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사무실에서 만난 장서연 변호사. <시사위크>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서울시 종로구, 붉은색 외벽이 정감 가는 북촌창우극장 건물에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사무실이 있다. 여성과 장애인·난민·노동취약계층 등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보장을 지향하는 공익변호사단체 공감은 물론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더운 여름날 창덕궁 담벼락을 따라 걸어 도착한 공감의 사무실에서 장서연 변호사를 만나 성소수자를 둘러싼 국내 법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인권선진국이라면 거의 모두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갖고 있지만, 한국은 아니다. UN에서 제정을 권고하기도 했으나 아직까지 법제화되지 못했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드는데 얼마나 저항이 큰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데 대중적인 반대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기보다는 특정 종교 세력들이 차별금지법에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2007년에 참여정부에서 차별금지법 발의를 대선공약으로 제시했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몇 년간 연구한 끝에 입법예고를 공고했는데 보수 개신교계에서 차별금지 사유에 성적 지향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반대했다. 당시 항의가 심해지자 성적 지향을 포함한 7개 차별금지 사유를 빼고 법안을 발의하려고 했는데, 이것은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차별을 조장하는 법이 될 수 있다.

한국갤럽의 설문조사에서 성소수자, 정확하게는 동성애자들이 직장에서 차별받는 것에 반대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80% 가까이 된다. 동성애자가 직장에서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응답이 80~90%에 달했다. 동성애자들이 받는 차별에 대해 반대하는 인식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직까지는 개신교계가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기득권이고 조직돼있고 정치적인 영향력도 행사한다.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은 명시적으로 찬성하거나 반대하지 않고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같은 경우는 사실 저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도 그렇고, 선거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정의당은 지난 대선이나 이번 지방선거에서 차별금지법이나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성애자 차별이 옳지 않다는 인식은 높지만,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찬성률은 낮다. 설령 동성결혼 합법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자가 당선된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입법을 진행할 수 있을까.

“사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세대차이가 많이 나타난다. 젊은 연령대에서는 동성결혼에 대한 찬성률이 높지만 50대, 60대에서는 굉장히 낮다.

동성애자나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인식은 교육을 통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만 같은 경우에는 성 평등 교육법이 1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대만의 한 학교에서 한 남학생이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집단 괴롭힘을 당하다가 학교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된 것이 배경이었다. 대만 사회는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성 평등 교육법을 제정하고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 대만의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각 학교에 가서 교육을 하기도 했다.

최근 대만 법원은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헌법의 평등권에 반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과거에는 동성결혼을 찬성하는 비율이 절반이 채 안됐는데 지금은 50%를 넘는다. 대만 활동가들은 이에 대해 성 평등 교육법 제정 이후 실행된 관련 교육의 영향이 크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에서도 입법뿐 아니라 교육 영역에서 성 평등, 성소수자 인권을 교육하고 이로 인해 문화가 변화한다면 국민들의 인식도 빨리 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성결혼은 한국만의 이슈가 아니라 국외적으로 한국과 교류하는 많은 나라의 이슈다. 앞으로 국제결혼도 많이 늘어날 텐데, 한국만 동성결혼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여러 가지 법적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동성결혼 합법화를 반대하는 측에서 드는 근거가 ‘국민정서’다.

"인권과 평등은 다수결 원칙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헌법상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평등과 정의의 관점에 맞느냐가 중심이 돼야 한다. 입법적으로 어렵다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해줘야 하는 일이다. 대만도 그랬고 미국 연방대법원도 그랬다. 사법부에서 소수자인권을 보장하는 취지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해외 다수 국가들은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기 전에 시민결합 제도를 운영한 바 있다. 한국에서도 동성결혼 합법화의 중간단계로 시민결합 제도가 이용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생활동반자법이라는 이름의 법안을 연구하고 입법하려고 한 바가 있다. 결혼과 다르게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계약이라는 성격을 가지며, 동성뿐 아니라 이성 간에도 가능하다. 다만 아직 언제 발의될지 가시적으로 말할 단계는 아니다.”

