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섬나라였던 우리나라를 대륙과 이어줄 전망이다. 사진은 임진강 철교 위를 달리고 있는 경의선 열차.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70년간 허리가 끊어져있던 한반도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4·27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정상이 휴전선을 넘어 손을 맞잡았고, 판문점 선언으로 전쟁의 끝과 평화의 시작을 알렸다. 물론 북미정상회담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관계 재정립과 핵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아있다. 다만, 전에 없던 새로운 평화의 흐름이 시작된 것도 분명 사실이다.

한반도 평화시대는 정치·사회·국제질서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큰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경제는 한반도 평화시대의 성패를 가를 중요한 요소이자, 가장 선도적인 위치에 설 가능성이 높다. 결국은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그에 따라 정치·사회적 변화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어떠한 경제적 변화가 찾아올지는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먼 미래의 과학기술발전을 상상해보는 공상과학보다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이 다가온 한반도 평화시대, 우리는 어떤 경제적 변화를 맞게 될지 그려본다.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면, 그동안 분단 접경지역으로 소외돼있던 지역들이 교류의 중심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뉴시스>

◇ 소외됐던 ‘군인의 도시들’, 한반도 평화의 거점 된다

이번 판문점 선언에는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간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반도 평화시대로 가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이뤄질 변화 중 하나는 이 같은 끊겼던 길의 연결이다. 여기엔 오랜 시간이나 비용이 필요하지도 않다. 이전의 남북교류 과정을 통해 상당부분 진행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시대, 교통의 대동맥은 ‘H형태’를 중심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목포에서 서울, 평양, 신의주, 그리고 중국으로 연결되는 ‘서해안 라인’과 부산에서 원산과 나진을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톡까지 닿는 ‘동해안 라인’이다. 아울러 부산에서 서울, 평양, 신의주를 가로지르는 라인과 목포에서 나진까지 이어지는 라인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도로와 철도 등 길은 국가경제의 핏줄이자 가장 기본적인 기반시설이다. 사람은 물론 물자이동의 토대가 된다. 아무리 좋은 자원이 있고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든다한들, 이를 이동시킬 길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남북의 길이 다시 연결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우선 그동안 분단의 가장 큰 피해를 입으며 개발에서 소외돼왔던 지역들이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경기도 김포와 연천, 강원도 철원, 화천, 양구, 고성 등이다. 김포와 연천, 철원은 향후 남북 경제교류를 위한 물류기지나 공장 등이 들어서기 좋은 위치다. 화천과 양구, 고성은 유동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동해안 라인을 통한 남·북·러 교류가 활성화되면 영덕, 울진, 삼척, 동해 등도 새로운 동력을 얻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인 2015년,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안을 발표하고있다. <뉴시스>

◇ 끊겼던 길 연결, 세계와도 연결된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변화는 ‘섬나라’에서 ‘대륙의 구성원’으로 합류한다는 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진단한 주평에서 “남북 간 물류망 연결을 통해 우리의 경제 영토가 사실상의 섬나라에서 대륙경제국가로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 된다”며 “이는 남북한 경제 모두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현재 섬나라 아닌 섬나라다. 삼면만 바다지만, 북쪽이 모두 휴전선에 막혀있어 육로로 갈 수 있는 외국이 없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시대가 찾아오면 남북한의 길이 연결되고, 그 길은 다시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유럽까지 연결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무역을 위해 무조건 항공기 또는 선박을 이용해야 했다. 한반도 평화시대엔 이 같은 무역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달라진다. 비용이 비싼 항공기는 제외하고, 한반도 평화시대에 가능한 변화를 몇 가지 상황을 가정해 살펴보자.

현재 중국 내륙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이 우리나라로 들어오기 위해선 철도 및 도로를 통해 해안지역으로 이동시킨 뒤 선박을 이용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제품을 옮겨 싣는 등의 절차가 더해지고, 이는 시간과 비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제품을 유럽 등에 수출하는 과정도 마찬가지. 그동안은 대부분 선박에 실어 드넓은 인도양을 통해 보냈다. 문제는 운송기간이 길고, 날씨 등 변수가 많았다는 점이다. 또한 유럽 내륙지역은 추가적인 운송이 필요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우선 선박으로 러시아나 중국으로 제품을 이동시킨 뒤 열차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적잖은 기간과 추가적인 상하역 작업이 요구됐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정치·사회적 변화는 물론 경제 분야에서도 큰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뉴시스>

반면, 열차를 통해 북한지역을 통과할 수 있게 되면 40~50일 가량 걸렸던 유럽행 운송기간은 보름가량으로 크게 줄어들게 된다. 비용도 더 싸다. 구미에서 만들어진 전자제품이 열차에 실려 곧장 유럽으로 향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인도와 파키스탄,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도 한층 활발해질 수 있다. 이들 지역의 경우, 선박 대신 육로를 이용하는데 따른 효과가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해상운송업이나 주요 항구도시의 입지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오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제품의 특성이나 상대국에 따라 선박을 이용한 무역도 계속된다. 동시에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잇는 거점 역할도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중국이나 아시아 내륙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이 일본으로 향하기 위해 부산까지 철도로 이동한 뒤 선박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변화가 찾아오기 위해선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은 과거에 이미 도로 및 철도 연결 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갈등 국면이 찾아오면서 모든 것은 백지화됐고, 심지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같은 사업도 중단된 바 있다. 진정으로 항구적 한반도 평화시대를 구축하기 위해선 각종 경제교류가 정치적 사안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또한 교통을 연결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경제지형을 구축하는 단계에서도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실행력이 요구된다. 북한과 도로 및 철도가 연결되고 이를 통해 대륙경제로 도약하는 과정에서도 소외되는 지역이나 피해를 입는 업종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대책마련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또 다른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남북간 합의 내용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함께, 남북관계 개선 및 경협 재개가 한반도 평화 정착에 도움이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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