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포스터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일하러 갔는데 위로를 받고 왔다. 103분의 러닝타임 동안 기자의 본분을 잊고 영화에 푹 빠져 관객이 돼버렸다. ‘신작UP&DOWN’인데 DOWN은 어쩌나…. 본격 ‘힐링’ 영화 ‘리틀 포레스트’(감독 임순례)가 베일을 벗었다. “관객들에게 휴식 같은 영화를 선물하고 싶었다”는 임순례 감독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적어도 한 명에게는 통한 것 같다. (*지극히 ‘주관적’ 주의)

◇ 스토리

“잠시 쉬어가도, 달라도, 평범해도 괜찮아!”

시험, 연애, 취업…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김태리 분)은 오랜 친구인 재하(류준열 분)와 은숙(진기주 분)을 만난다.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재하, 평범한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은숙과 함께 직접 키운 농작물로 한 끼 한 끼를 만들어 먹으며 겨울에서 봄, 그리고 여름, 가을을 보내고 다시 겨울을 맞이하게 된 혜원. 그렇게 특별한 사계절을 보내며 고향으로 돌아온 진짜 이유를 깨닫게 된 혜원은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딛는다. 과연 혜원은 정답을 찾았을까.

사계절을 담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 ‘리틀 포레스트’ 그 자체만으로도… ‘UP’

‘리틀 포레스트’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힐링과 위로를 전한다. 한국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아낸 영상미는 미세먼지 하나 없이 산뜻한 공기를 마시고 있는 듯한 상쾌한 기분을 선사한다. 제작진은 한국의 또렷한 사계절을 보여주기 위해 세트장이나 CG를 활용한 것이 아닌 실제 풍경을 있는 그대로 촬영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걸친 4번의 크랭크인과 크랭크업. 봄의 싱그러움과 여름의 푸름, 가을의 풍요로움과 겨울의 설경 등 스크린 속에 고스란히 담긴 자연의 풍광은 그 어떤 미술 작품보다 편안하고 아름답다.

영화 속 또 하나의 힐링 요소는 ‘음식’이다. 임순례 감독은 일본 만화 원작인 ‘리틀 포레스트’에 한국적인 정서를 가미하는 방식 중 하나로 우리의 전통적인 요리를 소개하는 방법을 택했다. 시루떡과 막걸리, 전 등 다양한 한식이 등장한다. 파스타, 떡볶이 등 젊은 관객층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음식들도 등장해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주인공 혜원은 능숙한 요리 실력으로 어려운 음식도 뚝딱 만들어낸다. 먹는 방송(먹방)과 요리하는 방송(쿡방) 프로그램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혜원이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또 완성 후 맛있게 먹어치우는 모습은 여느 요리 프로그램 못지않은 즐거움을 안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 혜원으로 분한 배우 김태리. <영화 스틸 컷,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특히 혜원이 자신만을 위해 정성껏 요리하는 모습에서는 스스로를 향한 위로와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는 듯하다. 혜원은 “고향에 왜 돌아왔냐”는 친구 은숙에게 “배가 고파서”라고 답한다. 은숙은 웃어넘기지만 혜원은 진심이다. 편의점 알바와 취업 준비로 밥 먹을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고단한 삶을 살던 혜원은 삼각 김밥과 식어빠진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다.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은 밭에 얼어있는 배추로 끓여낸 배춧국과 갓 지은 흰쌀밥으로 따듯한 한 끼를 해 먹는다.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고 난 후 얼어버린 몸을 녹이기 위해 수제비를 만들어 먹고 무더운 여름 시원한 콩국수와 선풍기로 땀을 식힌다. 직접 담근 막걸리를 마시며 재하, 은숙과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혜원의 정성이 듬뿍 담긴 따듯한 한 끼는 허기진 배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가득 채우는 요소로 작용한다.

‘리틀 포레스트’는 특별한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 혜원의 지나온 삶과 앞으로 이어질 삶 사이의 1년을 흘러가는 대로 담아낼 뿐이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의 흐름이지만 곳곳에 등장하는 웃음 코드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들과의 시간은 지루할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또 어느 날 편지 한 장만을 남겨두고 떠나버린 엄마(문소리 분)와 혜원의 추억은 감동과 공감을 주기도 한다.

일본 동명 영화가 여름과 가을, 겨울과 봄으로 2편에 나누어 개봉한 것과 달리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는 한 편에 사계절을 모두 담아 시간의 흐름이 보다 두드러지고, 속도감과 리듬감이 더해졌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친구로 호흡을 맞춘 (왼쪽부터) 류준열·진기주·김태리 <영화 스틸 컷,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캐스팅도 좋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 숙희로 단숨에 ‘충무로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김태리는 다른 시대의 인물로 분했던 전작과 달리 ‘리틀 포레스트’에서 2018년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을 연기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수수한 모습으로 밝고 싱그러운 혜원의 매력을 한껏 표현했다.

외모부터 영농후계자 같았던 류준열은 혜원의 옆을 든든히 지키는 재하로 완전히 분했고 첫 스크린 데뷔였던 진기주도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은숙 역을 잘 소화했다. 세 사람이 만들어내는 ‘케미’는 실제 친구들을 보고 있는 듯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 대작 마니아라면… ‘DOWN’

거창한 스토리와 화려한 볼거리, 자극적인 소재 등을 다룬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리틀 포레스트’는 자칫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화.

영화 ‘리틀 포레스트’ 메인 포스터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 총평

지극히 주관적인 영화 리뷰이기 때문에 ‘역대급’ 긴 ‘UP’과 짧은 ‘DOWN’이 완성됐다. 그만큼 ‘리틀 포레스트’는 흠잡을 것 없이 좋은 영화였다. ‘재밌다’는 표현보다 ‘좋다’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들이 넘쳐나고 대작이 극장가를 점령한 한국 영화 시장에서 한없이 평범하고 잔잔하기만 한 이 영화는 그것들과 견주어도 쉽게 지지 않을 만큼 단단한 힘을 지닌 듯하다. 지금의 삶이 고단하다면, 모든 일을 접어두고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고 있다면 ‘리틀 포레스트’를 통해 나만의 작은 숲을 만나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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