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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평양에선 지금’] 김정은 체제 북한 권력핵심엔 ‘숙청 피바람’2인자 자리 둘러싼 최용해와 김원홍의 싸움 격화 조짐
장성택 처형 4주기 계기로 체제단속 위한 처벌·처형 잇따라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북한이 내우외환에 휩싸였다. 핵과 마시일 도발로 대북제재를 자초한 상황에서 권력 핵심부에서는 2인자 자리를 놓고 권력 투쟁이 한창이다. 김정은 체제 출범 직후부터 물고물리는 싸움을 벌여온 최용해 노동당 조직지도부장과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 격돌했다.

평양 권력의 핵심부에서 불거진 은밀한 권력투쟁 움직임이 포착된 건 지난 10월말에서 11월 초쯤이다. 국가정보원이 지난 2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데 따르면 김정은 특별지시에 따라 총정치국 손보기에 나선 최용해 당 조직지도부장은 황병서를 비롯한 총정치국 간부들이 전횡을 일삼고, 노동당의 지도를 무시하거나 허위보고하는 등의 문제를 포착했다. 이런 비위사실은 김정은에게 직보돼 즉각 황병서, 김원홍 등에 대한 처벌조치가 단행됐다는 것이다. 일단 철직(해임을 일컫는 북한식 표현)인 것으로 파악됐지만, 일각에서는 황병서도 회복불능 수준의 처지가 됐고, 김원홍은 협동농장으로 추방됐다는 외신보도까지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 내에서 본보기식 숙청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는 첩보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최용해와 황병서의 권력 투쟁 소식은 세간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북한이 외교적 고립을 겪고 있는데다 내부적으로는 엘리트들의 체제이반과 주민들의 불만고조에 봉착했다는 점에서다. 앞서 지난 2일 정보위 보고에서 국정원은 “노동신문사 간부 수 명을 ‘미사일 발사 축하행사를 1면에 게재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혁명화 조치했다”고 보고했다. 또 평양 고사포(대공포) 부대의 정치부장을 부패 혐의로 처형한 사실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정보위에 보고했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가 포착된 시점이 장성택 처형 4주기를 맞는 때란 점도 주목거리다. 김정은은 집권 이듬해인 2013년 12월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반국가 혐의’ 등으로 전격 체포해 사형에 처했다. 이를 계기로 북한 권력 핵심의 노동당 간부와 군부 고위인사들은 공포정치에 억눌려 떨어야 했다. ‘고모부까지 저렇게 무참하게 처형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파리 목숨 아니냐’는 생각에서였다.

2015년 4월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김정은이 주재한 회의 중 졸았다는 이유로 처형됐다. 또 지난해 7월에는 김용진 내각 부총리가 행사 중 안경을 닦았다는 죄목으로 죽음을 당하는 등 숙청사태가 잇따르면서 공포에 사로잡혔다.

군부에서 서열1위 자리를 지켜온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을 쳐냄으로써 최용해의 입지는 한층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인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후광을 업고 승승장구 할 것이란 얘기다. 북한이 김일성과 항일빨치산 활동을 함께 했다고 내세우는 최현은 북한 정권 수립과 인민군 창건에 핵심 역할을 했다. 최용해가 최고 엘리트 코스인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종합대 정치경제학부를 거친 것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싣는다.

김정일 집권 때인 2010년 9월 북한군 대장에 발탁되며 후계자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맡게 된 최용해는 이후 정치국 상무위원과 국방위 부위원장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14년 4월 핵심요직인 군 총정치국장을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출신인 황병서에게 빼앗겼다. 황병서는 총정치국장에 오른 이후 최용해와 끊임없이 경쟁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총정치국장에 임명되면서 김정은을 수행하는 공식 행사 등에서 최용해 보다 먼저 호명됐다. 이른바 권력서열에서 앞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2인자 자리를 내주었다.
 
최용해와 황병서 간에 벌어지고 있는 권력싸움은 김정은 체제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집권 6년이 되도록 안정적인 통치체제나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특히 처벌과 숙청의 공포 속에 북한 권력층의 피로감은 더해가고 있는 모습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경쟁세력에 밀려 몰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은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을 불러오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북한당국은 주민들에 대한 폭압적 통치와 사상 통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국정원은 “북한 당국이 고강도 유엔제재 이후 당 조직을 통한 주민생활 일일보고 체계에 돌입했다”고 밝히고 있다. 반체제 현상이나 김정은에 대한 비난이 고조되는 상황을 우려한 북한 공안당국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단속의 고삐를 죄고 있다는 얘기다. 음주가무와 사적인 모임도 금지됐고 정보유통의 통제도 강화됐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대북제재를 자초한 김정은은 지금 사면초가의 상태다. 9월 6차 핵 실험 감행 이후 유엔 제재는 최고 강도를 보이고 있다. 후견국인 중국과 러시아도 유엔 제재에 동참한데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그물망 독자제재가 만만치 않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우방까지도 미국의 압박 등에 공조체제를 갖추면서 북한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무기거래 등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을 향해 ‘살인 정권(murderous regime)’이라 부르며 9년 만에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등 대북압박의 속도를 내고 있다.

노동신문에는 요즘 활짝 웃는 김정은 사진이 자주 실린다. 대북제재에도 끄떡없다는 메시지 연출로 보이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닐 수 있다. 김정은의 핵과 미사일 도발 위협은 이제 약효가 다된 듯하다. 핵심 권력 간부들에 대한 롤러코스터식 인사와 숙청으로 명줄을 쥐고 흔들던 모습도 피로감을 더하고 있다.

시사위크  sisaweek@sisa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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