부 받은 주식을 단 1주도 처분하지 않았다. 또한 GS건설은 2013년 이후 배당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당기순손실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 배당인 2012년에는 주당 250원을 배당했는데, 당시 남촌재단이 받은 배당금은 8,294만원에 불과했다.

물론 주식이 가진 미래 가치를 고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GS건설의 주가는 최근 꾸준히 하락세를 이어갔다. 2007년 20만원을 육박했던 것이 21일 2만5,950원으로 마감했다.

남촌재단이 보유한 GS건설 주식은 현재 196억원 규모다. 허창수 회장이 기부했던 시점의 가치를 모두 더한 443억원에 비해 약 250억원 가량 줄어들었다. 주식을 가만히 가지고만 있었던 탓에 공익적 목적으로 쓸 수 있었던 250억원을 날린 셈이다.

반면, 허창수 회장은 ‘기부’라는 명목으로 세제혜택을 받으면서 증여의 효과는 누릴 수 있게 됐다.

11년에 걸쳐 남촌재단에 쌓인 지분은 어느덧 1.05%에 이르렀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리 큰 숫자가 아니지만,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규모는 아니다. 허창수 회장의 GS건설 지분은 현재 10.51%고, 여기에 GS네오텍, 남촌재단, 그리고 16명의 가족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중 남촌재단의 지분은 4번째로 많다. 오너일가 3, 4세들이 가진 지분은 0.03%에서 많아야 0.61%다.

만약 허창수 회장이 다른 가족에게 주식을 증여한다면, 상당한 증여세가 붙게 된다. 반면 재단에 넘길 경우 세금 부담이 사라지면서도 허창수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총 보유지분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이것이 김상조 위원장이 주목하는 ‘편법’이다.

허창수 회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한 축이었던 전경련 회장으로 지난해 곤욕을 치렀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GS그룹이 일감 몰아주기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빈축을 샀다. 이어 새로운 화두인 재단 문제에서도 공정위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게 된 모습이다.

이에 대해 남촌재단 측 관계자는 “재단 기본재산으로 보관한 주식의 경우 관계당국에 확인을 거쳐야 매각이 가능하다. 추후 적절한 시점, 적절한 주가에 주식을 매각해 현금화 할 수 있겠지만, 현재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남촌재단은 오너일가의 편법승계 또는 증여와 전혀 무관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허창수 회장님의 뜻을 실천하고 있는 곳이다. 외부에 알리지 않으면서도 좋은 일을 많이 해오고 있고, 이곳에서 일하면서 늘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일부에서 오해가 제기돼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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