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시기가 참 안 좋다. 하필 가장 민감한 시기에 ‘모난 돌’이 됐다. 그것도 정부가 가장 날선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 ‘갑질’ ‘적폐’ 관련 사안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현대모비스’다.

현대모비스는 대리점에 ‘물량 밀어내기’ 혐의를 받고 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전국 1,000여개 대리점을 대상으로 판매 목표를 강제하고 물량을 떠넘긴 것으로 알려진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전형적인 ‘갑질’이다. 당시부터 조사를 이어온 공정위가 최근 제재에 착수할 움직임을 보이자 ‘피해 구제방안(동의의결안)’을 내놨는데, 두 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공정위는 현대모비스가 내놓은 구제방안으로는 대리점 피해구제와 갑질 근절이 어렵다고 봤다.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현대모비스가 ‘제대로 걸렸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현대모비스의 구제방안이 나름 충분한 수준을 갖췄지만, 공정위가 작정하고 퇴짜 놓은 것이란 지적이다. 의도적인 ‘재벌 손보기’ 차원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과연 그럴까. 현대모비스는 지난 2009년 6월 공정위로부터 150억원의 과징금 부과 및 시정명령을 받았다. 공정위 조사 결과, 2004년 12월부터 2009년 2월까지 부품 대리점에 자사 순정품을 사용하도록 강요하고 비순정품을 취급할 경우 불이익을 준 것으로 드러난데 따른 조치다. 당시 공정위는 이를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로 판단했다. 요즘 말로 ‘갑질’이다.

이후 현대모비스는 공정위 명령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하지만, 2014년 4월 대법원은 ‘공정위 명령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현대모비스의 배타조건부 거래행위로 인해 소비자는 정비용 부품을 더 싸게 살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다만 법 적용 시점의 차이를 들어 과징금 부과에 대한 납부명령은 취소했다.

이번에 공정위가 문제삼은 부분도 ‘갑질’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문제는 시기다. 2004년 ‘대리점에 순정품 강요’부터 시작된 갑질은 2009년 공정위의 시정명령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사건이 대법원까지 이어지는 순간에도 갑질은 계속됐다. 공정위가 이번에 문제삼은 ‘대리점 물량 몰아내기’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일로, 2009년 공정위의 시정명령 이후에도 현대모비스의 갑질은 새로운 형태로 계속되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행위를 통상 ‘상습적’이라고 표현한다. 현 정부의 기조에 빗대면 ‘적폐’나 다름없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8월, 현대모비스가 제출한 1차 피해 구제방안(동의의결안)을 반려하면서 이렇게 발언했다. “현대모비스는 대리점을 상대로 피해구제 신청을 스스로 받겠다고 했는데, 누가 보상을 받겠다고 (신청) 하겠느냐. 현대모비스는 동의의결 개시 여부와 상관없이 자체 시정방안을 진행하겠다는 발표가 있었어야 한다. 그런데도 구입 강제에 대해 위법성과 강제성을 부인하는 내용만 주장하고 있다.” 

그만큼 현대모비스가 내놓은 구제방안이 진정성이 없다고 본 것이다. 11월 26일 반려한 2차 자체시정안 역시 실효성이 없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현대자동차그룹에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모비스가 매출을 올리기 위해 이런 짓을 한 배경이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 때문이라고 공정위는 보고 있어서다. 공정위가 총수 일가를 정조준했지만 현대모비스는 결국 두 번의 기회를 그대로 놓치고 말았다. 가뜩이나 글로벌 경기침체와 경쟁 심화로 판매량에 타격을 입는 등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는 그룹 입장에선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 셈이다.

조만간 공정위는 과징금 부과 및 검찰 고발 여부 등 제재 수준을 결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재판중에도 버젓이 갑질을 이어왔던 현대모비스의 전력을 감안할 때, 법적 제재와는 별개로 추락한 윤리에 대한 면죄부는 받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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