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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찬의 ‘숏컷’] 촛불 프레임과 정치 지형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광장에, 서>

청와대 벽에 촛불이 걸렸다. 임옥상 작가의 <광장에, 서>라는 작품이다. 가로 90cm, 세로 60cm 캔버스 108개를 이어붙인 대작이다. 청와대 벽면 길이에 맞춰 조금 수정했다는 전언이다. 미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언뜻 보기에도 장엄하다. 누구나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릴 만큼.

작품도 작품이지만, 작품을 임대해 청와대에 들여온 과정이 눈길을 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정부의 정신에 완전히 부합해 좋아 보였다”고 했다. 그림에 드러난 구호 때문에 정치적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예술작품 아닙니까? 작품은 작품으로 봐야지요”라고 쿨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참 시원한 대답이다.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끄는 압도적 힘의 원천이다. 청와대 참모의 문제가 나와도, 장관 인선의 문제가 불거져도 지지율이 쉽게 꺼지지 않는 이유다.

선거 과정에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불렀던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회의에서 직장내 성희롱, 성폭력 문제를 전면에 올려놓기도 했다. 리버럴 이슈에 대한 대통령의 소신 있는 태도는 당분간 야권의 ‘계산된 발언’들을 ‘작은 네거티브’로 보이게 만들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가 촛불정부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세상을 전진시키는 방향에 분명히 서 있기 때문이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후보는 청문회에서 낙태죄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 5.18 헌법전문 삽입, 사형제 폐지 등에 대해 매우 진전된 입장을 내놨다.

청와대 본관 로비에 설치된 임옥상 작가의 <광장에, 서> 작품. <뉴시스>

75 vs 25 프레임

촛불은 시민들의 위대한 용기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향한 아름다운 여정의 등대다. 10년의 사익정권에 대한 거부다. 촛불은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위대함과 옹졸함, 용기와 비겁, 공익과 사익, 전진과 후퇴를 밝힌다. 촛불은 소수 기득권 세력의 길이 아니라 보다 나은 삶을 원하는 대다수 국민의 길을 비춘다.

촛불 이후 형성된 75대25 프레임이 아직도 강고하게 유지된다. 이는 탄핵 찬성세력과 반대세력의 분포다. 당시 80% 가까운 국민이 탄핵에 찬성했다. 300명 국회의원의 78%인 234명이 탄핵에 찬성했다. 75% 이상의 국민이 박근혜 구속을 지지했다. 75% 이상의 국민이 정권교체를 원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도 75%에 육박한다.

11월 셋째 주 한국갤럽 정례조사(11월 14~16일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는 잘함 73%, 잘못함 20%였다. 19세~40대까지 지지율은 80%를 넘었고 60대 이상에서도 53%다. 호남 지지율은 95%에 이르고 대구-경북 지지율도 64%나 된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의 96%, 정의당 지지자의 82%가 긍정평가를 내렸고 국민의당 지지자의 71%, 바른정당 지지자의 75%가 문재인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22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정당 지지율 분포(20~22일 조사)를 보면 더불어민주당 51.8%, 자유한국당 16.7%, 정의당 6.9%, 바른정당 5.6%, 국민의당 4.4%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합이 26.7%다. 이는 국민의당이 25프레임에 갇혔음을 뜻한다. 국민의당이 25프레임의 감옥을 나와 75프레임 쪽으로 이동하지 않고서 지지율 상승을 기대하긴 어렵다.
 
75대25 프레임은 촛불이 요구한 시대적 과제를 흔들림없이 추진하라는 시대정신의 도도한 흐름이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내전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둘러싼 국민의당 내전이 거칠다. 품격을 넘어선 말들의 전쟁이다. 품격의 ‘품(品)’은 ‘입 구(口)’ 자 세 개를 탑처럼 쌓은 것이다. 말들이 쌓여 그 사람의 품격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선거는 시로, 국정은 산문으로 한다(campaign in poetry, govern in prose)’는 미국 정치의 경구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말의 격투기 같다.

안철수 대표도 최근 촛불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촛불은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전진시키기 위한 정치행위와 함께 빛난다. 안철수 대표는 “지지율 2당이 되기 위해 바른정당과의 통합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했다. 정치공학적인 발언이다. 정치적으로 노련해진다는 것과 계산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다. 명분을 쌓아 신뢰를 회복해야 지지율이 오른다. 단순히 합한다고 결과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호남 중진들을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안철수 대표에 대한 그들의 집단 공격은 문제해결을 위한 과정이라기보다 감정풀이에 가까워 보인다. 밖에 나가 당 내부를 향해 총을 쏘기 전에 소통의 접촉면을 과감히 넓혀야 한다. 소금처럼 가라앉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박지원 대표가 “지금은 문재인의 시간”이라고 말한 의미가 들릴 것이다. 호남 중진의원들도 국민의당을 만든 안철수라는 정치적 자산을 망가뜨리려 해서는 안 된다.

애초 안철수 대표를 정치로 불러냈던 네 개의 그룹이 있다. 변화를 바라는 청년들,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학부모들, 패권주의를 반대한 호남, 그리고 기득권 양당구조를 다당제로 전환하기를 바랐던 합리적 시민들이다. 그들이 원한 것은 상식이 통하는 나라였다. 나라다운 나라를 원했고 그것이 촛불로 폭발했다. 문재인 정부의 출현을 그런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안철수 대표 스스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은 항상 수구보수세력의 확장을 반대한다고 말해 왔다. 실제로 국민의당 돌풍으로 여소야대를 이끌었고, 탄핵의 견인차 역할도 했다. 그런데 그런 여망과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자꾸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안철수 대표를 정치로 불러낸 세력도, 국민의당을 제3당으로 만들어 준 국민들도 75프레임에 속한다. 국민의당이 25프레임으로 이동해 75프레임을 공격하는 것은 사실상 자해행위다. 25프레임 안에서 국민의당이 나눠가질 파이도 거의 없다. 국민의당이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여-야나 진보-보수 프레임이 아니라 촛불프레임을 이해해야 한다. 정책연대를 하려면 민주당과 먼저 해야 한다. 물론 바른정당과도 정책연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른정당과 25프레임 안에 둥지를 트는 것은 전략적 오류다. 국민의당의 역할은 개혁과제 실천을 위해 민주당과 연대하고 바른정당을 견인하면서 3당으로서의 개혁적 존재감을 발휘하는 것이다.

내자가추(來者可追)

국민의당은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 돌풍을 만들어준 시민들의 요구를 냉철하게 복기해야 한다. 지금 억지로 지지율 2당이 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제3당의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행동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미래를 향한 확장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12월 달력을 볼 때마다 원래 대선일인 20일의 빨간 글씨가 보인다. 선배가 들려준 사자성어를 2017년 마지막 달 정치권에 전해주고 싶다.

내자가추(來者可追).

“지나간 일은 어찌할 도리(道理)가 없지만 장차 다가올 일은 조심하여 이전(以前)과 같은 과실(過失)을 범(犯)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시사위크  sisaweek@sisa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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