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 ‘공익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 대표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호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은 비단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지난 2002년 ‘부패방지법’이 제정돼 공공부문의 공익 신고자가 보호되기 시작되고, 2011년에는 민간부문의 신고자까지 보호하는 법(‘공익신고자 보호법’)까지 생겨났지만 제도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제기돼왔다. 내부고발 과정에서 신분이 노출돼 각종 인권유린을 비롯한 불이익을 겪는 사례가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특히 공익신고자들은 고통은 비단 조직 내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지난 7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위치한 서울서부혈액원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김용환 ‘공익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 대표는 “공익제보자들이 신고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유린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누구도 제 말을 믿어주지 않아요.” 김용환 대표는 지난해 8월 한 공익제보자가 건넨 이 첫 마디의 말이 아직도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제보자는 해상 벙커C유의 불법 유통을 내부 고발한 신인술 씨였다.

◇ "신고 과정서 제보자 인권 유린 심각"

그간 많은 공익제보자들을 만나왔다던 김 대표는 유독 신인술 씨의 사연을 가슴 아파했다. 신고 과정에서 냉대에 가까운 대접을 받으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김 대표를 찾았기 때문이다.

사연은 이랬다. 탱크로리 기사였던 신인술 씨는 2015년 경남 창녕의 D에너지 업체에 입사한 후, 자신이 전국에 운반하는 기름이 육상에서 유통이 금지된 해상벙커C유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해상벙커C유는 대형선박에서 사용 후 남은 해상용 중유다. 이는 대기오염과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어 판매·유통이 금지된 기름이다. 이들 업체는 빼돌린 해상 면세유를 싼값에 매입한 뒤, 일반 난방용 기름과 섞어 인근 아파트 단지에도 공급하기도 했다.

양심에 가책을 느낀 그는 그해 8월 회사에 사표를 냈고 내부고발을 결심했다. 그간 모은 허위 전표 등의 자료를 토대로 부산지방국세청에 신고했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고통의 나날이 시작됐다. 쉽게 혐의가 밝혀질 것이라고 믿었지만 이는 착각이었다.

부산지방국세청은 기본 조사 후 업체 관할인 동울산세무서로 사건을 이첩했다. 이후 동울산세무서는 1개월가량 조사한 뒤 신씨와 함께 울산지방검찰청에 수사를 요청했다. 이후 두달간 4차례에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돌아온 답변은 그를 허탈하게 했다. 조사 후 수사 경과를 묻기 위해 검찰에 전화를 걸었더니 “사건 자체가 접수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받은 것이다. 세무서에는 뒤늦게 “검찰에 고발한 게 아니라 수사요청만 했다”면서 자신들이 조사를 하고 있다는 답변을 늘어놨다. 동울산세무서는 지난해 8월 이 사건에 대해 ‘증거불충분’ 결론을 내렸다.

1년여 신씨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사이, 그의 신원은 노출됐다. 그는 업체 관계자로부터 협박과 신변 위협에 시달리면서 도피생활까지 해야했다. 국민권익위원회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결국 마지막 희망을 품고 김 대표를 찾았던 것이었다.

김 대표는 “신인술 씨가 ‘대표님, 누구도 제 말을 믿어주지 않고, 공익 신고자들을 너무 업신 여겨요’라는 말을 처음에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며 “신고 담당처들이 신인술 씨의 얘기를 조금만 귀기울여서 들었어도 그렇게 오랫동안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신씨는 지난해 8월 김 대표의 도움을 받아 부산경찰청 해양범죄수사대에 다시 고발장을 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공권력의 배려는 부족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경찰은 고발 당시, 신씨의 고발 취하를 권유했다고 한다.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게 되는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신씨의 사건 해결보다 경찰 담당자의 편의가 고려된 것이 아니냐고 김 대표는 지적했다.

이후 고발이 취하된 뒤, 경찰의 인지사건으로 전환돼 수사가 착수됐다. 신씨는 직접 미행과 잠입까지 하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지난 2월 범죄 현장을 포착하는데 성공, 드디어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이 이뤄졌다. 신씨는 지난 4월 뒤늦게 권익위로부터 공익제보자로 인정받았고 신변보호 조치를 받을 수 있게됐다. 최근에는 참여연대가 공익제보자를 대상으로 시상하는 의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고통은 여전히 진행 형이다. 신씨는 생활고와 정신적인 스트레스 등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 대표는 신씨의 사례처럼 공익신고자들이 의로운 일을 함에도 신고처 담당자들로부터 외면 받거나 냉대를 받는 처지에 놓이는 사례가 부지기수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사건의 입증 책임을 떠넘기거나 신분 보호를 등한시하는 기관 및 수사 담당자들의 안일한 태도도 문제 삼았다. 김 대표는 “많은 공익제보자들이 신고 과정에서 신분이 노출되는 사례가 많다”며 “설령 담당관들이 이를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계속 조사에 불려가면 자연스럽게 조직 내에서 의심을 받지 않겠냐”고 꼬집었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와 교육청에서는 공익 신고자들의 신원이 유출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최근 ‘공익제보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신고처를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으나 김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김 대표는 “신고 담당처를 늘린다고 공익신고자 보호가 강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현재 이를 담당하고 있는 기관의 대오각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 제도와 시스템 안에서도 각 기관들이 의지만 있다면 내부 고발자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김 대표는 2003년 대한적십자사의 부실한 혈액 관리 실태를 내부 고발한 공익 제보자다. 그와 동료들의 제보로 오염된 혈액이 유통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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