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호 센터장은 1987년 한국예탁결제원에 입사해 한국자본시장의 단계적 대외개방과 국제화 확대에 따른 다양한 글로벌비즈니스 업무를 수행했다. 작년 2월부터는 부산국제금융도시추진센터장으로서 부산금융중심지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부산국제금융도시추진센터 제공>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지난 2009년 1월, 정부는 ‘금융중심지의 조성과 발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한국에 두 개의 금융중심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전통적 경제중심지로서 가장 많은 국제금융거래를 담당하던 서울을 종합금융중심지로, 제1의 항구도시인 부산을 해양‧파생상품 특화중심지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부산국제금융센터(BIFC)가 건설됐으며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 등이 본사를 부산으로 이전했다.

부산국제금융도시추진센터는 부산국제금융중심지 육성에 필요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목적으로 부산경제진흥원 내에 설립된 교육‧홍보‧연구기관이다. 부산지역의 금융시장 동향과 세계 주요 금융중심지에 대한 조사, 그리고 부산을 금융중심지로 성장시키기 위한 발전전략 연구가 주 업무다. <시사위크>는 후발주자인 부산이 동아시아, 나아가 글로벌 금융중심지로 발돋움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보고자 부산국제금융도시추진센터의 박영호 센터장과 서면인터뷰를 진행했다.

-부산국제금융센터가 문을 연지 약 3년8개월이 지났다. 그동안의 성과를 평가한다면.
“2009년 1월 해양․파생 특화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부산시는 지역금융센터를 넘어서 국제금융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문현금융단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 일환으로 2014년 6월 문현지구 내 부산국제금융센터 1단계 사업이 완료돼 한국거래소‧한국자산관리공사 등의 공공 금융기관과 해양금융종합센터‧한국해양보증보험‧한국선박해양 등의 해양금융기관들이 BIFC에 입주, 해양‧파생 특화 금융중심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3년 8개월이 지난 현재 BIFC에는 31개 기관, 3,800여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관련 공공기관과 국책은행의 집적도 면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된다.

부산국제금융도시추진센터와 부산시는 그간 런던‧뉴욕‧프랑크푸르트‧파리‧도쿄 등 전통적 선진 종합국제금융센터는 물론 싱가포르‧홍콩‧칭다오‧카사블랑카 등 도시형 또는 국가주도형 특화신흥금융도시에 이르기까지, 네트워크를 구축해 정보를 교환하고 베스트 프랙티스(모범경영방식)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또한 매해 해외 IR을 추진하여 70여개 기관에 부산금융지를 홍보하고 13개 기관과 상호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14년 3월 부산이 세계금융센터지수(GFCI)에 27위로 첫 진입하는 쾌거를 이뤘다.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최근 ‘금융’이 부산의 연관 키워드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도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다만 해양·파생·기술금융에 특화된 공공기관들의 물리적 집적에 그치지 않고 BIFC에 입주한 30여 기관들이 협업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부산금융중심지 고유의 발전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으며, 국제금융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동북아 지역의 거점으로서 부산을 우선순위로 선택할 수 있도록 비즈니스 기회를 확충하고 정주환경을 개선해 나가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2014년 완공된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부산을 해양/파생금융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한 계획의 중심지다. <뉴시스>

