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석에서 바라본 재판장 전경. 12개의 배심원석이 눈에 띈다. <픽사베이>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지난 2008년 2월 1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린 평범한 강도상해사건 재판은 한국 사법역사에 특별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당시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단 9인은 만장일치로 피고인에게 유죄를 평결했으며, 재판부는 배심원단 과반수가 지지한 징역 2년 6개월‧집행유예 4년‧보호관찰‧사회봉사 80시간 양형에 모두 동의했다. 같은 해 1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된 국민참여재판 제도의 첫 판례다.

한 달 후로 다가온 2018년 새해는 국민참여재판이 10살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사법부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고 국민의 신뢰수준을 높이겠다는 목적을 내걸었던 국민참여재판은 지난 10년 동안 한국사회에 얼마나 뿌리내렸을까.

◇ 아직도 걸음마 수준

배심원제도에 대한 낭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치고 영화 <12인의 노한 사람들>을 보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무더운 여름날, 배심원단으로 선정된 열두 명의 시민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는 소년을 심판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다. 모두가 유죄를 확신하는 가운데, 헨리 폰다가 열연한 정의로운 배심원은 명쾌한 논리와 증거를 바탕으로 무죄의견을 하나둘 이끌어내기 시작한다. 배심원제 하에서 시민이 가지는 법적 의무뿐 아니라 미국의 빈부갈등과 이민자제도의 미추까지 담아낸 이 영화는 수많은 미국 시민과 법조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 영화를 보며 ‘배심원으로서의 나’를 그려봤던 사람들은 그 꿈을 이룰 날이 요원하다. 법원이 매년 발표하는 사법연감 자료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동안 1심법원에서 치러진 형사공판사건은 27만건이 넘는다. 반면 작년 처리된 국민참여재판은 305건에 불과하며, 지난 10년을 모두 따져도 1,972건에 불과하다. 재판 자체가 잘 열리지 않다보니 일반 시민들이 배심원 통지서를 받아들 일이 거의 없다. 자연히 배심원제도 자체에 대한 관심도 옅다.

배심원의 임무를 시민의 역할 중 하나로 여기는 미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국민참여재판제도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국민참여재판 제도는 현재 합의부 관할의 형사소송에 대해서만 시행되며, 반드시 피고인의 신청이 있어야한다. 지난 2015년까지만 해도 국민참여재판 신청률은 하락일로를 걸었다. 그나마도 40.9%는 추후 신청을 철회했다.

범위가 좁은 것 뿐 아니라 배심원단의 역할 또한 많지 않다. 만장일치 제도를 고수해온 미국에 반해 한국은 다수결 평결을 허용하고 있다. 평결과 양형에 대해 법관의 의견을 듣고 토의할 수도 있으며, 평결내용이 법원을 구속하지도 않는다. 사법부는 “배심제와 참심제를 적절하게 혼합‧수정했다”고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설명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본격 시행’보다 ‘시범 시행’이 더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2008년 시행된 첫 국민참여재판에서 선서하는 배심원단. <뉴시스>

◇ 배심원 역할 확대시켜 시민참여 높여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1월 9일(현지시각) 시카고 법원을 찾았다. 지역 주민으로서 배심원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타 배심원단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을 채택하길 꺼리는 법원의 특성상 배심원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과 동일하게 시민의 의무를 수행하러 온 전임 대통령은 주민들과 법원 관계자 모두에게 환영받았다. 조지 부시와 빌 클린턴 등 다른 전임 대통령들도 같은 전례를 남긴 바 있다.

입법부인 의회는 국회의원 전원이 선거를 통해 뽑히며 행정부 또한 수장인 대통령을 비롯해 시장‧도지사 등 고위직 대다수가 선출직으로 구성돼있다. 그러나 삼권분립의 남은 한 축인 사법부만은 시민의 참여가 극히 제한된 상태다. 2008년을 전후해 숱한 반대의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된 것은 높아진 국민수준에 대한 믿음과 함께 사법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바탕이 됐기 때문이었다. 새 정부가 사법개혁 의지를 드러내는 지금, 시행 10년차를 맞는 ‘한국형 배심원제도’도 제 역할을 가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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