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말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당시 수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정치·사회·경제 개혁을 촉구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바야흐로 진보의 시대가 열렸다. 색깔론도, 지역론도 도통 먹히지 않고 있다. 운동권 출신의 ‘386세대’들이 정치권 중진 반열에 올라 활약하고 있다. 여전히 국회는 민주세력과 반민주세력의 대결구도에 머물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 ‘녹색당의 파란’이 대변하듯 우리 사회의 의제들은 점점 다양화되고 있다. 시민들은 촛불혁명을 이끌며 개혁을 외쳤지만 정치권은 구시대를 떠나보낼 채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운동권세력을 넘어선 새로운 정치세력의 유입은 기득권 정당 또는 정치의 ‘특권 내려놓기’에 달려있다고 입을 모은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보수정권 9년 동안 신규인사의 진입 차단이 지금의 자유한국당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엄경영 소장 제공>

◇ “정치 신세력, 기존 ‘족보식 정치’와 전혀 다른 그룹”

“민주당은 최대 전성기를 맞은 동시에 위기의 출입구로 걸어가고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지난 대선과 이번 지방선거에 대해 “운동권 세력의 ‘이명박근혜’ 퇴치”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두 번의 승리가 민주당 또는 진보진영의 새로운 세력의 유입을 막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아도취에 빠진 나머지 변화와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엄경영 소장은 “참여정부 말기 한나라당만해도 당 내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었고, 이들이 이명박이라는 정권을 탄생시켰다”면서 “그러나 당시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대선에 당선되고, 이어 박근혜 정부까지 탄생하면서 신진인사의 유입이 끊겼다. 그 결과가 탄핵이라는 사태를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이어 “민주당도 곧 열릴 전당대회에 시민사회계를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새인물 영입을 기획할 수 있겠지만,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면서 “반면 바닥을 친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은 이제라도 새인물 찾기에 주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검증되지 않은 세력은 아무리 혜성같이 등장한 신세력이라고 해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뉴시스>

현 정치권의 주류 세력인 운동권 출신은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대거 발탁돼 현재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앞으로 유입될 정치세력은 운동권이나 기존의 족보식 정치와는 전혀 다른 그룹이기 때문이다. 이는 진보는 물론 보수도 마찬가지인 상황. 이전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력을 유입해야만 한다면 ‘그들은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이 뒤따른다.

이에 대해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전문성이 검증된 30~40대 그룹을 꼽았다. 운동권 출신이면 정치권에 흡수될 수 있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게 이 평론가의 설명이다. 그는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과거 ‘탄돌이’ 탄생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면서 “검증보다는 인물론 중심으로 당선되면서 결국 노무현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 점을 경계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4년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를 등에 업고 17대 총선에서 299명 중 152명을 당선시켰다. 그러나 계파싸움과 분열잡음 등으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맞고 2008년 민주당과 합당을 끝으로 사라졌다. 이 평론가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보수정권에 대한 반감 때문에 역량 평가에 소홀했던 면이 없지 않아 있다”며 “검증되지 않은 세력은 아무리 혜성같이 등장한 신세력이라고 해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덧붙였다.

최요한 시사평론가는 “기존과는 다른 정치세력의 성공을 위해선 지금의 학교 교육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요한 평론가 제공>

◇ 도제적 시스템 바꿔라

제도적인 보완도 시급하다. ‘인물 물갈이’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개혁이라 할 만한 ‘시스템 물갈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즉,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도제식 시스템’에 의한 정치세력의 등장이 수십년 째 지속되고 있다는 것. 특히 구의원이나 시의원, 국회의원 등 각종 선거에 출마해 정치권에 유입되는 방식이 상당히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요한 시사평론가는 “말 안 들으면 공천 안주겠다는 식인데,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위에서 아래로의 대우 형성은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시스템”이라며 “새인물을 영입하면 새정치를 할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패거리 정치만 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 평론가는 과거 ‘안철수 현상’ 또한 같은 맥락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 그는 “안철수 현상은 기존 정치를 거부하고 새정치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시작됐다”면서도 “그러나 이 역시 누군가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라는 위에서 아래로의 민주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에 기존 정치와 차별화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지금과는 다른 정치세력의 성공을 위해선 학교 교육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외국은 16~17세 때부터 정당가입의 자유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일부 진보정당을 제외하곤 학생당원을 받는 시스템 자체가 전무한 실정이다. 최근 청소년의 참정권 보장 요구도 높아지고 있지만, 이마저도 ‘데모하고 있다’는 식으로 치부되고 있다. 정치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교육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팟캐스트 ‘이이제이’ 공동진행자 이종우 박사는 “신인정치인의 지상파 진입의 어려움을 팟캐스트가 보완할 수 있다”면서 “정치 신인 탄생도 불가능하진 않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이종우 박사 제공>

◇ “언론, 기득권층 생사(生死) 아닌 특권에 주목해야”

“제도를 고치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인데, 기득권 세력이 바꾸겠는가. 결국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지적할 수밖엔.”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정치에)입문 자체도 어려울뿐더러, 아무리 맞는 말을 하고 옳은 소리를 해도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 공허한 외침일 뿐.” (팟캐스트 ‘이이제이’ 공동진행자 이종우 박사)

MB정부 말 대안언론으로 떠올랐던 팟캐스트는 시민세력의 지지에 힘입어 대중미디어로 자리 잡았다. 특히 지난 보수정권 동안 진보성향 시민들의 정치적 갈증을 해소하며 영향력을 늘려나갔다. 다만 새로운 정치세력을 창출하기보다는 기존의 기성 정치인들을 통한 ‘정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이에 대해 팟캐스트 ‘이이제이’ 공동진행자인 이종우 박사는 “팟캐스트가 아주 새로운 인물이나 세력을 등판시켰다고 볼 순 없지만 그럼에도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실제로 팟캐스트 출연 후 인지도가 상승하고 선거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느끼는 정치인들이 많다”고 전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언론이 자유한국당의 부활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민주주의 원리에 따르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이 박사는 “물론 팟캐스트 30분 출연하는 것보다 지상파 5분 출연하는 게 더 영향력이 있겠지만, 지상파 출연 자체가 어렵지 않은가”라며 “앞으로도 그런 부분을 팟캐스트가 보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정치 신인 탄생도 불가능하진 않다고 본다”고 희망적인 답변을 내놨다.

기성 언론에 대해서도 프레임 전환을 주문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정치 세대교체는 기성 정당이 가지고 있는 특권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면서 “언론은 특정 정당이 아닌 기성 정당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지금 언론이 자유한국당의 부활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민주주의 원리에 따르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며 “그 정당이 몰락하면 새로운 정당이 나올 것이다. 그 세력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