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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말하다
[한국 성소수자 인권 '12점'②] 인권선진국서 성소수자가 살아가는 법
2018. 07. 25 by 현우진 기자 hwjin0216@naver.com
올해 여름 결혼식을 올리는 아이버 마운트배튼 경(왼쪽)과 제임스 코일(오른쪽). <인디펜던트 온라인>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해리 왕자와 매건 마클의 결혼식이 열린지 한 달이 지난 6월 19일(현지시각), 영국 왕실에서는 또 다른 ‘세기의 결혼식’이 공표됐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먼 친척인 아이버 마운트배튼 경이 같은 남성인 제임스 코일과 오는 여름에 결혼한다는 소식이다. 영국 왕실 역사상 첫 번째 동성결혼이자 잉글랜드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지 4년 3개월만의 일이다. 결혼식에는 마운트배튼 경의 전 부인과 세 딸을 포함한 120명이 초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54년 전 영국에서는 동성애 혐의로 화학적 거세를 받은 앨런 튜닝이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깨물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국은 1861년까지 동성애자를 사형할 수 있다는 법률을 유지했으며, 마지막 교수형은 1835년에 집행됐다. 그러나 오늘날 마운트배튼 경은 자신의 전 부인과 세 딸, 그리고 다른 하객 120명의 축복 속에서 동성 애인과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는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에서 “요즘 사람들은 (동성결혼에 대해) ‘그게 뭐 대수야?’라고 말하지만, 내가 자란 시대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동성애자는 모욕적인 대우를 받았고 대부분의 게이들은 이성애자인 척했다. 사람들의 태도가 바뀐 것은 감사할 만한 일이다”고 심경을 밝혔다.

◇ 동성애 차별금지법의 초석을 놓은 ‘울펜던 보고서’와 나폴레옹 법전

오늘날에는 전 세계적으로 약 70여개 국가가 성적 지향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가지고 있다. 가입 요건으로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규정하는 유럽연합과 오세아니아‧남아메리카, 그리고 캐나다와 미국의 일부 주가 포함된다. 한때 세계 곳곳의 식민지에 자신들의 문화를 이식하면서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법률까지 전달했다는 비난을 받았던 영국도 물론 그 중 하나다. 영국은 1967년에 동성애 처벌법을 폐지했으며 2005년에는 동성 커플의 시민결합을 허용했다. 그리고 2014년 3월부터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같은 해 12월에는 스코틀랜드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국가가 처벌할 수 있는 대상이었던 성 정체성이 개인의 영역으로 돌아간 데는 지식인계층의 역할이 컸다. ‘영국 의회와 동성결혼 논쟁’ 논문(저자 정희라, 2016년 9월)에 따르면 영국이 1967년 동성애 처벌법을 폐지하는 계기를 만든 것은 1957년 발표된 ‘울펜던 위원회’의 보고서다. 동성애의 형사처벌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존 울펜던 경을 중심으로 위원회는 이 보고서에서 동성애를 범죄 혹은 질병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으며, 공리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의 지지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스톤월‧아웃레이지 등의 LGBT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면서 영국사회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제고한 것은 1980~90년대 들어서부터다.

유럽 대륙은 청교도 윤리가 오랫동안 위세를 떨쳤던 영국보다 더 빨리 성소수자 사회를 포용하고 나섰다. 네덜란드(2001년)가 세계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으며 벨기에(2003년)와 스페인(2005년), 노르웨이‧스웨덴 등의 북유럽 국가들이 그 뒤를 이었다. 동성애자 처벌을 금지한 나폴레옹 법전의 영향, 그리고 유럽 대륙에서 종교의 위세가 점차 약해진 결과다. 대륙 국가를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은 영국에서 2000년대 들어 동성애자를 위한 법률이 급진전되는데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 시민사회로 넘어간 발언대

사상가와 엘리트 관료들이 논의를 주도했던 20세기와 달리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영감을 줄 수 있는 개개인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성소수자 사회에 대한 지지발언, 또는 커밍아웃이 문화예술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세계 곳곳에서는 기업가나 정치인, 왕족, 스포츠선수들이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수많은 SNS 팔로워를 가졌으며, 일거수일투족이 뉴스로 보도되는 유명인사들의 발언은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미국 시민이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지지하는 기업을 보이콧하고 싶다면 그는 아이폰도 윈도우도 쓸 수 없으며, 청바지나 신발을 사는 데도 애를 먹을 것이다. 허핑턴포스트는 지난 2015년 동성결혼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미국 기업 379곳을 발표했다. 이 긴 목록에는 애플을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나이키‧리바이스‧JP모건‧오피스디포‧디즈니 등 유명 기업들과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의 스포츠구단들이 이름을 올렸다.

애플의 CEO 팀 쿡은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애플을 비롯한 미국의 많은 기업들은 LGBT 권익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뉴시스/AP>

지난 2014년 애플의 CEO 팀 쿡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는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에 실은 기고문에서 “애플의 CEO가 게이라는 소식이 고통 받는 누군가를 돕거나 혼자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해줄 수 있다면, 또는 사람들에게 평등을 외칠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다면 내 사적인 영역을 공개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커밍아웃의 이유를 밝혔다. 노르웨이 국왕 하랄드 5세는 “소녀를 사랑하는 소녀들, 소년을 사랑하는 소년들, 서로를 사랑하는 소년과 소녀들이 모두 노르웨이인이다”고 연설했으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우리의 대통령’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LGBT 잡지 표지모델로 등장했다.

◇ 가야 할 길은 아직 많다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과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서 커밍아웃은 사회적 죽음과 동일시된다. 몇몇 이슬람 국가에서는 물리적인 죽음도 가능하다. 여기에 비하면 교회가 동성 연인의 결혼을 축복하는 영국, 그리고 정치 지도자와 유명 기업가들이 성소수자 단체를 후원하는 많은 나라들은 분명히 인권선진국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 모든 발전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의 인권이 완벽하게 보호되는 나라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SOGI 법정책연구회가 발간한 ‘한국 LGBT 인권현황’ 보고서에서 몰타(91.04%)를 제외하면 80% 이상의 ‘무지개지수’(성소수자 인권지수)를 받은 유럽 국가는 하나도 없다. 반면 20% 이하인 국가는 13곳이나 된다. 인권선진국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가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것은 불과 5년 전의 일이다.

무지개지수 75.73%의 영국에서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영국 평등청이 3일(현지시각) 발간한 ‘전국 LGBT 설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소수자의 68%가 대중의 부정적 반응에 대한 공포 때문에 공공장소에서 동성 연인의 손을 잡지 못하며, 59%의 트랜스 여성과 56%의 트랜스 남성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하길 두려워한다.

‘LGBT’라는 이름으로 함께 묶여있을 뿐, 상대적으로 다수인 동성애자‧양성애자에 비해 트랜스젠더의 인권 문제도 여전히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8월 성전환자의 군 복무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밝혔으며, 올해 3월에는 ‘한정된 경우를 제외하고’라는 조건을 붙여 해당 방침을 재확인했다. 한편 핀란드와 스위스, 동구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여전히 트랜스젠더에게 불임수술을 의무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