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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예루살렘에 미국 대사관 들어서나… 중동 분쟁 격화 우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모두 예루살렘을 성지로 추앙한다. 사진은 예루살렘 구 시가지 전경.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트럼프 행정부가 이스라엘의 행정수도 텔아비브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는 뜻을 강하게 드러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크리스트교가 모두 성지로 여기는 예루살렘은 20세기의 어두운 역사 중 하나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 등 인근 중동 국가의 정상들과 이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미국의 공식 입장은 오는 6일(미국시각) 발표될 예정이다.

◇ 해묵은 법, 22년 만에 부활하다

본래 요르단과 이스라엘에 의해 동‧서 분할 통치됐던 예루살렘은 1967년 6일전쟁을 통해 완전히 이스라엘의 지배에 놓였다. 그러나 국제법상 분쟁지역인 예루살렘은 공식적으로 누구의 영토도 아니며, 미국 또한 이스라엘이 처음 세워진 1948년부터 같은 입장을 고수해왔다.

변화가 생긴 것은 1995년부터였다. 이 해 10월,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미국 의회는 텔아비브에 소재한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상당량의 국무부 예산을 정착자금으로 지원하는 ‘예루살렘 대사관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법안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의 반대로 시행되지 못했으며, 뒤를 이은 조지 부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모두 6개월마다 한 번씩 ‘예루살렘 대사관법’의 효력을 정지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지난 6월 전임자들과 같은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이번 겨울에는 달랐다. 12월 2일(현지시각) 금요일 자정이었던 새 마감시간이 지날 때까지 예루살렘 대사관법의 효력정지문서는 아무런 서명도 되지 않은 채 방치됐다. 주말 동안 법안이 효력을 발휘하는 것을 저지할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워싱턴 정가는 뒤숭숭한 기분으로 새 주간을 맞이했다.

다만 대사관 이전이 즉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더 힐은 5일(현지시각) 기사에서 예루살렘에 대사관이 들어설 만큼 넓은 부지가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사관을 실제로 이전하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국무부 관계자의 발언을 보도했다. 관계자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6일(미국시각) 발표에서 대사관 이전명령을 우선 보류할 것이며, 실제로 대사관이 이전되려면 3,4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밝혔다.

◇ 벌떡 일어난 이슬람 국가들… 중동 분쟁 격화되나

설령 미국 대사관이 당장 예루살렘으로 이전되지 않더라도, 세계 각국은 이번 사태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정은 곧 미국의 인정이다. 이슬람 문화권 국가들은 일제히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나섰다.

가장 크게 반발한 것은 물론 팔레스타인이다. 무하마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은 “불행이도 몇몇 사람들은 이 문제가 중동, 나아가 전 세계의 평화에 가져올 위험성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며 어떤 이유도 미국의 행동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요르단·이집트 등 인근 이슬람국가의 지도자들 또한 미국에게 대사관 이전 결정을 취소할 것을 요청하고 나섰으며, 인구의 99%가 이슬람교도인 터키의 레제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예루살렘에 미국 대사관이 들어설 경우 이스라엘과 교류를 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서구의 국제정세 전문가들도 의견을 같이했다. 대사관 이전 결정을 ‘도박수’라고 표현한 CNN의 국제정세 분석가 아론 밀러가 대표적이다. 중동 분석가로서 국무부에서 24년간 근무했던 경력이 있는 아론 밀러는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민감하고 불안한 이슈를 가지고 장난치고 있다”며 맹비난했다. 이스라엘은 미국 대사관을 수도에 두지 않은 극소수의 국가들 중 하나지만, 이 문제를 지금 당장 해결하려 나서는 것은 근시안적일뿐 아니라 지극히 친이스라엘적인 사고라는 뜻이다.

◇ ‘쇠고집’ 트럼프, 사우디에 귀 기울일까

대선 당시부터 ‘예루살렘의 미국 대사관’을 주장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정상들의 목소리를 얼마나 귀담아 들을지는 미지수다. 더 힐은 5일(미국시각) 기사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료들은 중동 지역의 우려를 경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대사관 이전결정은 중동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바꾸겠다는 의도가 아니다”는 관계자의 발언도 인용됐다.

다만 미국의 우방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반대는 상당한 힘을 가진다.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진 중 중동정책을 담당한 이는 재러드 쿠시너 백악관 선임고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자 ‘러시아 스캔들’로 특검의 수사망에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 가디언에 따르면 쿠시너는 친미국적인 성향의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중동 평화정책을 논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책은 원래 내년 초 발표될 예정이었지만, 예루살렘 문제가 촉발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빈 살만 왕세자는 현재 다른 이슬람 국가들처럼 미국의 대사관 이전에 반대하는 성명을 낸 상태다. 왕세자의 반대가 중동의 긴장을 가라앉힐 가능성도, 새 중동 평화정책을 사장시킬 우려도 존재하는 상황이다.

현우진 기자  hwjin02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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