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기
스페셜뉴스
[정치 세력교체 왜 필요한가②] 안철수, 기존세력과 타협이 실패 원인 
2018. 06. 21 by 정계성 기자 under74@sisaweek.com
안철수 바른미래당 전 대표가 서울시장 낙선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한국 정치사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을 바라는 민심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항상 존재했다. 주로 대선을 앞두고 태동 움직임이 활발했다. 멀리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박찬종 변호사가 있었고, 이인제 한국당 전 최고위원,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후보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지역주의’ ‘양당 기득권’ ‘색깔론’ 등 현실정치에 비판적인 유권자들의 마음을 자극해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었다. 선거에서 중도층이나 스윙보터들의 표심을 상당수 끌어당긴 것도 사실이다. 14대 대선 당시 정주영 후보와 박찬종 후보의 표를 합치면 22.68%였고, 15대 대선에서 이인제 후보는 19.2%를 득표했다. 그러다 16대 대선 이후부터는 ‘신세력’에 대한 민심의 기대감이 점차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새로운 정치세력을 염원하는 민심은 잠복기를 거쳐 18대 대선을 앞두고 폭발했다. 안철수라는 인물이 혜성같이 등장하면서다. 안철수 전 대표는 V3백신 무료배포 등 다양한 활동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갖추고 있었고, 참신함과 청렴한 이미지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신드롬’이라고 불릴 정도의 강한 흐름이었다. 이전의 ‘신세력’들이 기존 정치세력과 직·간접적 관계가 있었던 것과 달리, 안철수 전 대표는 완전히 궤가 다른 ‘새로운’ 인물이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됐다.

지금은 민주당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당시 안 전 대표를 지근거리에서 수행했던 한 보좌관은 이렇게 회상했다. “정치밥을 먹는 사람들은 대중적 인지도를 쌓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안다. 속된 말로 뜨고 싶어서 안달이지만 마음대로 안 된다. 그런데 안철수는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메시아 같은 존재였다. 정치입문의 높은 벽을 실감한 비주류들을 포함해 다양한 사람들이 기대를 가지고 안철수의 깃발 아래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 ‘불신’ ‘혐오’ 등 분노 정치 의존 한계

안철수 당시 원장이 박원순 이사장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한 뒤 서로 포옹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기대감이 컸지만 현 시점을 기준으로 안철수 전 대표는 실패했다. 국민의당 창당 후 19대 대선에 도전했지만 3등에 머물렀다. 시너지를 기대했던 바른정당과의 합당은 효과가 없었고, 야심차게 도전한 서울시장 선거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3위에 그쳤다. 이를 두고 유시민 작가는 “처음 등장한 이후부터 계속 내리막”이라고 평가한다.

안철수 전 대표 개인의 ‘리더십’을 이유로 꼽는 사람이 적지 않다. 휘하에 사람들을 아우르지 못하고 상당수 떠나보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혹자는 ‘CEO 리더십의 특성’이라고도 한다. 과감한 의사결정과 그에 따른 책임은 분명하지만, 동지들을 ‘부하직원’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정치입문 후 보여줬던 행보가 대중들이 기대했던 모습과 다소 달랐던 것도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안 전 대표의 이념적 위치가 ‘정치혐오’에 터를 잡고 있었다는 데 있다. ‘새정치’의 내용에는 국회의원 축소, 세비삭감 등 기존 정치권에 대한 단죄적 성격을 담고 있었다. 국민의당 창당 전후로는 ‘친박 계파주의’ ‘친노 패권주의’ 등 이념보다는 양대정당의 ‘적폐성’을 부각하는데 집중했다.

이는 안 전 대표가 대중에게 주목받은 계기가 이명박 정권 말기 국민의 정치불신과 혐오가 극대화된 시기였던 것과 무관치 않다. 기존 정치와 다른 전략적 대안세력으로 필요했다. 하지만 새 시대를 여는 데에는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했다. 지금 시대는 더 이상 ‘혐오’와 ‘외면’이 아닌,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갈 정도로 정치가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는 긍정적 관심으로 이미 전환됐다.

안 전 대표의 멘토로 통했던 윤여준 전 장관은 “한때는 안철수 현상이라고까지 얘기했다. 자연인 이름 석자 밑에 ‘현상’이 붙었던 게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라며 “열화와 같은 현상이었고 그만큼 국민들이 목말랐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작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국가경영의 비전과 같은 알맹이는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제3세력 혹은 새로운 세력이라는 것이 단순히 민주당과 한국당의 중간에 있는 3당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라며 “새로운 주도세력이 출현할 정치적 상황은 조성됐다. 지금은 깃발도 사람도 보이지 않지만, 상황이 조성되면 부흥하려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다. 안철수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진 정치세력이 등장할 수 있는 터는 마련된 셈이다. 이미 촛불혁명을 통해 이 나라의 정치주도권은 시민에게 넘어갔고, 시민들의 기대에 부흥할 수 있는 세력이 등장하면 얼마든지 주류 정치세력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안철수 전 대표는 이 틈을 노려 신진세력으로 부상했지만, 더 큰 신진세력을 모으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주류로 부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