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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세력교체 왜 필요한가⑤] <취재기> 그래도 희망을 보았다
2018. 06. 21 by 정계성·조나리 기자 spot@sisaweek.com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인용 다음날 촛불시민들이 모여 환호하는 모습.

[시사위크=정계성·조나리 기자] 2002년 대학교 2학년 헌법수업을 받을 당시 일이다. 헌법 65조에 규정된 ‘탄핵’ 조문을 배울 때다. 교과서에는 불과 1~2줄 설명돼 있었고 교수님은 “우리 헌법에 대통령 탄핵 규정이 있다”라는 정도로 짧게 언급하고 넘어갔다. 선례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당시에는 믿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헌법 교과서를 폈을 때는 탄핵 부분이 5~6 페이지로 크게 늘어나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이 수록됐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탄핵을 하기 위한 법적 요건 등이 보다 분명해졌다. 대통령 탄핵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게 판례로 확인됐다. 또한 9인의 헌법재판관 중 7~8명을 집권세력이 임명하는데 제도적으로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겨졌다.

그런데 불가능해 보였던 탄핵이 실제로 이뤄졌다. 살아있는 권력을 합법적으로 끌어내리는 일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일이다. 촛불혁명의 힘은 그만큼 위대했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원한다면 완전히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도 가능하지 않을까. 마침 프랑스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이라는 인물이 등장해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취재는 여기서 시작됐다.

돌아오는 답은 실망을 넘어 절망적이었다. 안철수 캠프의 실무를 맡았던 관계자는 고개를 수차례나 가로저었다.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오려면 깃발이 있어야 하고, 깃발을 들 인물도 필요하다. 자금은 필수다. 지금은 깃발도 없고 인물은 더더욱 없다.” 윤여준 전 장관도 “새로운 주도세력이 필요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답은 대동소이 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능하겠나”, “기득권 세력들이 자아도취에 빠져있는데 세대(세력)교체가 되겠나.”

연거푸 회의적인 말들만 돌아오니 ‘이거 큰일 났다’ 싶었다. 하지만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정치이듯 문제 속에서 대안을 찾고자 했다. 사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들의 현실화를 직접 목격해왔다.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1·2차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개최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 정치 또한 조금씩 발전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최요한 시사평론가의 대안은 눈여겨 볼만하다. 일례로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의 차이가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교육의 효과는 더딜 수 있지만, 새로운 시대를 열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의견을 구한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기득권 정치의 폐단을 지적했다. 인재를 유치하는 것도, 제도를 바꾸는 것도 결국 기득권 세력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이 때문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현재도 너무나도 잘나가는 ‘올드보이’들이 당대표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당분간 ‘끼리끼리 해먹는’ 구조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자아도취도 문제지만 밑도 끝도 없는 ‘정신승리’도 새정치를 염원하는 국민들에게 걸림돌이 될 뿐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하기 위한 쇄신안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 ‘탈이념화’, ‘정신과 치료를 포함한 대수술’, ‘민생 우선’ 등 각종 카드가 쏟아지고 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이에 대해 “마치 자기들이 국가기관인양 없어지면 안 되는, 그래서 고장이 나면 고쳐서라도 다시 작동하게 만들어야 하는 존재로 착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보수 정당들의 ‘그래도 우리 아니면 누가’라는 심리는 보수의 가치를 살리는데도, 정당을 살리는데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나아가 새로운 보수 세력의 진입을 가로막는 민폐만 끼칠 뿐이다. 최근 보수 진영 인사들은 각종 인터뷰에서 ‘보수가 망한 게 아니라 보수 정당이 망한 것’이라며 보수 위상 세우기에 고군분투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 내에서는 보수 재건에 대한 논의나 과오에 대한 성찰보단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 따지는 형국이다.

진보도 보수도 밀려드는 변화의 바람을 막을 순 없다. 어떤 결론을 맞을지는 얼마만큼 기득권을 내려놓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적폐청산이라는 시대정신을 실현하는 동시에 진보 정권이 성공하고 보수도 재건하는 길은 더딜 수 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