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 이솜 캐릭터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돈도, 집도 없는 처지이지만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는 그녀의 삶이 어쩐지 부럽다.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기 위해 ‘진짜’ 좋아하는 것을 잊고, 또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 ‘소공녀’(감독 전고운). 삶에 지친 이들에게 작은 위로를 선물할 수 있을까. (*지극히 ‘주관적’ 주의)

◇ 스토리

“솔직히 요즘 집세도 오르고 담뱃값도 오르니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잠시 집을 나왔지. … 이게 그렇게 이상한 이야기인가?”

가사도우미 3년 차. 하루 수당 4만5,000원으로 집세, 약 값(백발증 치료비), 생활비를 쪼개가며 생활하는 미소(이솜 분)지만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 사랑하는 남자친구 한솔(안재홍 분)만 있다면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 행복하다. 그런데 새해가 되자 상황이 바뀐다. 정확히는 일당만 그대로고 집세와 담배 가격까지 오른다.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소는 삶의 만족을 위한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린다. 좋아하는 것들이 비싸지는 세상에서 과감히 집을 포기하기로 한 것. 그녀는 대학 시절 밴드 ‘더 크루즈’ 멤버들을 한 명씩 찾아가며 특별한 도시 하루살이를 시작한다.

‘소공녀’에서 소소한 행복을 위해 집을 포기한 미소 역을 맡은 배우 이솜. < CGV아트하우스 제공>

▲ 각박한 현실도 유쾌하게 ‘UP’

‘소공녀’는 독특한 소재와 설정에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답답한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게 만든다. 독보적인 캐릭터들이 극을 가득 채우고 배우들의 호연은 영화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주인공 미소의 직업은 가사도우미다. 하루하루 일당을 받아 생활하는 미소는 일상 속 작은 행복(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남자친구와의 소소한 데이트)을 포기할 수 없어 집을 포기한다.

독특한 영화적 설정이지만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의 준말 신조어)적인 삶을 실천해나가는 미소와 돈과 집이 없어도 우아하고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하는 미소의 모습은 힘든 삶을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깊은 공감을 자아낼 뿐만 아니라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소공녀’에서 현실 공감 커플로 연기 호흡을 맞춘 배우 안재홍과 이솜. < CGV아트하우스 제공>

또 사랑하지만 생계를 유지하느라 연애조차 마음 편히 하지 못하는 미소·한솔 커플의 모습은 연애, 결혼, 출산과 집, 인간관계 등 어려운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만 하는 N포 세대들의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영화는 유머를 놓치지 않는다. 매서운 겨울 날씨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차디찬 월세방에서 사랑을 나누려 하지만 너무 추운 탓에 포기하는 미소와 한솔. 추위에 떠는 미소를 안으며 “봄에 하자”고 읖조리는 한솔의 모습은 답답한 현실에서도 웃음을 자아낸다.

떠나간 아내에 대한 상처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침이라고 생각해”라던 미소 후배, 집주인과 미소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빈 방을 홀로 누비는 바퀴벌레까지 방심할 수 없는 ‘웃음 코드’가 영화 곳곳에 녹아있어 재미를 더한다.

‘소공녀’에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극을 가득 채운다. 가사도우미라는 범상치 않은 직업과 소소한 행복을 위해 집을 포기하는 등 자신만의 삶이 확고한 미소 캐릭터는 관객들에게  작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미소뿐 아니라 더 큰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 링거액까지 맞아가며 일하는 문영, 시댁 식구들에게 음식 솜씨로 무시당하는 현정, 아파트를 마련했지만 20년 동안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대용, 늦은 나이에도 부모님에게 얹혀사는 록이, 부자 남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진짜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살아가는 정미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혹은 내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든 캐릭터들로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소공녀’ 미소로 인생 캐릭터를 완성한 이솜. < CGV아트하우스 제공>

배우들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소위 스타급 배우는 없지만 탄탄한 연기력으로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주는 주연 배우와 조연, 단역들은 무엇 하나 모자람이 없다. 특히 주인공 이솜은 가난하지만 ‘엣지’있는 미소로 완전히 분해 유니크하고 사랑스러운 매력을 발산했다. 이솜은 캐릭터 몰입을 위해 영화 촬영 내내 스태프 없이 홀로 촬영장에 나서는 등 열정을 불태운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한 노력 덕이었을까. 이솜은 미소 그 자체였다.

▼ 상업영화 마니아라면 ‘DOWN’

거창한 스토리와 꽉 막힌 엔딩, 화려한 볼거리 등을 다룬 상업적인 영화에 익숙해진 관객이라면 독립 영화만이 갖는 특유의 분위기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각박한 현실을 잠시라도 잊고자 극장을 찾았다면 ‘소공녀’는 피하는 것이 좋겠다.

◇ 총평

‘소공녀’는 답답한 현실을 리얼하게 그려내면서 가난하고 고단한 삶이 언젠간 끝날 것이라는 희망적 메시지는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난 후 ‘불편함’이 남지 않는 이유는 ‘나만 힘든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주는 ‘공감의 힘’인 듯하다. 또 씁쓸한 현실과 마주하면서도 마음 놓고 웃게 하는 전고운 감독의 연출력은 독립영화가 낯선 이들도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게 만든다. 독립영화 입문작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영화. 오는 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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