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만 책임 지운 낙태죄… 국가·남성 책임은 완전히 빠져 있어”
“전면금지 vs 전면허용, 대립구도 넘어서 사회적 논의 필요”
낙태죄 폐지는 헌재 위헌심판 통해 사회적·법적 논의 전망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이 26일 청와대 홈페이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를 통해 23만명이 청원한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답변을 하고 있다. <뉴시스/유튜브>

[시사위크=정수진 기자] “태아의 생명권 vs 임산부의 자기결정권….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하는 제로섬으로는 논의를 진전시키기 어렵다. 둘 다 우리사회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제 태아vs여성, 전면금지vs전면허용 등의 대립구도를 넘어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26일, 청와대가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 청원에 응답했다. 지난 9월25일 소년법 폐지 청원에 대한 답변 이후 두 번째 ‘답변’으로, 청와대는 이날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를 통해 “폐지 여부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 위헌 심판을 계기로 이뤄지는 사회적·법적 논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정부 차원에서는 임신중절 관련 보완대책을 다양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낙태죄 폐지 청원’은 원치 않는 출산은 여성은 물론 태어난 아이, 국가 모두의 비극으로 여성에게만 죄를 묻고 처벌하는 현행 낙태죄를 폐지해달라는 내용으로, 지난 9월30일부터 10월30일까지 한 달간 23만5,372명이 참여하며 ‘청와대 응답’ 조건을 갖췄다.

이날 조국 민정수석은 공식 답변자로 다시 한 번 카메라 앞에 섰다. 지난 9월25일 소년법 폐지 청원에 대한 답변 이후 2개월여 만이다. 그는 청와대가 제작한 ‘친절한 청와대, 낙태죄 폐지 청원에 답하다’라는 이름의 영상물을 통해 “부정적 뜻을 담고 있는 ‘낙태’라는 용어 대신 모자보건법에서 사용하고 있는 ‘임신중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겠다”며 “이번 청원을 계기로 정부는 법제도 현황과 논점을 다시 살펴보게 됐다.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청와대 법무비서관실, 여성가족비서관실, 국민소통수석실 담당자가 세 차례에 걸쳐서 쟁점을 검토하고 토론했다”고 운을 뗐다.

조국 민정수석은 “태아의 생명권은 매우 소중한 권리이지만 처벌 강화 위주 정책으로 임신중절 음성화 야기, 불법 시술 양산 및 고비용 시술비 부담, 해외 원정 시술, 위험 시술 등의 부작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현행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만 묻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 및 여성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어 “이제는 태아 vs 여성, 전면금지 vs 전면허용 이런 식의 대립 구도를 넘어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단계”라며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하는 제로섬으로는 논의를 진전시키기 어렵다. 이 같은 대립구도를 넘어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10년 이후 실시되지 않은 임신중절 실태조사부터 재개하기로 했다. 임신중절 현황과 사유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 그 결과를 토대로 관련된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 정부 차원에서 청소년 피임교육, 비혼모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 등 임신중절 관련 보완대책도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낙태죄 폐지 여부 및 개선의 방향에 대해선 헌법재판소와 국회의 역할을 간접적으로 요청했다.

조 수석은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한 번 낙태죄 위헌 법률 심판사건이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공론의 장이 마련되고 사회적 법적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법 개정을 담당하는 입법부에서도 함께 고민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의 합법화 여부도 이러한 사회적 법적 논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 수석은 “비혼이든 경제적 취약층이든 모든 부모에게 출산이 기쁨이 되고 아이에게 축복이 되는 그런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다. 국가의 의무와 역할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겠다”고 마무리했다.

한편 리얼미터가 지난 1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516명을 조사해 2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낙태죄 폐지’ 의견이 51.9%로, ‘유지’ 의견 36.2%보다 높았다. 지난 2010년 2월 리얼미터가 실시한 낙태 허용 여부 조사에서는 ‘허용해서는 안 된다’가 53.1%, ‘허용해야 한다’는 33.6%로 집계됐다. 올해 결과는 지난 7년 전 조사와 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성별로는 여성(59.9%)의 경우 ‘낙태죄 폐지’ 응답이 많았다. 남성은 폐지(43.7%)와 유지(42.5%) 응답이 맞섰다.

해당 조사는 지난 1일 전국 19세 이상 516명을 상대로 무선(10%) 전화면접 및 무선(70%)·유선(20%) 자동응답 혼용, 무선전화(80%)와 유선전화(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3%p다. 응답률은 6.8%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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