-부산국제금융센터는 해양·파생금융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2009년 해양․파생 특화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부산시는 중앙정부와 협력하여 해양금융 관련 기능을 BIFC에 집중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왔다. 2014년 11월 KDB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의 해양금융 부서가 결집된 해양금융종합센터 개소를 시작으로 한국선박금융, KSF선박금융, 캠코선박운용이 BIFC에 자리를 잡았다. 이어서 한국해양보증보험과 한국선박해양이 설립되면서 부산국제금융센터는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해양금융의 공급자가 대거 집결된 해양금융중심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올해 7월에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설립되면 부산은 명실상부한 한국형 선박해양금융의 메카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파생 분야의 경우 한국거래소를 주축으로 장외파생상품 청산소(CCP), 미니선물‧옵션 시장이 개설됐고, 증권파생상품연구센터에서 다수의 박사급 연구원이 파생상품개발과 시장발전을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머지않아 파생상품의 종류나 거래량 등 양적인 측면은 물론 전문성에 있어서도 세계일류의 파생시장으로 재도약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파생‘시장’은 부산에 소재하고 있으나 파생 ‘거래’의 대부분은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올 9월에는 카이스트금융전문대학원에 필적할 부산금융전문대학원이 개원한다. 해양‧파생금융 전문인력을 양성하게 될 부산금융전문대학원은 부산대-한국해양대 공동학위 과정으로 실무와 이론이 겸비된 국제수준의 석사학위 교육과정으로 운영될 계획이다.”

-‘종합금융중심지’를 목표로 한 서울국제금융센터의 경우 다수의 전문가들이 싱가포르를 롤 모델로 삼아야한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해양·파생금융 특화 금융중심지라는 목표를 내건 부산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국제금융도시가 있다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남북 간 경제교류가 활성화되면 세계 6위 컨테이너항을 보유하고 있는 부산은 육상에서도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전초기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싱가포르나 홍콩이 중국본토를 잇는 가교역할을 하게 되면서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게 된 것처럼, 미래의 부산은 중국은 물론 러시아와 몽고를 거쳐 유럽 각국과 에너지와 상품을 교류하는데 있어서 바닷길과 육로가 하나로 연결된 최적의 물류중심지가 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부산이 벤치마킹해야 할 도시로는 선진 선박해양금융중심지인 싱가포르는 물론, 함부르크‧시드니‧토론토 등 다양한 답변이 제시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인센티브 측면에서는 싱가포르의 정책과 제도가 참고할 것이 많이 있다. 싱가포르 정부의 적극적인 금융산업 육성의지로 다양한 조세특례 규정이 마련되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가깝게 각종 규제가 완화되어 많은 글로벌 투자은행이 싱가포르에 아시아본부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함부르크의 경우 항구에서 200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달된 철도시스템을 통해 바다를 건너 온 상품과 에너지를 유럽 각국에 분배해주는 물류허브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시드니는 슈퍼에뉴에이션으로 대표되는 호주의 퇴직연금과 자산운용시장의 젖줄이 돼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금융중심지로 도약했고, 토론토의 경우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하여 현재는 세계 10대 금융센터로서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요컨대, 어느 한 국가나 금융중심지를 벤치마킹하는 것 보다는 각각의 장점을 선별하여 부산의 위치와 역할에 맞는 고유한 금융중심지 모델을 개척해야 할 것이다.”

작년 8월 카사블랑카금융도시기구와 상호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부산경제진흥원과 부산국제금융도시추진센터. 가운데 오른쪽이 박영호 센터장. <부산국제금융도시추진센터 보도자료>

