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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엔 왜 #여배우가 없을까⑤] 오기환 감독 “여성, 영화산업 자체의 주인공 돼야”
2018. 07. 31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대부분의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대중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 내는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性)인지’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 영화 속 현실은 ‘반쪽짜리’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 혐오’와 ‘성불평등’을 부추기고 있는 듯하다. 양성평등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에 대한 열망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한국 영화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영화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편집자 주>

 

오기환 감독이 한국 영화 산업의 발전을 위해 여성 영화인들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오기환 감독은 한국 영화 산업의 발전을 위해 여성 영화인들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여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많이 만들어내기보다는 영화 산업 자체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오 감독은 영화계 성(性)평등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현재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 주관하고 영화진흥위원회와 여성영화인 모임이 주최하는 ‘2018년 영화산업 내 성폭력 예방 교육 2기 강사 양성과정’을 수강 중이다. 최근 불거진 몇몇의 영화계 성추문 사례를 보면서 시대에 맞는 젠더 감수성을 보유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자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사위크>는 오기환 감독과 서면 인터뷰를 통해 ‘여배우 기근’ 현상의 원인과 대안 등을 짚어봤다.

- 스크린 속 ‘여배우 기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배우 기근이라기보다 여배우가 주인공인 영화들의 숫자가 부족하다 보니 그런 평가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영화 분야를 벗어나 드라마 쪽을 살펴보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손예진,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박민영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영상 분야 전체를 봤을 때는 여배우 숫자가 남자배우에 비해 많이 모자라지 않는 상황이지만 드라마 여주인공에 비해 영화 분야의 여자 주인공 캐릭터 숫자가 적기 때문에 스크린 속 남녀 배우 성비가 불균형하다고 느껴지는 것 같다.”

- 한국 영화 속 남성 쏠림 현상에 대한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영화 산업 내에서 통용되는 영화 장르가 변하고 있다 또는 상업적 가치를 띠는 영화 서사가 변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모 학회의 요청에 의해 최근 10년간 한국 영화 흥행 작품의 서사 장르 변화를 살펴본 적이 있다. 그 결과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 해에 서너 편씩 상위 흥행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멜로 영화가 최근에는 거의 사라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는 2012년 개봉한 ‘건축학 개론’ 이후 멜로 영화를 극장에서 본 기억이 거의 없을 거다. 이것이 현재 드라마 분야에서 여배우들이 생생한 활약을 보이고 영화 분야에서는 여배우들의 존재가 거의 보이지 않는 이유일 수 있겠다. (여배우들이 활약할 만한) 멜로 장르가 드라마 분야에서는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 여배우가 주연인 작품들이 남성 중심 서사의 영화들에 비해 상영관 확보 문제라던가 다른 현실적인 어려움이나 힘든 점이 존재하는가.
“현재 한국 영화에서 주로 소비되는 장르는 액션이다. 액션 영화 장르의 특성이 남자 배우들이 액티브하게 움직이면서 서사를 완성해 나가는 형태이기 때문에 여자 배우가 액션을 주도하는 ‘암살’이나 ‘악녀’, ‘마녀’ 같은 몇몇 영화를 제외하고는 남자 배우들이 주연을 맡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한국 영화의 메인 투자를 담당하는 회사들이 산업적인 부가가치가 많은 영화를 선호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남자 배우 위주의 액션 영화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되는 것도 한 가지 이유다.”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이 성적이나 살인, 범죄의 도구로 소비되거나 제한적인 역할만 하는 것에 ‘여성 혐오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물론 그런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알고 있고 걱정도 된다. 하지만 영화와 현실은 어떤 식으로건 서로 상대방을 조응하면서 생동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현재 대한민국에 쏟아져 나오는 뉴스 중 남자 피해자가 더 많은가, 여자 피해자가 더 많은가? 아마도 현실을 어떤 식으로라도 수용하는 영화의 특성상 그런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는 뉴스를 단순 카피하는 매체가 아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소비되는 여성 캐릭터 보다는 현실을 극복하는, 수동적인 리액션보다는 능동적인 액션을 실행하는 그런 캐릭터들을 많이 보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영화 속 성 비율이 보다 균형감을 갖고, 더 발전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독립영화로 시선을 돌리면 ‘걷기왕’, ‘더 테이블’, ‘용순’ 등 보석 같은 여성캐릭터가 돋보이는 영화들이 존재한다. 그 분야는 다양성이 인정받고, 여성 서사가 존중받는다. 한국 영화의 다양화는 꼭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영화가 많아져야 된다는 단순한 논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 영화 제작 현장을 지탱하는 절반 정도의 스태프는 여성이다. 남녀가 다 같이 한국 영화를 만들고 있다. ‘앞으로 여자 주인공이 더 많은 영화를 만들어야 된다’라고 하는 미시적인 시선보다는 현장에 있는 수많은 여성 스태프들이 건강하게 지속적으로 활동해서 ‘한국 영화산업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는 거시적인 논리가 필요하다. 한국 영화 산업을 지탱하는 사람들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들일 때 한국 영화는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맞아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거라고 확신한다.”

한편 오기환 감독은 2001년 이영애, 이정재 주연의 영화 ‘선물’로 데뷔했다. 손예진과 송일국이 활약한 ‘작업의 정석’(2005)까지 잇따라 흥행시키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두 사람이다’(2007), ‘오감도’(2009), ‘이별계약’(2013), ‘패션왕’(2014) 등을 연출했다. 현재 오 감독은 한국영화감독조합 이사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