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대중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 내는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性)인지’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 영화 속 현실은 ‘반쪽짜리’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 혐오’와 ‘성불평등’을 부추기고 있는 듯하다. 양성평등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에 대한 열망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한국 영화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영화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편집자 주>

 

배우 조민수가 한국 영화 속 성(性)불균형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엔터스테이션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공존하는 시스템이 무너졌다.”

배우 조민수는 한국 영화 속 성(性)불균형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소재와 장르의 획일화’가 여배우들의 설자리를 잃게 한다고도 지적했다.

조민수는 1986년 KBS 특채 탤런트로 데뷔한 32년 차 중견 배우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코미디, 드라마, 멜로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해왔다. 2012년 영화 ‘피에타’(감독 김기덕)로 베니스 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았고 제29회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민수는 지난달 27일 개봉한 영화 ‘마녀’(감독 박훈정)로 관객들을 만나기 전까지 약 4년간의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마땅한 작품이 없었기 때문. ‘마녀’ 속 조민수가 연기한 닥터 백도 기획 당시 남자로 설정돼있었지만 여성 캐릭터로 바뀌면서 출연하게 됐다.

조민수는 최근 진행한 <시사위크>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충무로의 ‘여배우 기근’ 현상에 대해 “여배우 기근은 아닌 것 같다”라며 “여배우들은 많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만 연기력을 보여줄 공간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조민수는 “1993년 할리우드 작품 ‘델마와 루이스’가 생각난다”며 “그 당시 한국 영화인들 사이에서 여자 둘의 삶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자는 소리가 많았는데 투자 부분에서 성사가 되지 않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여자 얘기가 우리나라에서 되겠나?’ 25년 전 얘기와 그 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 영화계의 현실인 듯하다”고 밝혔다.

이어 여배우들이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는 이유에 대해 소재와 장르의 획일화를 꼽았다. 그는 “상업적으로 얼마나 흥행을 거뒀는가로 그 영화의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한국 영화의 현주소에서 영화가 문화의 의미를 가진 예술이라기보다 산업으로 전락한지는 오래다”라며 “상업적 흥행을 노린 특정 장르에 몰려있는 제작 현장이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공존하는 시스템을 무너뜨렸다”고 꼬집었다.

또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여성 중심 영화를 놓고 상업적 경쟁력을 평가하는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여성 중심의 영화들이 시도는 있었다”며 “하지만 작은 시도가 관객의 외면을 받게 되면 또다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주춤하게 되고 그만큼 여성 캐릭터의 영화들이 뒤로 밀려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주춤하고 짜인 틀 안에 집어넣고, 혹은 외면하는 부분이 가장 문제”라면서 “몇 편의 작은 시도로 상업적인 경쟁력이 없다는 해석은 그저 외면하겠다는 말로 들릴 뿐”이라고 지적했다.

조민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에 창작자들의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맞는, 우리의 변화 안에 녹아있는 많은 여성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며 “뻔한 장치로 소모되는 배우가 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흥행 위주의 큰 영화 외에도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다룬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길 희망했다. 그는 “한 사람의 삶이 하나의 세상이듯, 삶은 수많은 형태와 색깔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들여다보는 영화인들의 노력이 있다면 더 다양한 이야기가 영화로 등장할 것이다”고 전했다.

이어 “산업으로서의 영화가 엄연한 현실이라면 다양한 사람들의 크고 작은 삶에 담긴 희로애락, 숱한 갈등과 고민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명암을 함께 바라보는 예술로서의 영화는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생활과 다짐, 꿈과 희망을 안겨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조민수는 “기울어지지 않고 균형을 이루며 나아가는 한국 영화만의 모습을 기대한다”며 “여성 영화, 남성 영화라는 분리된 단어가 쓰이지 않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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