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방직 소액주주들이 감사 2명을 선임하는데 성공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소액주주의 권리와 목소리가 무시받기 일쑤인 국내에서 의미 있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하나로 힘을 모은 소액주주들이 재벌 3세 오너경영인의 행보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례적인 사건이 벌어진 곳은 대한방직이다. 사건은 우선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세 경영인인 설범 대한방직 회장은 당시 회사 소유의 토지 및 건물을 애경그룹에 매각했는데, 이 과정에서 15억원의 리베이트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설범 회장은 2009년 4월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5년을 선고받았다. 리베이트로 받은 자금 전부를 회사에 반환한 것도 실형을 피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 자금의 행방이 묘연했다. 소액주주들이 재무제표를 분석했으나, 15억원이 반납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 같은 지적과 항의가 제기되자 대한방직은 지난 3월 13일 설범 회장이 15억원을 회사로 입금했다고 밝혔다. 뒤늦게 문제가 되자 돈을 입금한 것이다.

이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다. 우선 법원을 기만한 행위이자, 엄연한 불법이었다. 재판부는 설범 회장이 회사에 15억원을 반납한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것이었다. 하지만 15억원은 판결 전에도, 후에도 반납되지 않았다. 8년이 지난 올해에서야 돌아왔다.

만약 소액주주들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묻힐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 입장인 대한방직은 적절한 대응을 취하지 않아 15억원을 손해보고 있었다. 특히 이러한 부분을 감시해야할 사외이사와 감사는 전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다. 설범 회장은 지난해 차명계좌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는 설범 회장의 불법적인 의결권 행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방직 소액주주들은 설범 회장을 횡령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어 검찰은 최근 설범 회장을 기소한 상태다.

◇ 소액주주에게 꼬리 잡힌 설범 회장 ‘횡령’

설범 회장은 물론, 회사와 경영진을 믿을 수 없게 된 소액주주들은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남석 전 대한방직 사장과 소액주주대표, 외부전문가 등 6명을 사내이사 및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하지만 모두 부결됐고, 설범 회장과 김인호 부사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안만 통과됐다. 다만, 설범 회장 측이 추천했던 감사의 선임을 막는 작은 성과는 있었다.

감사 선임이 무산된 대한방직은 지난 29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었다. 소액주주들은 다시 주주제안을 통해 1명의 사내이사와 2명의 사외이사, 2명의 감사 등을 추천했다. 결과는 절반의 승리였다. 이번에도 사내이사 및 사외이사 선임을 실패했지만, 설범 회장 측이 추천한 감사를 제치고 2명의 감사를 선임하는데 성공했다. 소액주주들이 설범 회장 및 경영진에 대한 견제장치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소액주주들이 2명의 감사를 배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법’ 때문이다. 이사 선임의 경우, 무조건 1주당 1표의 권리를 행사하지만 감사는 다르다. 이사를 감시·견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대주주 마음대로 선임할 수 없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 아무리 지분이 많아도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한방직 소액주주들은 온라인에 카페를 개설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힘을 모았다. 다른 주주들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설범 회장의 전횡에 제동을 걸 수 있게 됐다.

이들의 이러한 행보는 소액주주가 목소리를 내기 힘든 국내 환경에서 상당한 의미를 남기고 있다. 당장 설범 회장과 대한방직 경영진들은 새 감사의 철저한 견제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또한 다른 기업 소액주주들의 움직임을 이끌어 낼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한편, <시사위크>는 소액주주들의 이번 움직임에 대한 대한방직 측 입장을 물었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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