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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고용시장①] 구직자 "야근수당보다 ‘저녁 있는 삶’ 달라"
2018. 05. 18 by 현우진 기자 hwjin0216@naver.com
한국의 청년실업률이 지난 4월 10.7%를 기록했다. 전체 실업률 4.1%와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높은 수치다. 사진은 채용박람회에서 기업들의 채용공고를 살피는 구직자.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한국의 고용지표는 상당히 견고하다. 2018년 4월 기준 한국의 실업률은 4.1%로 세계 주요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OECD 평균 5.5%, 2017년 4분기 기준). 2012년 이후 꾸준히 3%대 중후반에서 4%대 초반을 유지했을 정도로 안정성도 높다.

반면 그 내부구조를 살펴보면 고용시장 어딘가가 심각하게 뒤틀려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인구고령화와 함께 60대의 취업률이 점차 높아지는 반면 청년층 실업률은 최근 수년간 계속해서 높아만 가고 있다. 2013년 4월 8.4%, 2015년 4월 10.2%였던 청년실업률은 2018년 4월엔 10.7%까지 상승했다. OECD 주요국이 경기개선과 함께 청년실업률이 점차 떨어지는 추세인 것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이다. 이는 취업에 대한 청년취업계층의 뒤바뀐 인식, 그리고 이에 대한 기업계의 몰이해가 함께 작용한 결과다.

◇ 직장 선택의 달라진 기준, ‘워라밸’

취업포털 ‘커리어’가 개인회원을 대상으로 올해 3월 초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직업을 선택하는 구직자들의 성향이 예전과 달라졌음을 잘 드러낸다. 설문 참가자의 56.31%가 ‘직업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으로 ‘몸과 마음의 여유’를 꼽았다. 직업을 선택하는 가장 고전적인 기준이었던 ‘경제적 보상’은 22.22%에 불과했다.

또 다른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설문조사는 여유 있는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취업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1,007명이 참여한 이 설문조사에서 자신이 현재 일과 삶의 균형, 즉 ‘워라밸’을 누리고 있다고 답한 직장인은 40.3%에 불과했다. 특히 기업 특성별로 응답률에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공기업과 외국계 기업에서 ‘워라밸’ 응답률이 각각 59.5%와 58.6%에 달했던 반면 대기업은 44.6%, 중소기업 38.1%에 그쳤다.

가장 큰 문제는 늦은 퇴근시간. ‘야근을 경험한 직장인의 비율’은 중소기업 69.5%와 공기업 47.6% 등 워라밸 순위와 정확히 반대로 나타났으며, 주당 근로시간도 외국계 기업이 중소기업보다 평균 2.8시간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직자는 퇴근 후의 여유를 원하지만, 실제로 이를 즐기고 있는 취직자는 많지 않다. <그래프=시사위크>

이는 최근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공기업과 외국계 기업 선호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직업적 안정성과 경제적 보상은 물론 퇴근시간도 비교적 잘 지켜지는 공기업의 경우 ‘신의 직장’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대기업과 비교했을 때 낮은 연봉수준 때문에 선호도가 낮았던 공무원도 정시 퇴근과 휴일이 보장된다는 점이 각광받으면서 많은 인구가 시험장으로 몰리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에 비해 연봉수준은 절반에 가까운 반면 주당 근로시간은 오히려 더 많았다.

◇ 투자와 개선 외면… 중소기업 기피현상으로 이어져

한국의 ‘인력 미스매치’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매년 늘어나고 있는 취업 준비 인구다. 2018년 4월 현재 통계청의 공식 자료에서 취업준비생으로 분류된 인구는 69만1,000명이다. 매년 4월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 한국의 취업준비생은 2017년에는 65만6,000명이었으며 2016년에는 63만7,000명, 2015년에는 58만9,000명이었다.

이는 취직을 위해 눈을 낮추는 대신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하려 학원을 찾거나 필기시험·면접을 준비하는 청년인구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경제성장과 함께 한국사회에 자리 잡은 학벌지상주의 문화는 4년제 대학들을 부지기수로 양산했고, 이에 따라 수많은 대학졸업생들이 배출됐다. 긴 교육기간에 대한 보상을 원하는 이들을 ‘워라밸’이 좋은 공기업·외국계 기업만으로 수용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자연스레 고학력 청년층이 국내 노동인력의 87.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즉 청년실업 문제의 기본적인 접근법은 상대적으로 근무조건이 좋은 대기업이 채용 인원을 늘리고, 중소기업은 청년인력을 유치할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돼야 한다. 그러나 청년취업 문제의 또 다른 주체인 기업계는 이 이슈에 대해 상당히 소극적인 모습이다. 지난 상반기 취업시장을 뒤흔든 것은 국내 대기업이 채용 규모를 줄일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당시 한국경제연구원 조사(2월 7일~3월 2일 진행)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 중 상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다고 응답한 곳이 44.0%였고, 작년보다 채용을 줄이거나 아예 신입사원을 뽑지 않겠다는 곳이 12.0%였다. 채용을 늘리겠다는 곳은 8.8%에 불과했다.

한편 공기업과 외국계 기업으로부터 인재를 끌어올 만한 메리트를 가지고 있지 않은 중소기업은 청년층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인력난·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중소기업 중앙회는 15일 최저임금제도 개선방안에 대한 토론회를 열고 자신들의 입장을 발표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상여금과 숙식비를 포함시킬 것과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할 것(늦출 것),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 최저임금 제도를 구분 적용할 것 등이 요구됐다. ‘워라밸’을 망가트리는 주범인 수직적·구시대적 기업 문화에 대해선 함구한 채 최저임금제도와 정부 지원에만 매달리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