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일이면 개성공단이 폐쇄 된지 꼭 2년이 된다. 하루아침에 ‘깜짝 발표’로 일터를 잃은 입주기업 대표들은 그날 이후 한시도 편히 잠든 적이 없다. 생전 처음 기자회견을 열고, 집회도 나갔다. 2016년 여름 이야기다. 같은해 10월 ‘비선 모임의 논의 주제 10%는 미르‧K스포츠재단, 90%는 개성공단 폐쇄 등 정부 정책과 관련된 내용이었다’는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의 <한겨레> 인터뷰가 보도되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부랴부랴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이어진 촛불정국과 대선 등 굵직한 사건들 속에서 개성공단 문제는 잊혀져갔다. 그러나 평창올림픽 개최와 함께 한반도 정세가 급반전하자 입주기업 대표들은 애써 접어뒀던 ‘희망’을 다시 꿈꾸고 있다. <시사위크>는 지난 1월 24~25일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을 만나 2년간 꺼내지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우리 공장에 열여덟살에 입사한 아이가 있다. 10년 가까이 일을 했으니 그 사이 결혼하는 모습도 지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첫 아이가 유산됐고, 직원들이 함께 아픔을 나누고 이겨냈다. 이후 두 번째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다. 그 아이가 배가 한참 불렀을 때 개성을 쫓겨나듯 나왔다. 체구가 참 작았는데… 아기는 잘 낳았는지, 건강한지, 무척 궁금하다.”

개성공단 폐쇄 조치 당시 경기도 파주 통일대교에 안개가 자욱한 모습. 당시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막막한 처지를 대변해주고 있는 듯 하다. <뉴시스>

◇ “아직도 눈에 훤한 개성… 간혹 꿈에도 나와”

2007년에 개성공단에 입주한 옥성석 나인모드(주) 대표는 “아마 지금까지 개성 꿈을 10번 이상은 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 직원들과 회의하는 모습, 그런 모습들이 생생하게 보인다”면서 “그만큼 내게 개성이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개성공단 전면중단 발표는 설 연휴 마지막 날(2016년 2월 10일) 오후 5시경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통일부장관은 이날 발표 직전인 오후 3시 입주기업 대표 등을 남북회담본부 회의실로 긴급 소집해 이같은 내용을 통보했다. 이유는 북한이 1월 6일 4차 핵실험을 단행하고 2월 7일에는 광명성 4호를 발사했다는 것이다. (다만 유엔은 북한의 광명성 4호를 위성으로 공식 등록했다. 위성의 목적에 대해선 ‘지구관측용’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통보 다음날 핵심물자 반출을 위해 우리 측 근로자 중 제한된 인원에 한해 일시적으로 방문승인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입주기업은 개성공단 내 원부자재와 완제품, 기계설비 등 유동자산을 반출할 수 없었다. 북한 역시 같은날 오후 4시 50분경 ‘개성공단 내 남한주민 전원 추방 및 자산 전면동결 조치’를 발표, 우리 측 근로자 280명을 빈손으로 내보냈다.

옥성석 나인모두(주) 대표가 개성공단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위크>

옥 대표는 2016년 2월 개성공단이 중단된 후 재가동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그해 7월부터 베트남에 있는 공장에서 주문품을 처리하고 있다. 그는 “개성에 있을 때는 특별히 좋은 점을 몰랐다. 우리나라면 더 편할텐데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베트남에서 하다 보니 ‘그때가 정말 좋았구나’라고 느낀다”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답답하고 힘든 건지 몰랐다. 또 개성은 매일 1~2시간이면 물건을 떼 오지만 베트남은 일주일이 걸린다. 이게 무슨 돈 낭비, 시간 낭비인가”라고 답답해했다.

한 달의 절반은 베트남에서 생활하는 옥 대표에게 날씨 적응과 소통의 어려움보다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모든 것을 새로 처음부터 꾸려나가야 한다는 부담감과 그에 따른 불안감, 떨어져 나가는 거래처들, 그리고 적자 경영이다.

옥 대표는 “2년 동안 거래처들과 관계가 다 끊겼다. 물건 만들 공장 하나 찾았다고 떨어져간 바이어들이 다시 돌아오는 게 아니다”라며 “숙련도가 떨어지는 직원들에게 어떤 바이어가 주문을 맡기겠는가. 아마 우리와 경쟁하는 다른 해외 업체들은 개성이 중단됐을 때 가장 기뻐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 “진실 밝혀질 것... 영원한 비밀은 없어”

“‘북한이 핵 포기 안하면 우리도 대화 안 해’라는 태도는 무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게 외교면 나도 하겠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측 근로자들은 점점 자본주의에 적응하고 있다. 개성공단은 ‘보이지 않는 통일의 과정’이다.”

당시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조치를 통보하며 “북한이 2016년 2월 7일 장거리 미사일 광명성-4호를 발사한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단호하게 대응하기로 했다”면서 “같은 달 10일 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 조사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28일 혁신위는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 결정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두지시에 따라 이뤄졌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아울러 개성공단 중단 결정 내막이 전 정부에서 밝혀온 입장과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이 비선실세 의혹에 대한 진실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혁신위는 “정부가 밝힌 날짜보다 이틀 전인 2월 8일 당시 개성공단을 철수하라는 박 대통령의 구두지시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며 “2월 10일 NSC 상임위원회는 사후적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을 뿐이라는 판단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 청와대 김규현 외교안보수석이 홍용표 통일부 장관에게 ‘대통령 지시’라며 철수 방침을 통보한 사실도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혁신위의 발표가 있고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국정농단 의혹이 더욱 짙어졌다는 입장이다. 옥 대표는 “개성공단이 국정농단의 ‘피해자’라는 의혹이 있지만 국민으로서, 당사자로서 그런 일은 없길 바란다”면서도 “만약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것은 비선라인에 휘둘린 대통령의 잘못이다. 영원한 비밀이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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