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의 자유’ 점심, 어떻게 보내십니까?

학교 뿐 아니라 군대에서 보내는 하루 일과 중 가장 기대되는 시간을 꼽으라면 십중팔구는 바로 점심시간을 꼽을 것이다. 이는 사회에 나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어엿한 사회구성원인 직장인이 돼서도 점심시간을 ‘회사 생활의 유일한 낙’으로 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직장인들에게 주어진 ‘1시간의 자유’는 직장생활의 꽃이자 사막 한 가운데 오아시스 같다. 꿀맛 같은 점심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다양화다. 이에 <시사위크>는 요즘 직장인들의 이색 점심 풍토를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보는 건 덤이다. <편집자 주>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본지는 네 차례 걸쳐 오늘날 직장인들의 점심 문화를 살펴보는 자리를 가졌다. 시리즈 기획을 위해 며칠 간 점심때마다 종각 일대를 거닐었던 기자에게 남은 뚜렷한 인상 중 하나는 점심시간 모두가 행복해보였다는 거다. 잠시 업무에서 벗어나 삼삼오오 모여 동료들과 수다를 떠는 종각 일대 직장인들을 모습은 기자로 하여금 ‘인간은 자유다. 인간은 자유 그 자체다’라는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이 절로 생각나게 했다.

◇ 점심 1만원 시대… 5,000원 밥 찾아 삼만리

직장인들은 저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1시간의 자유’를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었다. 대부분이 점심 고유의 ‘업무’인 끼니를 해결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는데, 혹자는 구내식당으로 혹자는 근처 식당과 편의점으로 향했다. 하지만 장소는 달라도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바로 경제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점심 1만원’ 시대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이 군데군데에서 목격 됐다.

점심시간 저렴한 가격의 밥을 찾아 근처 식당과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모습에서 월급보다 큰폭으로 오른 물가상승에 부담을 느낄 수 있는 직장인들의 고충이 느껴진다. <뉴시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직장인은 “점심으로 지출금액은 7,000원을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다. 그 이상 넘어가면서 부담스럽다. 맛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커피도 누가 사줄 때만 먹는 편이지 굳이 마시려고 애쓰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직장인들의 고충을 알기라도 하듯 꽤나 가격이 나갈법한 식당들도 6,000~8,000원대의 점심 특선을 마련해 놓고 손님 끌기에 나서고 있었다.

한 취업 포탈 조사 결과 구내식당 이용객만이 전년 대비 늘었다는 점도 점심값이 직장인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밥이 곧 복지’라는 명제를 실현시키려는 듯, 기업들도 구색과 맛을 겸비한 구매식당을 갖추고 직원들의 부담을 덜어주려 애쓰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생활물가가 빠르게 오르고 있는 반면 월급은 물가상승률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 세금, 보험, 경조사비 등이 포함된 비소비지출까지 늘어나고 있어 근로자들이 체감하는 물가 상승률은 더 클 것”이라며 “점심 한끼가 1만원을 호가하는 지금, 그 절반 가격인 5,000원 수준의 밥을 찾아가는 건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낮잠 카페의 등장과 점심 시간에도 학원을 찾는 직장인들의 모습에서 '피로사회'와 '무한경쟁'으로 대변되는 한국 사회의 이면을 엿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픽사베이>

◇ ‘피로‧경쟁‧노력’이 부른 오늘날의 점심 문화

점심 풍경은 물가 부담 뿐 아니라, 한국이 상당한 피로감에 젖어있음을 보여준다.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긴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의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을 밥을 먹는데 만 할애하지 않고 있다. 아직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그리 역사가 길지 않은 ‘낮잠 카페’가 확산되고 있다는 건 상당한 의미를 담고 있다. 점심시간 스크린야구장이나 레트로 게임장을 찾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는 최근 추세도 과도한 업무에서 잠시 벗어나려는 직장인들의 노고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반대로 점심시간마저 미래를 설계하는 데 투자하는 직장인들은 무한경쟁으로 대변되는 한국 특유의 ‘노력 문화’를 보여줬다. 30~50대가 어학도서와 학습지 시장의 핵심 고객층임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확인했을 때 썩 유쾌한 기분이 들지 않는 건 비단 기자만은 아닐 것이다. 심리전문가의 말대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입시와 입사 경쟁을 거치면서 노력이 체내화 된 현대인들을 점심시간에도 학원으로 내몰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 되새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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