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대중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 내는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性)인지’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 영화 속 현실은 ‘반쪽짜리’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 혐오’와 ‘성불평등’을 부추기고 있는 듯하다. 양성평등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에 대한 열망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한국 영화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영화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편집자 주>

 

영화평론가 심영섭 교수는 한국 영화 속 성(性) 비율이 균형감을 갖기 위해 여성 감독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영섭 교수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평론가 심영섭 교수는 한국 영화 속 성(性) 비율이 균형감을 갖기 위해 여성 감독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삶 안에서 겪은 서사들을 통해 여성들의 ‘진짜’ 이야기를 담아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심영섭 교수는 최근 진행한 <시사위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여배우 기근’ 현상의 원인에 대해 “남성 중심적인 서사가 더 많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여배우 기근이라기보다 여성 캐릭터가 부족하고, 남성 중심적인 서사가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에서 활약하는 여배우들은 많다. 반면 영화만 전담하는 여성들이 적다. 하지만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마땅한 캐릭터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국 영화 중 벡델테스트에 통과한 작품들도 매우 적다.”

벡델테스트란 1985년 미국의 여성 만화가 엘리슨 벡델이 남성 중심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계량하기 위해 고안한 영화 성 평등 테스트로 ▲이름을 가진 여자가 두 명 이상 나올 것 ▲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 ▲대화 내용에 남자와 관련된 것이 아닌 다른 내용이 있을 것 등의 세 가지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실제 <시사위크>가 분석한 결과 2017년 개봉한 한국 상업 영화 중 흥행 성적 상위 25편에서 벡델테스트를 통과한 작품은 단 5편에 불과했다. ‘군함도’, ‘아이 캔 스피크’, ‘특별시민’, ‘장산범’, ‘악녀’가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다.

심 교수는 스크린 속 남성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에 대한 원인으로 “만드는 사람이 남성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만드는 사람이 남성들이고 그들이 갖고 있는 장르 자체가 역사물, 스릴러, 액션 이런 것들이다. 이러한 장르 안에서 여성들이 갖고 있는 매력이나 여성 중심의 서사는 그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서사가 아닌 거다. 여성을 그리더라도 피상적으로 그려내는 영화들이 많다. 여성의 삶이 아닌 (특정 영화 속) 액션 여성으로서의 모습 말이다. 여성 감독들도 여성의 삶을 잘 그려내지 않는다. 그런 영화들이 굉장히 드물다.”

특히 심 교수는 영화 속에서 구현되고 있는 성평등 실태가 현실에서 진행되는 여성 평등 운동보다 훨씬 더 뒤처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스크린 속 묘사되는 여성 캐릭터들이 모습이 ‘여성 혐오적’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여성 혐오적인 부분이 되게 많다. ‘브이아이피’(V.I.P.)가 대표적이었다.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다. 그런 식의 재현이 과연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을 품어야 한다. 여성에 대한 폭행, 성폭행, 납치 등 이런 것들이 적나라하고, 필요이상으로 재현된다. 그 안에서 남성들이 갖고 있는 정서를 추동하는 역할을 하는 거다. ‘청년경찰’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수난이나 범죄 피해자로서의 여성이 결국 남성 주인공에게 강렬한 정서적인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도구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2월 발표한 ‘소수자 영화정책 연구’ 보고서에는 여성 감독의 부재가 여성 캐릭터의 부재로 연결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영국 감독조합에서 2016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에서 경력을 성공적으로 쌓아온 여성 감독들은 대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여성 관점에서 서사를 풀어가는 경향이 크지만, 남성 감독들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 심영섭 교수도 여배우 기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대안으로 여성 감독들의 활발한 활약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성 감독들이 자신의 삶 안에 있었던 서사들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멋진 여성 영웅담도 있을 수 있고 다양한 시도들이 나올 수 있다. ‘브로맨스’가 있다면 ‘워맨스’의 긴장감도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또 여성 연대도 있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 아닌 서로 연대하고 지지해주는 모습들을 담아야 한다.”

또 여성 배우들이 활약할 만한 멜로 장르를 살리기 위한 시도들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멜로나 로맨틱 장르가 많이 쇠퇴했다. 여성 캐릭터 부재의 이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요즘 관객들은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TV에서만 보고 영화관에서는 안 본다. 이런 것들을 되살릴 수 있는 시도들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장르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건축학개론’과 같은 멋진 멜로들을 시도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심 교수는 “SNS에서 보면 여성 관객들이 많이 깨어있다”며 “‘허스토리’ 같이 여성 중심 서사를 다룬 영화들을 소개하고 또 좋은 여성 캐릭터에 대해 논의한다. SNS 상에서 활발한 의견 교환이 있다. 그런 것들을 반영하는 영화들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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