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등학교 2학년이던 삼성전자서비스 서울 성북센터 소속 고(故)진남진 기사의 딸이 쓴 일기장.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아빠만 생각해도 눈물이 나는 우리 아빠, 우리를 위해서 몸을 바치신 우리 아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우리 아빠, 불쌍한 우리 아빠, 평생 일만 하시다가 돌아가신 우리 아빠...”

지난해 6월 삼성전자서비스 서울 성북센터 소속 에어컨 수리기사 진남진 씨가 업무 중 발코니 난간이 무너지면서 추락사를 당했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인 진씨의 딸은 자신의 일기장에 “왜 우리만 두고 떠났냐”며 하염없이 아빠를 불렀다.

◇ 간접고용 기술서비스 노동자들, 본청 실적압박에 안전은 ‘남 얘기’

진씨의 사망은 구의역 스크린도어 청년 정비사 사망 후 고작 한 달이 지난 시점에 발생했다. 불행은 멈추지 않았다. 같은해 9월 SK브로드밴드 인터넷 설치기사 김모 씨가 전신주 위에서 작업을 하다 추락사 했다. 김씨가 작업을 하던 날은 집중적인 호우로 위험한 상황이 예견됐기에 주위의 안타까움은 더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청년, 삼성전자서비스 진남진 기사, SK브로드밴드 김모 씨 모두 간접고용 노동자다. 본청의 이름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다치거나, 심지어 죽어도 본청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비정규직 기술서비스직 노동자들이 본청을 향해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이유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사고사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위험의 외주화’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단순히 업무의 위험성뿐만 아니라 하청업체 직원을 본청이 관리하는 관행 때문에 불법파견 문제와도 맞물린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본청이 실적압박을 통해 수리기사들을 위험한 업무 환경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비정규인 수리기사들은 악천후에도, 업무량이 많은 성수기에도, 하루에 정해진 할당량을 다 채워야한다. 안전장비 또한 상대적으로 열악한 하청업체가 조달하다보니 제대로 갖춰진 곳도 드문 형편이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라두식(왼쪽 두번째) 지회장이 지난해 7월 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삼성전자서비스 에어컨 수리기사 사망사고에 대한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에 삼성전자서비스와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기술서비스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간접고용 노동자 권리보장과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 투쟁을 통해 수리 기사들에 대한 안전대책을 촉구했다.

구체적으로 ▲건당 수수료 임금체계 폐지 ▲다단계하도급 구조 폐지 ▲산재사고 사전 예방 및 교육 실시 ▲공익사업장 노동자 원청 고용 제도 마련 ▲경찰 및 고용노동부의 진상조사 및 특별근로감독 실시 ▲‘위험의 외주화’ 금지 법안 발의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3권 보장 법제화 등을 촉구했다. 하지만 대대적 투쟁이 무색할 정도로 올해 역시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의 사망사고가 이어졌다.

◇ 건설, 조선소, 한수원까지... 올해도 곳곳이 ‘위험 외주화’

참사의 시작일은 5월1일 ‘노동자의날’이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이 낙하하면서 6명이 사망했다. 같은 달 22일 남양주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는 타워크레인이 꺾이면서 5명이 추락해 3명이 사망했다. 지난 10월에도 의정부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전도돼 3명이 숨졌다. 사망한 이들 대부분은 하청노동자였다.

공기업도 다르지 않았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방사능 관련 종사자 865명을 정규직화 대상에서 제외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위험의 외주화는 산업현장에 만연해있다. 지난해 전체 산재사고 사망자 중 하청업체 노동자 비율은 42.5%다. 50억원 이상 건설현장에서 최근 3년간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의 98%가 하청노동자일 정도다.

민주노총 서울경기 타워크레인 김명욱 지부장은 지난 10월 18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타워크레인 업체를 선정할 때 최저 낙찰제로 선정하다 보니 타워크레인 임대 업체가 불법 다단계에 하도급을 줄 수밖에 없다”면서 “검사까지 외주화다 보니 경쟁이 심해져 대충 검사하는 업체에 맡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모든 작업은 원청의 지시 하에 이뤄지고 있지만 사고가 나면 원청은 처벌 대상에서 빠지고 있다”면서 사고의 책임을 원청이 질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촉구했다.

지난 10월 1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위원회 대표자들이 의정부 타워크레인 전도사고에 대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에어컨 수리기사와 인터넷 설치기사 사망 사고를 겪은 삼성전자서비스센터와 SK브로드밴드 역시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세부적인 부분은 개선이 됐지만 가장 문제가 됐던 건당 수수료체계와 실적압박은 여전했다.

안민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교선위원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작년에 여론에 힘입어 근로감독을 진행하고 위험수당을 더 책정해줬지만 올해 전수조사 결과 모든 작업장이 공통적으로 적용된 것도 아니었다”면서 “수수료 책정이나 업무 강도는 그대로다. 2인1조 전환도 아르바이트생을 투입해 작업 시 더 위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자회사를 설립해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편입시켜 관심을 모았던 SK브로드밴드 역시 건당 수수료 체계는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범채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 부지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수리기사들이 월급제를 요구했지만 사측은 건당 수수료 체계를 유지시켰다”면서 “결국 야간조까지 투입 되서 작업을 하고 있다. 위험의 외주화의 가장 큰 문제는 수수료 체계와 실적압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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