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일이면 개성공단이 폐쇄 된지 꼭 2년이 된다. 하루아침에 ‘깜짝 발표’로 일터를 잃은 입주기업 대표들은 그날 이후 한시도 편히 잠든 적이 없다. 생전 처음 기자회견을 열고, 집회도 나갔다. 2016년 여름 이야기다. 같은해 10월 ‘비선 모임의 논의 주제는 10%는 미르‧K스포츠재단, 90%는 개성공단 폐쇄 등 정부 정책과 관련된 내용이었다’는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의 <한겨레> 인터뷰가 보도되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부랴부랴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이어진 촛불정국과 대선 등 굵직한 사건들 속에서 개성공단 문제는 잊혀져갔다. 그러나 평창올림픽 개최와 함께 한반도 정세가 급반전하자 입주기업 대표들은 애써 접어뒀던 ‘희망’을 다시 꿈꾸고 있다. <시사위크>는 지난 1월 24~25일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을 만나 2년간 꺼내지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텅 빈 개성공단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대부분은 의류업체다. 때문에 개성공단이 중단된 후 한꺼번에 가장 많은 타격을 입은 산업군도 의류분야였다. 1985년 ‘진패션’이란 이름으로 의류사업을 시작한 최동진 대표는 인터뷰 중에도 한시도 전화를 놓지 못했다. 모두 바이어들과의 통화다. 그 역시 기존 바이어들과 거래가 끊기면서 사업 시작 이래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 “통일부, 4년 내내 정부 꼭두각시... 존재 이유 상실”

최 대표의 명함에는 서울 중구로 소개된 본사 주소와 황해북도 개성시 봉동 개성공업단지라고 적힌 개성공단 주소가 있다. 그만큼 개성공단 입주기업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컸었다. 하지만 2년 전 개성공단이 폐쇄된 후 그의 자부심은 자괴감으로 바뀌었다. “대기업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했을까.” 2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머릿속에 늘 맴도는 질문 중 하나다.

일을 할 수 없는 것보다 입주기업들을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통일부의 소극적인 사후처리였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은 직후 입주기업 대표들이 가장 실망한 곳은 통일부였다. 입주기업 대표들은 당시 언론을 통해 ‘통일부도 개성공단이 중단되기 직전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고 설명하곤 했다. 이후에도 통일부는 사실상 기업인들의 상황을 방치해왔다. 정부에서 아무 방침이 없으니, 통일부에서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특히 입주기업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발언 등으로 대표 및 직원들을 두 번 울렸다는 지적이다. 최 대표는 “개성공단이 문을 닫고 나서 통일부 관계자들을 만나 여러 차례 어려운 상황을 설명했지만 돌아온 답은 냉소 그 자체였다”면서 “‘당신들 기업하는 데 돈 많지 않냐. 왜 자꾸 힘들다는 소리 하냐’고 하더라”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오죽했으면 통일부 관계자에게 ‘기업하는 사람들이 당신들처럼 매달 정부 예산에서 월급 꺼내가듯이 돌아가는지 아냐. 어떻게 그런 생각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냐’고 따져 물었다”면서 “나중에는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더라”라고 털어놨다.

최동진 디엠에프(주) 대표는 개성공단 중단 후 통일부의 소극적인 사후대처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시사위크>

통일부는 나아가 당시 개성공단의 임금이 대량살상무기에 사용될 수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문서가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는 개성공단에 대한 여론이 더욱 악화되는 데 기여한 주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의혹은 2년가량이 지난 지난해 12월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의 조사 결과 발표 후에야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정리됐다.

혁신위는 “(정부가 주장하는) 문건은 탈북민의 진술 및 정황 등에 근거해 작성된 객관성과 신뢰성이 확인되지 않은 것”이라며 “문건을 작성한 정보기관조차 문건 앞부분에 ‘직접적인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을 표기했다”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언론에 대해서도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언론도 반짝 이슈가 있을 때만 보도하고 그 후로는 기업들이 어떤 상황인지 관심도 없다”면서 “사람들은 ‘정부가 다 보상해줬잖아’라고 묻는데 이젠 설명하기도 입 아프다. 언론은 제발 정부 보도자료만 받아쓰지 말고 진실을 전달해 달라”고 호소했다.

◇ 가동만 되면 평화? 정세에 영향 받지 않아야 진정한 평화

최 대표는 2009년에 개성공단에 입주한 후발주자다. 116개 기업이 입주했던 2009년은 18개 기업이 입주했던 2005년 이래 처음으로 100개사를 돌파한 해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한반도정세가 첫 냉각기를 맞이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해 5월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2월 북한은 또 다시 3차 핵실험을 벌였고, 4월에는 개성공단 폐쇄를 통보했다. 우여곡절 끝에 8월에 ‘어떠한 정세에도 개성공단을 중단시키지 않겠다’는 내용의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를 이뤄냈지만 그 약속은 우리 정부에 의해 깨졌다.

물론 정상화 합의 후 폐쇄되기 전까지도 분위기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북측 근로자 추가 투입, 근로자 기숙사 건립 등 여러 약속들이 이행되지 않았다. 또한 매년 입주기업과 생산액, 북측 근로자 수가 증가했지만 2009년을 기점으로 들쭉날쭉해지기 시작했다.

2016 3월 16일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자와 근로자들이 경기도 파주 임진각평화누리공원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처한 현실을 알리고, 조속한 보상책 마련 등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고 막혀있는 통일대교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실제로 연도별 입주현황에 따르면 ▲2009년 116개사 ▲2010년 201개사 ▲2011~2012년 123개사 ▲2013~2015년 125개사 등 미미하게나마 입주기업이 늘었다. 하지만 당해 연도 북측 근로자의 추가 현황은 2009년 935명에서 ▲2010년 804명(-131명) ▲2011년 776명(-28명) ▲2012년 786명(+10명) ▲2013년 757명(-29명) ▲2014년 815명(+58) ▲2015년 820명(+5명) 등 늘고 줄기를 반복했다.

최 대표가 개성에 있는 동안 두 번의 정부(MB정부, 박근혜정부)는 북한과의 관계 회복에 실패했다. 이에 대해 최 대표는 “후발업체들은 한 마디로 ‘눈칫밥 신세’였다”면서 “남북관계가 워낙 좋지 않아 공장을 어렵게 돌렸다. 바이어들도 불안해서 많은 물량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상화 합의 후 어렵게 공장을 정상화시켰더니 또 다시 이 사태가 나면서 개성에 대한 업계는 신뢰는 바닥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때문에 안보와 경제를 구분하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정책의 지속성은 물론 기조의 일관성도 중요하다. 누가 대통령이 됐든 기업의 경제활동은 위축시키지 말아야 한다”면서 “이는 앞으로도 남이든 북이든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비대위는 지난 1월 2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남북 해빙기류에 따라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평창올림픽 이후 2월 말 방북 신청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방북 신청 시기는 2월 25일 이후 패럴림픽 개최 이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대위는 지난 정부에서 3차례, 문재인 정부에서는 지난해 10월에도 한 차례 방북을 신청한 바 있다.

이날 비대위는 방북신청 예고와 함께 △개성공단 전면중단 부당성 사과 △정부 후속조치 촉구 △정책대출 만기연장 촉구 등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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