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나란히 EPL 잔류에 성공한 브라이튼(왼쪽)과 허더즈필드. 유니폼까지 닮은 두 팀의 생존을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뉴시스/AP>

[시사위크=김선규 기자] 승격과 강등은 축구리그가 갖는 대표적 특징이자 흥미로운 매력이다. 1부리그 팀들은 강등을 피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고, 2부리그 등 하부리그 팀들은 승격이 최대 목표다. 승격에 성공하거나, 극적으로 강등을 면한 팀의 팬들은 우승 못지않게 기뻐하곤 한다.

특히 규모가 큰 유럽의 주요 축구리그는 1부리그와 하부리그의 차이가 상당하다. 1부리그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수익의 규모가 완전히 달라진다. 승격과 강등을 둘러싼 경쟁이 ‘전쟁’처럼 펼쳐지는 현실적인 이유다.

하부리그 팀이 1부리그에 진출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EPL의 경우 우선 2부리그의 챔피언십 무대에 올라야한다. 챔피언십은 EPL보다 많은 24팀이 리그를 펼치는데, 참가팀이 많은 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여기서 1·2위를 차지하면 승격 티켓을 얻게 되고, 3위부터 6위까지는 마지막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EPL로 승격한 뒤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생존을 놓고 더욱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대부분의 승격팀들은 차원이 다른 EPL에서 큰 어려움을 겪는다. 기존적으로 전력 수준 차이가 크기 때문인데, 이를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선수들을 영입해도, 선수들 간의 조화나 전술적 완성도가 없을 경우 전력은 강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존 선수들만으로 상대하기엔 전력 차이가 너무 크다. 즉, 적절한 영입과 조화, 전술적 준비 등 3박자가 갖춰져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승격팀들 중엔 과감한 투자를 앞세워 수준급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고도, 이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실패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올 시즌 EPL 승격팀들은 모두 이 어려운 일을 해냈다. 올 시즌 EPL 승격팀은 뉴캐슬과 브라이튼, 그리고 허더즈필드였다. 이들의 최종 성적은 뉴캐슬 10위, 브라이튼 15위, 허더즈필드 16위다. 이들이 모두 살아남으면서, EPL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온 스완지, 스토크시티, 웨스트브롬 등이 강등됐다.

이처럼 승격팀 3팀이 모두 생존에 성공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EPL에서는 2011-12시즌 이후 처음이다. 그 사이 5년 동안 15개 팀이 승격했는데, 이 중 절반이 넘는 7팀이 첫 시즌에 곧장 강등됐다.

더욱 주목을 끄는 것은 생존에 성공한 팀들의 면면이다. 뉴캐슬의 경우 최근 EPL에서 잔뼈가 굵은 팀이지만, 브라이튼과 허더즈필드는 EPL이 익숙한 팀이 아니었다.

브라이튼은 1901년 출범해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내세울 것은 없는 초라한 팀이었다. 팀 역사 대부분을 하부리그에서 보냈고, 자랑할 만한 우승컵은 1920년 채리티실드 우승컵뿐이다.

브라이튼이 다시 챔피언십 무대를 밟은 것은 2012-13시즌이다. 이후 브라이튼은 승격 플레이오프에 자주 진출하며 기대감을 높였으나 번번이 좌절했다. 하지만 지난해 챔피언십에서 2위를 차지하며 브라이튼은 올 시즌 34년 만에 1부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허더즈필드는 1920년대 1부리그 3연패에 성공하는 등 전성기를 누렸으나, 이제는 너무 먼 이야기다. 1971-72시즌 이후 줄곧 하부리그를 전전했고, 특히 1974-75시즌엔 1부리그 우승 경험을 가진 팀 최초로 4부리그까지 추락했다. 다시 챔피언십에 올라온 것은 브라이튼과 같은 2012-13시즌에 이르러서다. 이후에도 허더즈필드는 챔피언십 하위권을 맴돌았다.

자동으로 승격에 성공한 브라이튼에 비해 허더즈필드의 승격은 더욱 드라마틱했다. 챔피언십에서 5위를 차지한 뒤, 두 차례 승부차기 혈투 끝에 가까스로 승격에 성공한 것. 선수단 전체 연봉이 EPL 탑클래스 선수 한 명 연봉의 절반도 되지 않는 팀, 승격보단 강등이 더 가까웠던 팀이 승격에 성공한 것이다. 허더즈필드의 승격은 그 자체로 기적이자 동화로 여겨졌다.

이처럼 EPL이 낯설 수밖에 없는 두 팀이었기에 이들의 잔류를 점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브라이튼과 허더즈필드는 자신들을 향한 불신의 시선을 보기 좋게 깨버렸다. 시즌 중반 강등권으로 처지기도 했으나, 중요한 지점에서 저력을 발휘했다. 허더즈필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브라이튼은 아스널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모처럼의 1부리그, 그리고 팀 역사상 최초의 EPL 승격 시즌을 아름답게 마친 두 팀의 앞으로의 행보에도 많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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