동성애자 군인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한 군형법 92조 6항을 폐지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뉴시스>

-동성애자 군인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한 군형법 92조 6항, 일명 ‘추행죄’에 대해선 많은 논란이 있다.

“추행은 성폭력과는 다르다. 강제성을 갖고 있는 강간이나 강제 추행은 성폭력처벌조항으로 처벌이 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추행에 의하면 강제성이 없는, 성인 간 합의에 의한 성행위도 동성 간이라는 이유로 처벌할 수 있다.

법률이 이상하게 개정이 됐다. 예전에는 ‘계간이나 그 밖의 추행’을 금지했는데, 계간이 남성 간 성행위를 비하하는 용어라고 해서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으로 바뀌었다. 항문성교는 꼭 남성 간에서만이 아니라 이성 간에서도 이뤄질 수 있다. 그러면 이성 간에 항문성교를 했을 때 처벌할 수 있는가? 실무적으로도 연역적으로도 그렇지 않다. 사실상 남성 동성애자들만 처벌하는 조항이다. 여성 간에 합의된 성관계의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데 추행죄라는 이름으로 남성 간 성행위만 처벌하는 것은 우선 평등권 침해다.

군형법 92조 6항에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가 또 있다. 형사처벌이 가능하려면 우선 그 법이 명확해야 한다. 이것이 죄형 법정주의다. 어떤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구속요건이 명확해야하는데 이 조항은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처벌할 수 있는지, 혹은 장소가 영내인지 영외인지에 관계없이 처벌할 수 있는지 불명확하다. ‘추행’이라는 단어의 뜻이 ‘추한 행위’인데, 무엇이 추한 행위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 항문성교 자체도 형사처벌해야 하는 행위라고 인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실제로 헌법재판소에서도 이 조항이 명확성의 원칙(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는 소수의견이 있었다.

현재 군형법 92조 6항에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제청해서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법안이 있다. 취지는 앞서 말한 것처럼 죄형 법정주의와 명확성의 원칙, 동성애자 남성 군인들의 평등권, 그리고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헌법재판소에서 세 번 합헌 결정이 났지만 네 번째는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이번에는 결과가 다를 것이라고 보나.

“그렇다. 양심적 병역거부 같은 경우에도 (대체복무 없는 병역법 규정이) 계속해서 합헌 결정을 받다가 최근에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졌다. 점점 소수자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한국의 트랜스젠더 인권보장 문제는 어떤가.

“2006년에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을 허가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실무적으로는 성별을 정정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요구된다. 정신과 전문의 두 명의 진단, 생식능력이 없을 것, 일반적으로 성전환수술이라고 부르는 성기성형수술을 받았을 것, 그리고 미성년자가 아닐 것 등이다. 2011년에 법원에서 미성년자 자녀가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하나 더 만들었다.

대법원 예규는 법률이 아니기 때문에 판사의 재량으로 트랜스젠더에게 성별정정 허가를 내 주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2013년에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성기성형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 남성(태어날 때는 여성으로 성별이 지정)에게 성별정정을 허가한 사건이 있다. 성기성형수술이 아직 의료적으로 발달하지 않았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이것을 의무화하는 것 자체가 트랜스젠더들에게 가혹하다는 이유였다. 물론 본인이 수술을 원하지 않기도 했다. 다만 대법원 예규가 하나의 기준이 되다 보니까 앞서 언급했던 (굉장히 엄격한) 조건들이 자주 요구되고 있다.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 같은 경우 2011년에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기준으로 생식능력 제거수술(성전환수술 등)을 의무화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신체의 완전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냈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도 외과수술을 강요하는 것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외국에서는 점점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요건을 완화하는 추세다.

예전에는 트랜스젠더가 성 정체성 장애라는 이름으로 정신질환목록에 올라가있었다. 이제는 성별위화감, 또는 성별불일치로 건강상태항목에 포함돼있다. 더 이상 트랜스젠더를 정신질환의 문제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이들의 자기결정권을 위해 성별정정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한국의 성별정정의 장벽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