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북 정상이 서울부터 평양을 거쳐 신의주까지 연결되는 경의선 개보수에 합의하면서 북한 SOC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정부의 규제 위주의 부동산 정책과 해외 수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업계가 예상치 못한 호재를 만났다. 남과 북 두 정상이 경의선 개보수를 골자로 한 남북 경제협력에 합의하면서, 한반도 평화 무드의 최대 수혜 산업이 될 것이란 기대가 쏟아지고 있다. 인프라 조성에만 150조가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거대 SOC 시장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 “도로 사정 안 좋아”… 북, 2급 도로 포장률 7% 남짓

지난달 27일 북한 최고 지도자 중 최초로 남쪽 땅을 밟은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두고 이뤄진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대면 자리에서 문 대통령에게 깜짝 ‘월북’을 제안하는가 하면,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는 그의 표정과 솔직한 화법에서 포악한 독재자의 이미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날 김 위원장은 자신들의 치부를 서슴없이 드러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체제 선전을 그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사회주의 국가 통치자의 입에서 나라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도로 상태가 열악함을 인정하는 발언이 나왔다. 자신의 언행 하나하나가 전 세계로 생중계되고 있는 가운데서 그는 “우리 도로라는 게 불편하다”며 문 대통령에게 비행기로 북을 방문할 것을 권유했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이 말한 북한의 도로 사정이란 과연 어떤 상태일까. 이는 ‘4.27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급물살을 타게 된 남북 경협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대목으로 꼽힌다. 2016년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서 발표한 ‘한반도 통일이 건설산업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이름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총 도로 길이(2만6,164㎞)는 남한의 4분의 1수준이다. 고속도로 길이 격차는 더 큰데 북한은 남한의 18%에 불과한 729㎞가 깔려있다.

북한의 ‘도로 사정’이 남한과 대조되는 결정적인 요인은 포장률에 있다. 고속도로를 제외한 북의 간선도로는 1~6급으로 분류되는데, 이 중 1급 도로의 포장률은 40%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2급 도로의 포장률은 7% 남짓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다. 또 2급 이하의 도로는 도로 폭이 좁아 차량 2대가 동시에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단순 길이에 있어서 남한보다 우세한 철도 사정도 비슷하다. 2014년 기준 남한보다 1,700㎞ 긴 총 연장 5,302㎞에 이르는 북한 철도의 98%는 단선이다. 또 철도의 70% 이상이 일제 강점기에 건설돼 노후화가 심각하고 유지 보수도 부실해 차량이 제 속도를 내는데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전력 등 에너지 부족으로 운행이 중단되는 일이 비일비재 할 정도로 국가 인프라가 열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북한의 도로와 철도 인파를 육성하는 데는 약 1,147억 달러(한화 124조원)가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4년 금융위원회의 ‘한반도 통일과 금융의 역할 및 정책과제’라는 보고서는 도로와 철도에 각각 374억 달러(42조원), 773억 달러(83조원)가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여기에 공항과 항만, 전력과 통신 등 건설 분야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분야까지 더할 경우 북한의 인프라 개발 재원규모는 총 1,400달러(151조원)에 이른다고 파악했다. 연간 해외 시장에서 300억 달러(32조원)를 벌어들이는 데도 애를 먹고 있는 국내 건설‧엔지니어링 업체들에게 북한이 ‘노다지’로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의선 철도와 함께 남북이 현대화해 활용하기로 한 동해선. 동해선이 제 역할을 하게 되면 부산에서 출발해 북한을 지나 러시아까지 육로로 연결되는 길이 열린다. 다만 남측에서는 강릉∼제진 구간이 끊겨있다. <뉴시스>

◇ 제조업 취업률 추월… 독일 건설산업, 통일 후 최대 호황

특히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한 ‘한반도 신(新)경제지도’ 구상의 핵심인 동서해안과 비무장지대(DMZ)를 잇는 ‘H 경제벨트’에 대한 주목도가 올라가고 있다. 11년 만에 재회한 남북 정상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뜻을 함께 하면서 장밋빛 청사진이 현실화 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2020년 문산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서울부터 파주를 지나 개성과 평양,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길이 열리게 된다”며 “한국이 경부선 개통 후 그 주변을 중심으로 부동산 개발 등이 이뤄진 것처럼 북한 역시 경의선을 축으로 개발 호재가 예상 된다. 동해안에서는 남북철도가 연결될 경우에는 러시아까지 통하는 육상 통보가 확보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의 사례는 남북한 경협 확대, 나아가 통일이 국내 건설 산업의 부흥을 이끌 것이란 예측에 힘을 보탠다. 2012년 발표된 한건연의 ‘북한 경제 및 건설시장에 관한 기초 연구’ 자료에 따르면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독일은 건설 산업을 중심으로 동독의 경제 재건을 추진해 건설업 취업 인구 비중이 제조업 인구 비중을 앞서는 결과를 낳았다. 또 건물 건축허가 건수가 통일 초기인 1992년에 전년 대비 384% 오르는 등 건설업이 호황을 맞았다.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과 저유가 기조로 인해 해외 수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건설사에게 블루 오션의 길이 열리면서 건설사들도 한껏 고조된 분위기다. 대형건설사 가운데 몇 안 되는 대북 사업 경험이 있는 대우건설은 꾸준히 대북 전담팀을 운영해오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수년전부터 대관팀에서 대북 정보를 수집하는 등 관련 업무를 해왔다”면서 “여기엔 과거 대북 사업에 참여한 직원 외에도 젊은 직원들까지 합세해 팀의 역할이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현대건설과 함께 경수로 사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또 대우그룹 시절에는 남북 민간 경제협력 사업을 최초로 진행하기도 했다. 1996년 대우와 북한 삼천리총회사는 각각 512만 달러를 투자해 남포공단에 ‘민족산업총회사’를 설립하고 셔츠와 재킷, 가방 등을 수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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