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정해구 정책기획위원장으로부터 개헌자문안을 전달받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헌법자문특위의 개헌 자문안이 일부 공개된 이후 야권의 비판이 거세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가능케 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없애는 게 시대정신임에도 오히려 ‘대통령 4년 연임제’로 강화했다는 게 주장의 요지다. 아울러 국회가 아닌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점이 지적됐다.

◇ 대통령 ‘임기’는 책임정치 구현 문제

야권의 주장대로 ‘4년 연임제’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강화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통령의 임기문제와 권력은 관련이 없다. 4년 연임제란 현직 대통령이 다음 대선에 단 한차례만 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연속해서 당선돼야 한다는 점에서 언제든 두 번 대통령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둔 ‘중임제’와 다르다. 미국이 사실상 연임제를 취하고 있는데, 미국의 대통령제를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대통령 ‘임기’는 책임정치 구현과 관계가 있다. 미국의 경우 4년에 한 번 꼴로 선거를 통해 대통령 국정운영을 평가한다. 또한 2년 단위로 하원의원 선거를 치러 대통령 임기 중 중간평가 성격도 부여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의 경우, 5년 단임 대통령과 4년 국회의원 임기 차이로 규칙성을 부여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5년 마다 반복되는 ‘레임덕’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도 현 대통령 임기는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간의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 대통령 권한 축소가 ‘제왕적 대통령’ 문제 핵심

‘제왕적 대통령제’와 직결되는 것은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의 크기다. 현행 헌법상 대통령은 예산안편성권을 가지고 있으며 감사원을 직속으로 두고 회계감사권까지 휘두를 수 있다. 법률안제출권은 물론이고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관 임명권도 가지고 있다. 특별사면권까지 있어 인사에 관해 상당한 범위의 권한을 보유한 게 사실이다. 여기에 대통령령 제정 등 행정부 수반으로서 주어지는 권한도 있기 때문에 귀납적 결론으로 ‘제왕적 대통령’이라 평가된다. 따라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는 권한을 얼마나 줄였느냐를 중점적으로 봐야한다.

자문안에는 대통령 권한 축소에 대해 상당히 진보적인 내용이 담겼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축소하거나 제한했고,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에서 독립시켰다. 특별사면권 역시 제한규정을 넣었으며 정부의 법률안제출권도 폐지가 검토됐다. 물론 구체적인 내용과 범위는 복수안으로 보고돼 문재인 대통령의 결정이 남아있다. 그러나 4년 연임제를 취했다고 해서 ‘제왕적 대통령제 강화’라고 규정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정해구 위원장(중)과 김종철 부위원장(좌), 하승수 부위원장(우)이 기자회견을 열고 개헌자문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 검찰, 경찰, 국정원 등 인사는 ‘법률사항’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른바 검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 인사권에 대한 축소논의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주요 행정기관에 대한 인사권을 국가 구성원리인 헌법에 일일이 담을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이는 법률로 정할 사안이기 때문에, 국회가 합의로 조정이 가능하다. 개헌안 처리와 연계해 국회가 법률로서 제한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이 같은 내용이 개헌안에 빠졌다는 이유만으로 전체를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반면 국회의 권한은 강화됐다. 대표적인 것이 예산법률주의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셧다운’ 사태로 알 수 있듯이 예산안법률주의를 취하는 국가는 의회의 예산안 승인이 없다면 행정부가 마비된다. 의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핵심 장치로 우리 국회가 가장 부러워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헌법자문특위는 예산안법률주의와 함께 예산안심사권을 강화하는 내용을 자문안에 담았다. 예산안 편성권까지는 아니지만 상당부분 국회의 권한을 강화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이원집정부제, 국민여론은 ‘시기상조’ 판단

한국당을 중심으로 제기된 ‘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는 반영되지 않았다. 한국당 내 일부의원들은 과거 여당시절에도 ‘외치는 대통령, 내치는 총리’라는 구호 아래 일관되게 이원집정부제를 요구했던 게 사실이다. 다만 과거부터 실시된 여론조사를 보면, 여전히 국민들은 국회에 대한 불신이 커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온다. 실제 헌법자문특위의 여론조사에서도 이원집정부제에 반대하는 여론이 63.8%로 더 높았다고 한다. 국회의 신뢰회복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부분이다.

자유한국당 등 야권은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발의에 대해 '관제개헌'이라고 규정하고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뉴시스>

◇ 국민투표법 개정 없으면 투표자체 불가능

개헌안 찬반논란은 뜨겁지만, 절차법이 부재해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을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7월 재외국민의 국민투표를 제한하는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국회가 이를 보완하는 입법을 하지 않아, 현재는 입법 공백상태다.

학계 일각에서는 대통령령으로 규율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입법이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게 지배적인 견해다. 김종철 특위 부위원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입법이 정비되지않는한 투표권자 확정에 위헌성이 있기때문에 (국민투표를) 시행할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 부분을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관련법이 위헌이긴 하지만 개헌안 논의가 확실히 되면 위헌 문제는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라며 “국민투표법 개정이 안되면 국민투표 자체를 못한다. 문 대통령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로 보고 여러 번 지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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