-금융중심지가 갖춰야할 기본적인 역량 중 하나는 외국기업의 투자를 유인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한국이 금융중심지로 육성할 계획을 갖고 있는 서울과 부산은 동북아시아의 경쟁자들에 비해 투자유치능력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부산국제금융도시추진센터 측에서는 외국기업에 대한 부산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 어떤 점들을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보고 있나.
“부산이 글로벌 금융기업에 매력적으로 어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비즈니스 기회다. 현재와 같은 고도화된 IT환경에서 물리적 위치는 과거와 같이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앞서 강조한 것처럼 부산이 가진 천혜의 지정학적 위치를 적절히 활용해야 하겠지만, 자금을 조달하여 이를 투자로 연결하는 금융의 중개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금융 산업의 수익모델이 제시돼야 한다. 부산이 당초 풍부한 배후 수요가 있는 선박‧해운·수산을 포괄하는 해양금융에 특화하고자 한 것도 이러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해양금융의 경우 7월 중 신설될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중심으로 해운‧조선‧금융을 연결하는 효율적인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지속적인 영업기회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창의적이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선박해양금융에 특화된 부산 고유의 해양금융전문투자은행을 설립하여, 상품설계와 운영은 학습을 통한 인공지능(AI)으로 대체하고, 장부관리에는 블록체인의 보안성과 경제성을 접목하는 것과 같은 노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획기적인 규제완화가 필요하다. 세제혜택확대나 정주환경개선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저는 무엇보다 투자자가 예측 가능한 규제환경을 조성하여 비즈니스기회를 보다 확대해 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부산은 서울과 달리 금융산업기반이 취약한 금융중심지이므로 정부정책으로 금융특구 수준의 강력한 규제완화가 수반돼야 한다. 금융특구, 규제샌드박스, 규제프리존 등 명칭에 상관없이 금융중심지만이라도 기존의 각종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네거티브방식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최근 도쿄가 과거 세계 상위의 금융중심지 위상을 회복하고자 네거티브 규제제도를 도입하여 핀테크 등 신기술금융기업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과거 현재 우리와 같은 복잡한 금융외환규제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를 전면 폐기하고 네거티브시스템으로 개편했다.”

-부산은 지난 2015년 Z/YEN이 발표하는 세계금융센터지수(GFCI)에서 24위에 올랐지만, 2018년 3월 발표된 동 지수에서는 49위에 그쳤다. 부산국제금융도시추진센터 측에서는 부산의 GFCI 순위가 급락한 원인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보완방안은 어떻게 마련했는지 궁금하다.
“2014년 BIFC 1단계 건물이 완공되어 금융기관들이 입주를 시작하고 해양금융종합센터 설립, 한국해양보증보험 예산반영 등 금융중심지 정책이 구체화되면서 부산이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부산은 세계금융센터지수에서 24위, 단기발전가능성 평가에서는 3위 까지 순위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지난해 9월 발표한 GFCI 순위에서는 70위까지 하락하기도 했는데, 금융중심지의 인프라 조성 이후 기대보다 느린 진척도와 아직까지 낮은 부산의 인지도 내지는 지명도가 주 원인으로 생각된다. GFCI 순위선정이 설문응답자의 주관적 평가에 의존하는 측면이 있어 런던‧뉴욕 등 주요 금융도시들 외에는 발표마다 매번 도시 간 순위의 변동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저희 센터와 부산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BIFC 2단계 개발사업과 향후 개발계획, 중국지방정부와 협력사업을 포함한 해외 금융도시와의 네트워크를 보다 확대하고 해외 홍보를 강화할 예정이다. 금년에 창설될 예정인 세계금융중심지연합에도 창설멤버로 가입하여 정보교류는 물론 ‘베스트 프랙티스’를 공유함으로써 부산의 고유한 금융모델을 개발하고 홍보하는데 활용할 것이다.”

-외국인이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있는가 또한 금융중심지의 국제화정도를 평가할 때 고려되는 요소다. 싱가포르·홍콩 등지에 비해 영어를 쓰기 불편하다는 것도 한국의 약점인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접근법이 필요한지 의견 부탁드린다.
“영어사용에 대해서는 유사한 환경에 있는 일본을 참고할 수 있다. 도쿄 금융중심지 부활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일본판 금융 빅뱅’은 ‘금융 원스톱 지원 서비스’제도를 통해 인허가 단계에서부터 영어로 해결이 가능하게끔 해설서를 정비하고 상담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우수인력의 생활 편의성 제고를 위해 외국인 특구를 지정하여 의료, 국제학교, 주거 등 양질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일본 SBI금융그룹의 IT업체인 SBI BITS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300명의 우수한 인력들이 모여 있다. 그 중에는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직원도 다수 있지만, 그럼에도 업무는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금융업에 종사하는 인력이라면 영어사용에 큰 거부감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정책적 배려만 이루어진다면 언어로 인한 불편함은 점차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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