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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뉴스
‘1시간의 자유’ 점심, 어떻게 보내십니까
[2018 직장인 점심 보고서③] ‘열공’에 빠진 샐러던트
2018. 07. 04 by 범찬희 기자 nchck@naver.com
학교 뿐 아니라 군대에서 보내는 하루 일과 중 가장 기대되는 시간을 꼽으라면 십중팔구는 바로 점심시간을 꼽을 것이다. 이는 사회에 나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어엿한 사회구성원인 직장인이 돼서도 점심시간을 ‘회사 생활의 유일한 낙’으로 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직장인들에게 주어진 ‘1시간의 자유’는 직장생활의 꽃이자 사막 한 가운데 오아시스 같다. 꿀맛 같은 점심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다양화다. 이에 <시사위크>는 요즘 직장인들의 이색 점심 풍토를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보는 건 덤이다. <편집자 주>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점심시간을 쪼개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직장인도 증가 추세다. 직장인(샐러리맨)과 학생(스튜던트)을 더한 ‘샐러던트’라는 단어가 더 이상 신조어 축에도 끼지 못할 만큼, 공부하는 직장인을 주변에서 보는 건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게 됐다.

◇ “쩐 피아오량”… 직장인 10명 7명 ‘자기계발 중’

취업포탈 잡코리아가 지난달 남녀직장인 661명을 대상으로 ‘자기계발 현황’에 대한 설문조사결과 직장인 10명 중 7명(67.8%) 가량이 ‘자기계발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 동일하게 이뤄진 조사 결과(56.0%) 보다 11.8%p 증가한 수준. 특히 조직의 중간관리자 위치에 놓여있는 과·차장급이 주로 분포돼 있는 40대의 29% 가량이 점심시간에 자기계발을 한다고 말해 아침시간보다 높은 비중을 보였다.

서울의 한 대형서점 어학 서적 코너에 제2외국어 서적이 가득하다. <시사위크>

이 같은 분위기는 현장에서도 느낄 수 있다. 서울 종각역 인근에 위치한 S일본어 학원 관계자는 “일본어와 중국어 모두 커리큘럼 별로 점심시간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기는 힘들지만, 예전에 ‘아침형 인간’이나 ‘얼리버드’ 바람이 불 때보다는 확실히 런치타임 직장인 수강생들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평일 점심시간에 맞춰 방문한 이 학원 2층 복도에는 일본어와 중국어가 뒤섞인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었다. 클래스마다 5~6명의 수강생들이 ‘열공’중이었는데, 절반가량이 와이셔츠와 구두 차림의 직장인이다. 이 학원 관계자는 “연차나 회식이 많은 금요일이라 월~목요일 점심 때 보다 출석률이 저조한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오프라인 풍경은 샐러던트의 현주소를 체감하는 데 충분하지 못하다. 앞서의 조사에서 공부 방법으로 ‘독학(50.9%)’과 ‘온라인 동영상 강의 수강(45.5%)’을 택한 비중이 보여주듯,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샐러던트들이 사회 곳곳에 분포해 있다.

어린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학습지 업계에서 최근 성인들이 주요 고객층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현상도 이와 맥이 닿아 있는데, 구몬의 지난해 성인 회원 수는 5만5,000여명으로 4년 전에 비해 200%의 증가율을 보였다.

지난 3일 서울 종각의 한 외국어 전문 학원에 양복을 착용한 직장인이 들어가고 있다. <시사위크>

대형서점의 어학 분야에서도 직장인 연령층의 영향력은 점차 늘고 있다. 지난 4년 사이 대학생과 취준생이 주로 분포해 있는 20~30대 비중이 줄어든 반면, 30~50대 비중은 증가하고 있다. 2013년 교보문고 외국어 분야에서 44.37%의 비중을 보이던 20~30대 비중은 올해 35.64%도 감소했다. 그사이 30~40대 비중은 24.14%에서 25.91%로 늘었다. 40~50대의 비중도 같은 기간 18.71%에서 20.94%로 증가했다.

샐러던트 현상은 입시 경쟁을 거치며 ‘노력 과잉’ 시대를 살아온 어른들의 초화상이라는 점에서 달갑지만은 않은 일이다. 직장인이 돼서도 공부하지 않으면 회사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불안감이 직장인들의 발길을 학원으로 서점으로 이끌고 있다는 진단이다. 특정 업종과 해외영업 같은 부서를 제외하면 적잖은 직장인들이 ‘영어 쓸 일이 없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을 되새겨 보면, 자기계발은 자기위안의 또 다른 이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서수연 성신연대 교수(임상심리전문가)는 “심리학에서는 ‘존재’와 ‘행위’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 둘은 적절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며 “하지만 현대인들에게는 휴식을 취하며 ‘있는 그대로(존재)’를 즐기기 보다는 ‘뭔가를 해야만 한다(행위)’는 부분이 강조돼 둘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