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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말하다
[한국 성소수자 인권 '12점'⑥] 함께 어울리는 사회 어떻게 만들까
2018. 07. 25 by 현우진 기자 hwjin0216@naver.com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피켓을 번쩍 든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성소수자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가장 바람직하고 궁극적인 해결책은 사회 전반의 다양성과 포용성이 제고되는 것이다. 진보적인 교육과 사회의 개방성을 높이는 문화들이 이것을 도와줄 수 있다. 주요 선진국의 성소수자 인권보장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국제적 흐름도 한국에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인 방법도 있다. 제도를 만들고 집행하는 입법부와 행정부, 그리고 사법부가 논의를 주도한다면 차별 없는 사회의 도래를 수십, 수백 년 앞당길 수 있다. 좋은 법과 정책은 국민인식을 개선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사회적 인정이 필요하지 않은, 행정절차와 관련된 규정을 개정함으로서 성소수자들이 정당한 법적 지위를 부여받도록 도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 시급하게 필요한 성소수자 인권 관련 법제도에는 무엇이 있을까.

◇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현재 한국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차별 전반을 금지하는 포괄적 인권법이 없다. 2001년 제정된 국가인권위원회법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며, 장애인차별금지법과 비정규직차별금지법 등 개별요인들에 대한 차별금지법이 소수 존재한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이 규정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고용·교육상의 불이익과 성희롱이 포함된다. 그러나 인권침해구제와 차별구제, 그리고 교육·홍보가 주된 역할인 국가인권위원회가 가지는 권한은 제한적이다. 시정권고 정도로는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성소수자 차별 사태들을 감당할 수 없다. 보다 적극적으로 인권침해 행위를 ‘금지’할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한 이유다.

국회에서는 2007년을 시작으로 세 차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차별금지 사유에 성적 지향을 포함한 것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적 지향을 차별금지 사유로 두지 않은 차별금지법은 역으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조장하는 효과를 가진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행위가 분명히 실재하는 이상, 차별금지 사유에 성적 지향이 포함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 명확하고 완화된 성별정정요건

한국에는 아직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요건에 대한 명확한 요건이 없으며, 때때로 기준으로 활용되는 대법원 예규에는 구시대적인 부분이 많다. <픽사베이>

트랜스젠더가 행정·사법적으로 자신의 성별이 바뀌었다는 인정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한국에는 아직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2006년에 만들어진 대법원 예규, 그리고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린 판례들이 있을 뿐이다.

일관성 있는 법체계의 부재는 트랜스젠더들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은 물론, 성별정정 신청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만든다. 실제로 법원이 성별정정 신청자에게 성기 사진을 제출하라고 요구하거나 직접 수술부위를 검사하겠다고 나선 사례들이 있다. SOGI법정책연구회는 2015년 발표한 트랜스젠더 인권현황 자료에서 “판사의 재량에 따라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허가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판사들이 자의적으로 자료를 제출하라고 명령하거나 모욕적인 질문을 요구하더라도 신청인이 제대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성별정정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한 법 조항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성별정정 허가를 받기 위한 필요요건으로 무엇을 설정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다. 2006년 대법원이 처음으로 트랜스젠더의 호적상 성별정정을 허가했을 때 제시했던 근거를 지금 재활용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당시 대법원은 ‘성기를 포함한 신체’라는 표현을 사용해 신청자가 성기성형수술을 받았음을 강조했고, 지난 2018년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사인분류에서 삭제된 성전환증(transsexualism)이라는 용어도 사용했다. 또한 신청자의 성별을 정정하더라도 사회의 인정과 대인관계에 중대한 변동이 없다고 밝힌 부분도 개인의 권리보다 가족 또는 공동체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해외 국가들은 점점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요건을 완화하는 추세다. 스웨덴은 지난 2013년 트랜스젠더의 불임수술 의무 규정을 폐지했고,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단순히 당국에 통보하는 것만으로 성별을 정정할 수 있다.

◇ 동성결혼 합법화

작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것에 환호하는 시민들. <뉴시스/AP>

아무리 1인가구가 늘어나고 비혼주의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결혼제도에는 여전히 많은 장점들이 따라다닌다. 가족공동체가 가져다주는 정서적 안정은 물론 부부 또는 자녀를 둔 가족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편의, 그리고 상속을 비롯한 금전관계까지 범위도 다양하다.

‘동성애를 합법화 한다’는 것은 동성 연인들을 구금하거나 사회적 지위를 박탈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동성결혼을 합법화 한다’는 것은 동성 연인들이 법적으로 인정받는 혼인제도의 당사자가 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한 부가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까지 열어준다는 뜻이다. 전자를 소극적 자유, 후자를 적극적 자유라고 부를 수도 있다.

처벌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법적으로 보장되는 배우자의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까지가 국가의 역할이다. 동성결혼의 합법화는 한국사회가 동성애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방법이며, 다른 많은 성소수자들의 권리도 보장하기 위한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