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의 국제금융센터 빌딩. 설립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국제금융센터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금융중심지인 런던부터 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뉴욕,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상하이까지, 세계 주요국은 외국의 금융기업과 투자자금을 받아들이는 창구도시들을 갖추고 있다. 제아무리 거래 속도가 빠르고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금융기업들도 규모의 경제와 인프라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금융 산업이 발달한 국가들은 다수의 금융기업 밀집지역을 보유하게 된다. 발전된 금융서비스와 전문 인력을 갖춘 이 지역들을 가리키는 표현이 바로 국제금융센터(IFC)다.

한국에도 국제금융센터가 있다. 여의도공원 맞은편, 국제금융로에 위치한 오피스타워 3동과 호텔 1동이 서울국제금융센터(SIFC)의 본체다. 정식 명칭보다도 소재지의 이름을 따 ‘여의도 IFC’로 더 자주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 ‘국제금융기업 유치’ 목표는 어디로

여의도의 옛 중소기업전시장 부지에 서울국제금융센터를 건설하기 위한 첫 삽이 떠진 것은 2006년의 일이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임기 끝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추진한 프로젝트다. 총 사업비는 1조5,140억원. 서울 금융산업의 구심점 역할과 글로벌 금융기관‧다국적기업 유치를 위한 인프라 확보가 목표였다.

그러나 2012년에 완공된 후 6년이 지난 지금, 서울국제금융센터는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거창한 비전은커녕 국제금융기업을 위한 인프라 제공이라는 1차적 목표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 금융중심지의 기본 요건인 ‘투자유치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청 투자유치과의 자료에 따르면 서울국제금융센터를 구성하는 3개의 빌딩 중 하나인 ‘쓰리IFC’의 임대율은 2017년 4월 기준 46%에 불과하다. 듬성듬성 불이 켜진 사무실의 주인들 또한 제조업에 속하는 IMB과 전기회사 야스카와, 식품업체 YG푸드 등 비금융기업들이 대부분이다. 국제금융센터라고 해서 반드시 금융기업으로만 사무실을 채워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이래서는 단순한 사무밀집지역과 구분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임대율이 77%로 보다 높은 ‘투IFC’에도 로펌‧제조업‧의약‧마케팅 등 다양한 업종의 사업체들이 입주해있다.

가장 먼저 입주가 시작된 ‘원IFC’는 비교적 사정이 낫다. 이곳에는 딜로이트 컨설팅과 맥쿼리투자신탁운용(구 ING자산운용), 다이와증권, 뉴욕멜론은행 등이 입주해있다. 그러나 상기된 외국계 금융기업들은 모두 국내 타 지역에 있던 회사가 이전해온 것이어서, 서울국제금융센터의 존재로 인해 외국기업의 투자가 유치된 사례라고 보기는 힘들다.

서울IFC의 3개 빌딩 중 '쓰리IFC'는 임대율이 46%에 불과하며, 입주기업도 비금융기업이 많다. <시사위크>

◇ 서울시와 AIG의 수상한 계약

건설 당시부터 제기됐던 ‘졸속 행정’ 논란은 서울국제금융센터가의 현 상황에 대한 첫 번째 설명이다. “덮어 놓고 건물부터 짓고 본 것 아니냐”는 말로 정리할 수 있는 이 문제는, 서울시와 미국 금융그룹 AIG가 체결한 서울국제금융센터의 투자‧개발‧운영 계약에서 숱한 의문점이 드러나면서 불이 붙었다.

계약서의 세부 사항들은 서울시가 AIG에게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영문 계약서만을 작성하고 한글 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은 점, 공사기간 중 AIG측에 토지를 무상 제공하고 완공 후에는 공시지가의 1%(법정최저임대료)만 낼 수 있도록 한 점, 임대기간을 최대 99년까지 가능하도록 허용한 점, 외국계 금융기관 유치의무와 관련한 조항을 포함시키지 못한 점 등이 그것이다. 해당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열린 서울시의회 특별위원회 회의에서는 “금융센터보다는 부동산투자사업으로 보인다”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AIG는 지난 2016년 글로벌 투자자산운용사인 브룩필드에 서울 IFC를 매각했다. 당시 언론을 통해 보도된 매각액수가 약 2조5,000억원이었으니, AIG로서는 매각차익만으로 1조원의 이익을 낸 훌륭한 ‘부동산투자사업’인 셈이다. 한편 서울시의회 특별위원회는 서울국제금융센터 건설의 책임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증인으로 채택했으나 ‘행정사무처리 과정에서의 혼선’으로 소환 대신 서면 질의에 그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 무색무취한 서울, 국제금융센터로서의 매력 부족해

영국계 컨설팅 그룹 '지옌'이 최근 국제금융센터지수를 발표하며 함께 공개한 금융중심지별 안정성지수. <그래프=시사위크>

건설 배경과 추진과정상의 의혹들과는 별개로, 이미 지어진 건물인 이상 금융중심지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선 관계기관들이 합심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울시와 정부기관으로 이분화된 정책결정구조는 서울의 경쟁력을 오히려 더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국제금융센터라는 명칭을 달고 있음에도 외국 금융기업·기관에게 외국인투자촉진법에서 규정된 것 이상의 조세특전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의 또 다른 국제금융센터로 지정된 부산(해양·파생금융전문)이 본사나 지역본부를 신설한 외국 금융기관에게 법인세·소득세·취득세를 다년간 전액 면제해주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정 금융 분야에 전문화되지도, 영어활용률이 높지도, 국제화정도가 특출하지도 않은 서울로서는 동아시아 주요 금융지구와 겨룰 무기가 전무하다시피 한 셈이다.

영국계 컨설팅그룹 ‘지옌(Z/YEN)’은 매년 두 차례 세계 국제금융센터의 역량을 평가한 ‘국제금융센터지수(GFCI)’를 발표한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8년 3월 보고서에서 서울은 679포인트를 얻어 세계 27위에 그쳤다(부산 49위). 17년 9월 자료와 비교해 다섯 계단이나 하락한 순위다. 한국이 지역균형발전과 금융허브 육성이라는 두 목표 사이에서 길을 잃은 것은 아닌지 궁금해지는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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