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돈을 더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는 전 세계의 공통된 고민거리다. 상대적으로 재정구조가 튼튼하다고 인정받는 한국 또한 마찬가지다. <픽사베이>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문재인 정부의 재정정책을 대변하는 것은 적극적 복지지출과 사회안전망 확충이다. 여기에는 늘어난 지출을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 국가재정이 튼튼하다는 자신감이 깔려있다. 적은 국가부채와 튼튼한 거시경제구조 덕택에 ‘재정여력’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 재정지출 늘릴 여력, 충분하다 vs 근거 약하다

재정여력은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부채의 상한선과 현재 보유 중인 국가부채의 격차를 의미한다. 즉 국가가 부채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채무불이행 위기에 놓일 때까지 얼마나 여유가 있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부채가 적은 국가, 또는 지출에 비해 수입이 많은 국가가 재정여력이 풍부하다.

한국의 국가부채는 2016년 기준 GDP의 39.5% 수준이다. 국가부채가 GDP의 234%에 달하는 일본(OECD, 2015년 자료)은 물론 미국(125%)‧영국(112%)‧독일(79%)등 대다수의 주요국보다 훨씬 낮다. 무디스와 S&P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산정할 때마다 국가재정상황이 양호하다고 언급하는 이유다.

다수의 국제기관이 제시한 자료들 또한 더 많은 지출을 지지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15년 자료를 토대로 발표한 국가별 ‘재정 및 통화정책 대응여력 순위’에서 한국은 193점을 얻으며 노르웨이(211점)에 이어 전체 2위에 올라있다. 재정여력점수가 96점으로 만점에 가까웠으며 정부부채‧적자 부문도 77점으로 우수했다. OECD 또한 한국을 오스트레일리아‧영국 등과 함께 재정여력이 충분한 국가로 분류하며 확장적 재정정책을 지속 시행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반면 한국의 재정여력 기반이 생각만큼 안전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의무지출액이 증가할 것이란 논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이태석‧허진욱 연구위원이 28일 발표한 ‘재정여력에 대한 평가와 국가부채 관리노력 점검’ 보고서는 한국의 장기재정여력이 GDP의 180%에서 최대 40%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3년간 연달아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된 것을 두고 “부채관리 노력이 약화됐다”는 평가도 있었다.

◇ 조건‧분석법 따라 다양한 국가재정전망

인구고령화와 그에 따른 복지지출의 증가가 국가재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이미 많은 연구들이 진행돼왔다. 물론 어느 통계자료와 분석기법을 이용했는가에 따라 세부지표는 조금씩 달라진다.

기획재정부가 2015년 발간한 ‘2060년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별도의 세출구조조정 없이 재정지출이 경상성장률만큼 증가할 경우 2060년의 국가부채는 GDP의 62.3%로 추산된다. 다만 이 수치는 2060년까지 연평균 1.9% 성장을 유지할 수 있음을 전제한다. 경제구조 개혁에 실패해 평균 경제성장률이 1.6%로 떨어질 경우 2060년 국가부채비율은 94.6%로 높아진다.

한편 장기경제성장률을 약 2.0~2.1%로 추산한 국회예산정책처의 재정전망 보고서는 동 비율을 151.8%로 추산했다. 지출증가율이 수입증가율을 초과하면서 2060년에는 총지출이 GDP의 35.41%까지 늘어난다는 시나리오다.

KDI의 전망은 보다 부정적이다. 경제성장률이 2%p 하락하는 경우 현재 200~250%(IMF 및 무디스 자료)로 추산되는 재정여력이 179%로, 여기에 실업수당‧사회보장금 등의 정부이전지출이 지금보다 50% 증가한다고 가정할 경우 40%까지 떨어진다. 2016년 총인구의 72.9%였던 생산가능인구가 2060년에는 49.7%까지 떨어지는 영향이다.

◇ 연구결과는 “지출‧노동구조 개혁대책 실행해야”

조세수입의 증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다. KDI의 보고서는 세율인상을 통해 재정여력을 GDP의 225%까지 높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여기에는 노동소득세율을 약 25%p 인상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으며, 이 경우 소비는 29.6%, 총생산과 투자는 각각 23.2%p 감소한다.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을 2,3%p 올리는 것만으로 국론이 분열되는 상황이다. 사실상 불가능한 선택지다.

손을 벌릴 수 없다면 허리띠라도 졸라매야 하지만, 복지부문에 대한 의무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대안은 사용처가 보다 유동적인 재량지출을 절감하는 ‘세출 구조조정’이다. 기획재정부는 매년 재량지출 자연증가분을 10% 절감할 경우 2060년에도 국가부채비율을 38%로 유지할 수 있으며, 국회예산정책처는 재량지출 총액을 1.8%p 낮출 때 동년 국가부채비율을 151.8%에서 80.5%까지 떨어트릴 수 있다고 제시했다. 다만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대폭 삭감됐던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던 것처럼 이해관계자간 의견조정과정은 필수불가결하다.

한편 지난 7월 발표된 한국은행 안병권‧김기호‧육승환 연구위원의 ‘인구고령화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 연구보고서는 또 다른 시사점을 전달한다. 보고서는 한국이 현재의 인구‧소득‧소비패턴을 유지할 경우 2050년이면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기록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한편, 정년연장‧여성노동참여율 제고‧노동생산성 유지와 같은 종합인구대책을 효과적으로 시행한다면 2050년 이후에도 연평균 1.3% 성장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함께 실었다. 기획재정부의 예상보다도 0.2%p 높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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