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가해자로 지목되며 은퇴를 선언한 배우 조민기(왼쪽)와 조재현. <뉴시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올바르게 사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한 포털사이트에 ‘사과 잘 하는 법’을 검색해봤다. 수많은 블로거들의 포스팅과 도서 등 이와 관련된 게시글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검색 결과를 조합해보면 올바르게 사과하는 방법으로 진심을 담을 것, 구체적으로 사과하는 것, 개선 의지를 보이는 것, 용서를 강요하지 않는 것, 변명을 붙이지 않는 것 등이 소개됐다. 연예 기사에서 웬 ‘사과’냐 싶겠지만 사과에 서툰 ‘특정 연예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성폭력 고발 캠페인인 ‘미투’(#me too) 운동이 연예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연일 폭로글이 터져 나오고 있고 가해자로 지목된 연예인들은 혐의를 부인하다 계속되는 폭로에 결국 사과문을 발표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사과문은 어쩐지 찝찝하기만 하다. “모두 내 잘못”이라면서도 억울함을 토로하고 “연인 관계였다”며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진정성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이름만 ‘사과문’. 올바르게 사과하는 법, 포털사이트에 검색만 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인데 그 정도 성의도 보이지 않는 ‘미투’ 가해자들이다.

◇ 사실무근→모든 걸 내려놓겠다 

‘미투’ 운동 가해자로 지목당한 배우들의 공통점은 일단 부인한 뒤 결정적 폭로가 나오자 뒤늦게 사과문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첫 번째 가해자로 지목된 조민기와 J씨로 보도됐던 조재현은 성추행 가해자로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자 소속사를 통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특히 조민기는 JTBC ‘뉴스룸’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가슴으로 연기하라고 손으로 툭 친 걸 가슴을 만졌다고 진술을 한 애들이 있더라. 노래방 끝난 다음에 얘들아 수고했다 안아주고 저는 격려였다”라고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계속해서 추가 폭로가 이어지고 경찰 조사까지 시작되자 조민기는 지난달 27일 전 소속사 윌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는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제 잘못”이라며 “저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피해자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 제 잘못에 대하여 법적, 사회적 모든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어 “늦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 남은 일생 동안 제 잘못을 반성하고, 자숙하며 살겠다. 앞으로 헌신과 봉사로써 마음의 빚을 갚아나가겠다. 거듭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조재현도 처음에는 혐의를 부인하다 온라인상에서 실명이 거론되고 ‘뉴스룸’을 통해 성추행 피해자의 인터뷰가 공개되자 결국 사과했다. 조재현은 “30년 가까이 연기생활하며 동료, 스태프, 후배들에게 실수와 죄스러운 말과 행동도 참 많았다. 저는 죄인이다.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조재현도 조민기와 마찬가지로 “전 이제 모든 걸 내려놓겠다. 제 자신을 생각하지 않겠다. 모든 걸 내려놓겠다. 지금부터는 피해자분들께 속죄하는 마음으로 제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보내겠다. 정말로 부끄럽고 죄송하다”며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다.

배우 오달수와 김태훈이 진정성이 결여된 사과문으로 논란을 더하고 있다. <뉴시스>

◇ “사귀는 관계였다.”

배우 오달수와 김태훈은 ‘남녀관계’라고 둔갑시키며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듯한 모습으로 논란을 더하고 있다. 먼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뒤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던 오달수는 보도 11일 만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추가 폭로가 이어졌고 또 다른 피해자인 배우 엄지영이 ‘뉴스룸’에 등장하면서 오달수도 결국 사과문을 발표했다.

오달수는 지난달 28일 “모두 저의 잘못”이라면서 “저로 인해 과거에도 현재도 상처를 입은 분들 모두에게 죄송하다고 말씀 드린다”고 전했다. 입장이 늦어진 것에 대해 그는 “엄청난 비난과 질타에도 불구하고 깊고 쓰린 마음에 상처를 받으신 분들에 대한 기억이 솔직히 선명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A씨와 엄지영 배우에게도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오달수는 “덫에 걸렸다”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연애 감정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또 “어떻게 말하든 변명이 되고 아무도 안 믿어 주겠지만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피해자인 엄지영은 ‘뉴스룸’을 통해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고 불쾌감을 드러냈고 A씨도 “명백한 성폭행을 두고 ‘연애 감정’이었다고 말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김태훈도 피해 여성과 “사귀는 사이였다”고 주장하며 폭행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다만 당시 배우자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불륜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는 반성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피해자에게는 “서로 간의 호감의 정도를 잘못 이해하고 행동했다”고 해명했다.

◇ 또다시 상처 주는 사과문

피해자에게 또다시 상처를 줄 수 있는 발언들이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사건을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용기를 내서 고백했다. 그러나 가해자는 ‘연애 감정’, ‘사귀는 관계’라는 말로 또다시 상처를 주고 있다.

또한 그들의 변명은 성폭력에 대한 무지와 잘못된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연인 관계라면 폭력을 가해도 된다는 뜻일까? 실제로 연애 감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느 한 쪽이 원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로 이루어진 관계는 엄연한 폭력이다.

결국 본인을 위한 사과문이다. 피해자들을 향한 진심 어린 사과와 과거 행동에 대한 반성, 앞으로의 개선 의지는 하나도 담기지 않은, 자신에게 쏠리고 있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자기변호일 뿐이다. ‘사과문’이라는 이름의 ‘변명문’. 또 다른 폭력을 가하고 있는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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