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 원내대표와 경제부총리가 예산안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 김동연 경제부총리.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2018년 예산안 표결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국민의당은 3당 합의안을 발표했다. 한국 국회에서 3당구도(또는 4당구도)가 형성된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예산안 투표에서의 승리, 나아가 정당의 입지를 다진다는 목표 아래서 각 정당은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었을까. 정치인 역시 사익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은 공공선택이론은 공적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경제학적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예산안 단일화’

프랑스의 정치사회학자 모리스 듀베르제는 민주주의 국가들의 역사와 통계를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듀베르제의 법칙’을 만들었다. 정당의 숫자는 그 국가가 택한 투표제도에 따라 달라지며, 소선거구제와 최다득표제 하에서는 양당제가, 비례대표제 하에서는 다당제가 발전한다는 내용이다.

예산안 표결은 정족수 과반의 동의가 필요한 최다득표제지만 현재 국회는 다당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양당제를 택한 나라에서도 소수의견을 대변하는 제3,4 정당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군소정당들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만한 지지층을 확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이마저도 표결이 가까워지면 좌·우를 대표하는 두 정당 아래 모여들기 십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편이 자신의 의사를 정책안에 반영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국회는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필요한 의사정족수와 의결정족수를 모두 재적·출석의원의 과반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의석수는 각각 121석과 116석이며, 국민의당은 5일 현재 39석을 보유 중이다. 즉 3당 중 두 당만 협력하면 예산안 통과를 위한 최소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대척점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트를 쥔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예산안 논의의 상당부분에서 자유한국당을 배제했다. 국민의당 또한 양비론을 펴던 기존 모습에서 한 발 물러서 여당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수세에 몰린 자유한국당은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과 공무원 증원이라는 양대 쟁점에서 ‘합의 유보’라는 단서를 달았을 뿐, 합의안에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시키지는 못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일종의 후보단일화에 성공한 셈이다.

한편 제3야당인 바른정당은 원내 교섭단체의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 지난 11월 초 김무성·주호영 등 9명의 의원들이 탈당하면서 소속 국회의원 수가 11명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령 이들이 탈당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바른정당이 이번 예산안 논의에서 큰 교섭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20석의 의석수로는 더불어민주당과도, 자유한국당과도 과반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 국민의당이 살아남는 방법

세 명의 총잡이가 서로를 겨누고 있다. A의 사격술이 가장 뛰어나며, B는 보통, C는 가장 실력이 떨어진다. 각 총잡이는 한 번에 한 명만 겨냥할 수 있으며, 공정을 기하기 위해 C·B·A 순서로 공격권을 가진다. 이 때 가장 약한 C가 살아남으려면 누구를 조준해야 할까. 약간의 수학계산을 거치면 C가 허공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가장 생존확률이 높다는 결론이 나온다.

비록 이번 예산안 논의에서는 집권여당에 기운 모습을 보였지만, 국민의당은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가는 것도, 완전한 보수정당이 되는 것도 거부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이번 예산안 논의의 일부 쟁점들에서 절충안을 제시하는 전략을 택해 효과를 봤다. 기초연금인상과 아동수당도입 시기를 정하는 문제에서 더불어민주당이 8월, 자유한국당이 10월을 주장한 가운데 국민의당은 9월을 주장해 모두 관철시켰다. 양당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 공무원 증원 문제에서도 최종안은 국민의당이 내세운 8,875명과 거의 비슷한 9,475명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공공선택이론은 양대 정당 사이 한가운데에서 중립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정치적 생명력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중간자적 입장을 대변하는 정당이 최다득표제에서 가장 유리하다는 ‘중위투표자 정리’가 다당제 하에서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3당제도 하에서는 후발주자인 중립정당이 기존 좌·우 대립체제를 깰 수 없다는 결론만 나온다. 중립 성향의 유권자 표가 분산되는 반면 극좌·극우의 표는 중립정당에게 가지 않기 때문이다.

3당 구도를 포기할 수 없다면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 국민의당이 선거구제도 개편을 계속해서 주장하는 이유다. ‘듀베르제의 법칙’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선거구 1곳에서 1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 하에서 제3정당은 살아남기 어렵다. 군소정당 지지자들의 선호가 왜곡될 가능성이 크며, 후보단일화를 통해 승률을 높일 동인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반면 한 선거구에서 복수의 의원을 뽑는 중·대선거구제의 경우 사표방지심리가 나타날 가능성이 적다. 처음부터 정당투표로 진행되는 비례대표제는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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