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피어스는 21세기 보스턴을 상징하는 스타다. 사진은 경기 중 찍힌 보스턴 팬의 플래카드. <뉴시스/AP>

[시사위크=하인수 기자] 보스턴 셀틱스는 NBA에서 가장 많은 영구결번을 보유한 구단이다. 17번의 우승이라는 장대한 기록을 쌓았던 수많은 스타들은 모두 보스턴의 초록색 유니폼을 입었던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유구한 역사와 아이비리그의 열성적인 팬들을 보유한 만큼 ‘셀틱 프라이드’라는 말로 표현되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지난 2003년, 21세기의 마지막 영구결번식을 가졌던 셀틱스의 홈구장 TD가든은 이제 다시 새로운 선수의 유니폼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햇수로 15년 만의 영구결번식을 둘러싸고 들려오는 잡음들이 심상치 않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4일 열렸던 보스턴과 클리블랜드의 시합이었다. 이 날은 지난 시즌까지 보스턴에서 뛰었던 아이재아 토마스가 이적 후 처음으로 보스턴의 홈구장을 찾은 날이었다. 당시 보스턴 구단은 토마스를 위해 준비한 헌정영상을 상영할 계획이었지만, 부상으로 벤치에 앉아있어야 했던 아이재아 토마스는 자신이 실제로 경기를 뛸 때까지 영상 상영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클리블랜드가 TD가든을 다시 찾는 2월 12일(한국시각)이 은퇴한 보스턴의 스타, 폴 피어스의 영구결번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피어스는 이미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날 밤에는 아이재아의 비디오를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한편 대니 에인지 단장은 “헌정영상을 트는 것은 폴 피어스의 기념식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피어스의 불만에는 일리가 있다. 영구결번은 한 구단이 선수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영예며, 그 날 하루를 오롯이 은퇴한 스타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폴 피어스다. 1998년 드래프트 10픽 출신으로 보스턴에 입단한 피어스는 이후 15시즌 동안 셀틱스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득점과 세 번째로 많은 출전시간, 가장 많은 스틸 기록을 썼다. 보스턴의 암흑기였던 2000년대 초~중반과 팀에 22년 만의 우승을 안겼던 2007/08 시즌을 모두 겪으며 팬들과 희로애락을 같이했던 선수다.

한편 토마스의 입장도 복잡하다. 보스턴에서 뛰었던 시간은 2년 반에 불과하지만, 그 짧은 시간은 토마스가 전 NBA의 주목을 받는 올스타 플레이어로 거듭났던 나날들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이미 한 번 셀틱스 구단으로부터 버림받은 경험이 있다. 지난 2016/17시즌, 여동생을 사고로 잃은 슬픔과 부상 속에서 플레이오프를 치렀던 토마스에게 돌아온 것은 클리블랜드행 편도 티켓이었다. 아직까지도 트레이드를 주도한 대니 에인지 단장과 말을 나누지 않는다는 토마스에게 헌정 영상이라는 작은 선물마저 베풀지 못하는 것은 지나치게 잔인한 일이다.

두 선수를 모두 만족시키자니 일정상의 어려움이 발목을 잡는다. 시즌 중 단 두 번뿐인 클리블랜드의 보스턴 방문경기 중 한 번의 기회가 이미 날아갔다. 그렇다고 두 번째 기회를 잡기 위해 피어스의 영구결번 행사를 미루자니 그야말로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 내는 격이다. 결국 애초에 두 선수의 행사 날짜를 조율하지 못한 셀틱스 구단이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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